차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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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승원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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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제38회
(2002년)


제39회
(2003년)


제40회
(2004년)

조재현
(나쁜남자)

차승원
(광복절 특사)


최민식
(올드보이)


파일:한국방송대상 심볼.svg 한국방송대상
탤런트상
고현정
(2010년)

차승원
(2011년)

김수현
(2012년)






차승원
車勝元|Cha Seung Won


출생
1970년 6월 7일 (53세)
경기도 시흥군 안양읍 안양리
(現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안양3동)
거주지
서울특별시 강남구 청담동[1]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본관
연안 차씨
신체
188cm, 76kg, 290mm, AB형[2]
가족
부모님, 형
배우자 이수진(1966년생), 양자 차노아[3],
장녀 차예니(2003년 1월 20일생)[4]
학력
단국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 (졸업)
성균관대학교 예술대학 (영상학 / 중퇴)
종교
천주교 (세례명: 요한)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
병역
대한민국 육군 제73보병사단 상병 소집해제[5]
MBTI
ESFJ[6]
별명
차줌마[7], 차기럭지, 눈빛임신, 폭풍복근, 차배우[8], 차차, 차간지, 차선수, 차기복[9]
데뷔
1988년 모델라인 18기
(데뷔일로부터 9391일, 25주년)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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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패션모델로서의 활동과 명성
3. 배우로서의 길
3.1. 1990년대 후반
3.2. 제 1의 전성기: 2000년대 초반
3.3. 2000년대 중반~지금까지
4. 요리
5. 외모
6. 개인사
7. 논란 및 사건 사고
7.1. 양자 관련 논란
8. 기타
9. 출연작
9.1. 영화
9.2. 드라마
9.3. 뮤직 비디오
9.4. 예능
9.4.1. 고정
9.4.2. 게스트
9.5. 교양
9.6. 광고
9.7. 연극
10. 수상



1. 개요[편집]




대한민국패션 모델 출신 배우.


2. 패션모델로서의 활동과 명성[편집]


'후배양성은 1989년부터 했는데 첫 제자가 차승원이었다. 차승원씨는 내가 아카데미에서 근무할 때 친구와 같이 왔다. 고등학교 3학년이었고, 교복을 입고 왔다. 너무 멋있었다. 당시 차승원씨만 보였다. 처음에는 자긴 그런 것(모델) 모른다, 안한다고 했다. 그런데 내가 너는 타고난 모델이니깐 일주일동안 고민해보고 와라했다. 그런데 3일만에 왔다. 1년은 고생하고, 그 다음부터 승승장구하며 지금의 위치까지 올랐다.'

-고은경 대표 인터뷰 중-


'키가 3~5cm이상 다른 모델들보다 컸고, 현대적인 마스크에 잘생겼어요. 눈에 확 띄었죠.'

-시간은 달리는 tv에 디자이너 장광효 인터뷰 중-




19살 때(고등학교 3학년) 친구 오디션 따라갔다 캐스팅이 되었다. KPLUS에 따르면,[10] 교복입은 차승원 뒤로 아우라가 보였다고 한다. 약 1년간은 고생하다 95년도에 모델로서의 최전성기를 이루게 되며 톱모델로 활동하게 된다. 차승원은 "그때 당시에는 한치의 부끄러움도 없었고, 라이벌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만 하더라도 남자모델의 대한 시선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모델=차승원 일정도로 남자모델하면 생각나는 하나의 아이콘 같은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많은 모델 출신의 배우들[11]이 차승원을 롤모델로 언급하기도 하였다.

80년대 말 패션모델로 데뷔하여, 현재는 배우로서 카리스마 있는 연기, 진지하고 심각한 정극 연기부터 무서운 악역, 능청스럽게 망가지는 개그 캐릭터까지 모두 소화할 수 있는 넒은 연기 스펙트럼을 지닌 몇 안되는 배우다.

3. 배우로서의 길[편집]



3.1. 1990년대 후반[편집]


최초로 모델에서 배우로 전향한 케이스며, 모델 출신 남자 배우들 중 가장 성공한 케이스 중 하나였다. 사족이지만, 이천희의 모델 데뷔 날이 공교롭게도 차승원의 모델 은퇴식 하는 날이었다고 SBS의 한 토크쇼에서 나왔을 때 말한 적이 있다. 사실 지금이야 배정남 같은 잘 나가는 모델도 있고, 김우빈이나 이종석처럼 모델 출신 배우들도 많지만, 당시는 남자가 모델을 한다고 하면 완전 정신병자 내지 게이 취급받을 정도로 인식이 안 좋은 시절이었기에,[12] 모델계 입성 당시 단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재학 중이던 차승원은 담임한테서 빠따까지 맞는 등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심지어 키가 안 닿으니 점프해서 뺨을 날렸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요즘 단대 부고생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 선생은 그때 차승원 때문에 골치 아팠지만 그래도 그때 일에 대해서는 차승원에게 미안해한다고 한다.

모델 생활 이후 텔레비전 드라마영화 등에 출연하기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그가 연기생활을 시작한 것은 90년대 말부터였다. 1997년 영화 《홀리데이 인 서울》의 단역에 출현해 세기말적 암울한 분위기를 보여줬다.


파일:해가 서쪽에서 뜬다면.jpg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의 변지민
1998년도 임창정 주연의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에서는 모델 출신답게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를 자랑했다.


파일:문명특급차승원.jpg


파일:문명특급차승원2.jpg

또한 쇼 프로그램에도 빈번히 출연해 '잘생기고 분위기 있는 외모' 와 어울리지 않게 재미있는 입담을 선보여 대중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게 되었고, 캐스팅이 영화 쪽보단 덜 까다로운 시트콤이나 드라마의 주조연을 맡으면서 서서히 얼굴을 알리게 된다. 다만, 이듬해까지는 영화계에서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그가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계기는 연기가 아닌 다른 분야였으니 그게 바로 토크쇼였다. 1998년 이승연의 세이세이세이에 보조MC로 기용되기 시작하면서 김혜수의 플러스유까지 '''계속해서 연속해서 대박이 터졌던 것. 여기서 차승원은 특유의 입담으로 대중들의 뇌리에 본인의 이름 석 자를 확실히 각인시켰다.[13] 토크쇼의 맹활약 덕분에 연기자로서도 지위가 상승,'98년 후반기부터 99년까지 각종 TV 드라마, 시트콤 등지에서 주연으로 기용되기 시작했다. 영화 쪽에서도 99년 이성재, 김희선 주연의 판타지멜로 <자귀모>에서 처음으로 비중 있는 조연을 맡게 되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대중의 인식은 그냥 얼굴만 잘생긴 예능인 + TV배우 정도에 불과. 인기를 얻었지만 필모그래피 자체도 얼굴만 강조하는 뻔하디 뻔한 TV 멜로드라마였을 뿐이었다. TV 쪽보다 까다로운 영화계에서도 이런 인식은 마찬가지였던 상황. 이 당시 차승원에 대해 발연기 운운하는 얘기[14]도 있었으나, 엄밀히 말해 그냥 99년 후반기 이전의 차승원은 연기력 자체를 보여줄 무대가 없었다고 봐야 한다.

뭐 여기까지라면 그냥 잘생기고 예능감 있는 TV 연기자 내지 방송인 정도로 커리어가 흘러갔을 터인데 1999년 연말 개봉한 송능한 감독의 《세기말》에서 평가가 크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간단히 말해, 이 영화에서 차승원이 자신에게 얼굴만 있는 게 아니라 연기력 또한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했던 것. 당시 전문적인 평자들이 이 영화를 논하면서 이구동성으로 언급한 부분이 "차승원에게 저런 연기력이 있었는 줄 몰랐다"는 얘기다. 덕분에 영화계에서 차승원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완전히 달라졌다.[15] 단순한 미남배우가 아니라 흥행력과 연기력을 갖춘 특급 유망주로 인정받게 된 것. 이렇게 되어 이듬해인 2000년 작품인 《신혼여행》에서 처음으로 주연을 맡게 되었고, 같은 해 연말 개봉한 당대 최고의 블록버스터 《리베라 메》에서도 당시에 최고 톱스타였던 최민수, 유지태와 동급으로 지위가 격상했다. 특히 《리베라 메》의 경우, 대중들에게 배우로서 차승원을 처음 각인시킨 첫 작품이다. 《세기말》은 흥행에서 폭망했던 터라 대중들에게 차승원의 연기가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다.[16]

어쨌든 이런 차승원의 경우는 매우 드문 케이스다. 모델출신으로 연기자나 얼굴로 주목받은 배우들은 부지기수지만, 차승원처럼 데뷔 이후 얼마 되지 않아 연기력까지 인정 받은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3.2. 제 1의 전성기: 2000년대 초반[편집]


이후로는 충무로 특급 흥행카드가 되었다. 2003년 보디가드로 외도한 것을 제외하면, 2000년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근 십 년 동안 이런저런 흥행작들의 타이틀롤로 출연하였다. 특히 2001년부터 2004년까지가 차승원의 제1의 전성기라고 부를 수 있는 시기로, 강우석 감독이 운영하는 '시네마 서비스'에서 제작한 《신라의 달밤》, 《라이터를 켜라》,《광복절 특사》, 《선생 김봉두》, 《귀신이 산다》등의 코미디 영화가 연속 대박 행진을 기록하자 믿고보는 배우 라는 수식어를 얻게 된다. 또한, 잘생긴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약간 어딘가 어쩌면 매우 부족할지도 모르는 캐릭터에서 코미디 연기를 하자 잘생긴 바보 형, 오빠라는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생기게 된다.


▲ 영화 《선생 김봉두》
특히 《선생 김봉두》에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차승원의 코믹연기를 보여줬다. 웃음뿐만 아니라 감동, 교훈까지 줄 수 있는 코믹 연기를 보여준 것. 게다가 차승원뿐만 아니라 아역들의 연기도 훌륭해서 많은 호평을 받았다.



▲ 영화 《귀신이 산다》속 우는 연기
차승원의 코믹 연기가 성공하게 된 이유는 다른 배우들과 차별화되고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차승원 본인의 코미디 연기가 원체 뛰어난 점도 있다. 예를 들어 《귀신이 산다》에서 정말 서럽게 우는데 뭔가 웃기게 만드는 이율배반적인 상황을 묘사하는 연기가 일품이었다 말할 수 있다.


▲ 영화 《이장과 군수》
영화 《이장과 군수》에서는 전설의 케미이자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유해진과 함께 작품을 찍었다. 그 당시보단 지금이 더 회자되고 있는 인기있는 작품이다. 당시에 인터뷰에서 한 말이 꽤 화제가 되었는데, "처음에 연기를 하려고 했을 때는 '차승원 하면 연기 잘 하는 대배우'라는 평을 듣고 싶었으나, 지금은 '차승원 나오는 영화는 돈 내고 봐도 아깝지 않다'는 소리'''만 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후 2005년 《혈의 누》에 출연하며 코미디 연기 편향에서 벗어나 필모그래피가 다양해지고 혈의 누는 연기력과 작품성으로 인정받고 흥행도 어느 정도 성공했다.

다만 문제가 없진 않아 있었는데, 이 당시 필모그래피가 코미디로 점철되어 있었던 것. 데뷔 초창기 필모는 코미디가 아닌 정극 연기였고 2004년 이후로 코미디 편향에서 벗어나 다양한 연기를 시도했지만, 이 당시 커리어 탓에 코미디 전문 배우라는 선입견을 벗어나는 데에는 제법 시간이 걸렸다. 아무래도 《신라의 달밤》 감독이었던 김상진이 당시에 전성기였고, 작품 내외적으로 차승원과의 가장 호흡이 좋았기 때문에 필모그래피가 자연스럽게 코미디 영화로 흘러갔던 것으로 보인다.


3.3. 2000년대 중반~지금까지[편집]


그러나 2000년대 중반 이후에는 마땅한 흥행작이나 대표작이 별로 없다는 게 다소 아쉬운 편이다. 폭망까지는 절대 아니고 아직도 충분히 많은 수요가 있는 배우이며, 현재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배우지만, 본인도 2000년대 중반 이후 영화 커리어에 다소 위기감을 느꼈는지 2009년부터 꾸준히 TV드라마 작품을 하고 있다.


《시티홀》의 조국
2000년대 후반 대표작으로는 《시티홀》이 있다. 비록 김은숙작가의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낮은 시청률을 기록했지만 어쨌든 최고시청률 18.7%를 달성하며 높은 시청률을 기록해 수목극 1위를 하였다. 여기서 보여준 차승원의 애달프고 서럽고, 어딘가 안아주고 싶게 우는 연기는 기가 막혔다.



《아테나:전쟁의 여신》의 손혁
2010년대 초반 대표작으로는 《아테나:전쟁의 여신》이 있다. 정우성, 이지아, 수애 등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한 캐스팅을 통해 1화 만에 시청률 22.8%를 기록하는 등 엄청난 화제성을 일으켰다. 하지만 회차가 진행되면 될수록 부정적인 반응이 커지게 되고, 결국 마지막 회차에서는 13.3%를 달성했다.



《최고의 사랑》의 독고진
또 다른 2010년대 초반 대표작은 차승원의 제2의 전성기라 부를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이며 최고 시청률 21%를 달성했다. 차승원의 드라마 중 가장 큰 히트를 쳤으며 이 드라마에서 보여준 톱스타 독고진 연기는 각종 예능프로에서 패러디될 정도로 큰 이슈가 되었고, 차승원은 이 드라마를 통해 역대급 화제성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극뽀~옥, 띵동, 충전 등 명대사도 생겨났으며, 이때 당시의 차승원의 헤어스타일이 유행했다.


파일:너포위차승원.jpg

《너희들은 포위됐다》의 서판석
2010년대 중반 대표작으로는 《너희들은 포위됐다》가 있다. 《최고의 사랑》이후 다시 이승기와 만난 작품이다. 최고 시청률 14.2%를 기록하며 높은 시청률을 달성했다.

2017년 드라마 화유기 출연 이후로는 영화에서만 4편[17]을 작업했으나 2021년 김수현과 공동주연을 맡은 드라마 '어느 날'에서 신중한 역으로 오랜만에 드라마 복귀를 알렸으며 좋은 연기를 선보였다.


파일:우블차승원.jpg

《우리들의 블루스》의 최한수
2022년 노희경 작가의 신작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기러기 아빠이자 말못할 사정을 가지고 고향 제주로 돌아온 ‘한수’ 역으로 캐스팅 되었고 초반 드라마의 스타트를 끊었다. 극 중 ‘은희’ 역의 이정은과 좋은 호흡을 보여주었고 쓸쓸하고 떳떳하지 못한 ‘한수’의 내면을 잘 표현하면서 호평을 받았다. 친구이자 자신을 첫사랑으로 기억하고 있는 ‘은희’ 앞에서 괴로움과 미안함을 표현하는 표정연기는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드라마에서는 아테나:전쟁의 여신같은 평작·범작도 있고 화정같은 망작도 있긴 하다. 드라마 쪽으로는 약간 부침이 있긴 해도 호성적[18]을 어느 정도 거뒀다.

반면, 영화 쪽으로는 2000년대 후반부터 본인이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들 중에 평가나 흥행 어느 한쪽이라도 좋은 성적을 거둔 작품이 없다시피 하다. 사실 눈빛, 억양, 표정, 액션, 애드립, 사소한 행동 등등 하나하나 아주 완벽한 연기력을 골고루 갖춘 차승원이 코믹 연기하나로 대박을 터트리자 오로지 흥행에 눈이 먼 제작자들이 계속 코미디로 차승원의 재능을 낭비해서 그렇다. 차승원은 장르 관계없이 연기력이 매우 출중한데 흥행파워가 꺽여 매우 아쉬울 따름이다. 예를 들어 2006년 국경의 남쪽은 30만명도 동원하지 못하며 차승원의 네임밸류에 큰 타격을 입힌 망작이 되었고, 이후 장진 감독과 여러 편을 함께하면서 2005년의 박수칠 때 떠나라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

하지만 아들하이힐은 실패. 하이힐 같은 경우, 개봉 당시 아직은 트랜스젠더의 대한 정체성을 다룬 소재들이 조금은 거부감이 들 뿐더러 젠더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그닥 좋지 않을 때 개봉했기에 흥행에 득이 되지는 못했으나, 지금 개봉하면 호응이 좋다는 평과 '차승원의 액션연기와 눈빛연기가 소름돋는다는 평'이 있다.

2016년에는 강우석 감독과 재회하여 고산자, 대동여지도로 컴백했지만 비평과 흥행 모두에서 실패했다.[19] 다만, 2000년대 후반부터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포화 속으로,독전 등 빌런으로 나오는 영화들은 흥행했던 편이었다. 이중 독전에서 차승원 특유의 목소리로 인한 연기 때문에 차승원 성대모사가 화제를 일으켰다.



▲ 예능 《삼시세끼》
예능 쪽에선 데뷔 이후 꾸준히 활약해왔다. 다만 1998년 이후로는 자신의 출연작을 홍보하기 위한 1회성 게스트 출연만 고수했다. 물론 처음으로 주목 받은 것이 예능 쪽이었을 정도로 예능감이 특급인 사람인 까닭에 차승원의 예능 출연은 늘 반응이 좋았다.그러던 중 2015년 1월 23일부터 3월 20일까지 삼시세끼 어촌편에서 유해진, 손호준과 함께 출연, 무려 16년 만에 예능 타이틀롤을 맡았다. 첫방송 시청률 9.7%로 시작해 회차별 최고 평균 14.2%를 달성하며 큰 화제를 일으켰다. 요리에 정통한 아줌마 캐릭터까지 보여주면서 차줌마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음과 동시에 유해진과 부부같은 케미를 보여주며 새로운 매력을 보여줬다. 높은 인기 탓에 2016년 어촌편 시즌 2까지 만들어졌다.


파일:스페인하숙차승원.jpg

▲ 예능 《스페인 하숙》
2019년에는 삼시세끼시리즈의 후속작인 스페인 하숙이 시청률 10%를 돌파하는 대박을 기록하는 등 커리어가 다시 상승세를 달리고 있다.


4. 요리[편집]






삼시세끼 어촌편
스페인 하숙
삼시세끼스페인 하숙에서 보여준 차승원의 요리실력은 그냥 잘하는 게 아니라, 무슨 특별한 레시피 없이도 뚝딱 만드는 수준이다. 예를 들어 아궁이를 이용해 빵을 만든다든지[20], 나영석 pd의 갑작스러운 제안에도 불구하고 어묵과 핫바[21] 심지어 케첩도 손쉽게 만든다든지 등 삼시세끼에서 보여준 '차승원의 요리실력은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이었다. 재료만 있으면 어떻게든 요리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차줌마 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22]


파일:차승원요리3.jpg


파일:차승원요리4.jpg

차승원의 요리스타일' <전형적인 주부 스타일>이다. 밑반찬을 많이 많이 만들고, 메인요리를 먹을만큼만 해서 식탁에 올리는 스타일인데 만재도에서는 차승원이 너무 능숙하게 잘 하니깐 재료를 덜 줬다. 하지만 후속편인 스페인하숙에서는 제한을 두지 않아 밑반찬을 많이 만들어서 제작진뿐만 아니라[23] 외국인들에게까지 먹이는 모습에 '역시 차승원이 차승원했다'라는 평을 받았다.[24]

5. 외모 [편집]



파일:젊차.jpg


파일:오늘날차차.jpg

젊은 시절 차승원
중년 시절 차승원
젊은 시절보다 중년 시절이 더 고급진 대표 배우. 이구동성으로 사람들은 젊은 시절 차승원보다 중년 시절 차승원이 더 분위기가 있으며 고급져 보이고 섹시하고 중후한 매력을 뽐낸다 말한다. 세기말적 분위기를 지님과 동시에 이국적인 외모를 지녔다. 어느순간 수염을 기르기 시작하더니 차승원의 매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여담으로 유재석이 생각하기에 형들 중 1순위로 가장 멋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일본 배우 아베 히로시와 닮은 꼴로 유명하다. 둘다 모델출신배우'라는 점과 코믹과 악역을 오가는 연기를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파일:차승원키.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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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 출신 배우답게 188cm라는 큰 키를 자랑한다. 차승원은 어느 한 인터뷰에서 '기분 좋으면 조금 더 클 수 있다'고 대답하기도 했다.


파일:차승원노수염.jpg


파일:차승원노수염2.jpg


파일:차승원수염3.jpg


파일:차승원수염2.jpg

'수염이 가장 어울리는 남자배우'라고 하면 바로 차승원이 생각날 정도로, 차승원에 있어서 수염은 빠질 수 없는 부분이다. 또, 수염이 있을 때와 없을 때에 그 갭차이도 엄청 심하다. 수염이 없는 스타일도 굉장히 어울리는거는 마찬가지.



위의 사진처럼 2010년대 초반에는 '소'자 수염을 했었다. 《아테나:전쟁의 여신》에서 그 '소'자 수염을 볼 수 있다.

차승원의 수염은 고티 형태로 구레나룻까지 길게 나는 스타일이나 차승원이 소자로 다듬는 것이다. 2010년대 중반까지는 면도가 필요한 작품 외에는 항상 소자 수염을 유지하는 편이였으나 2010년대 후반부터는 나이가 나이인지라 수염이 하얗게 자라서 인지 중요 작품 외에는 항상 면도를 하는 모습을 보인다. 2020년대에 수염을 길렀을 때는 배역이 수염이 필요한 드라마 어느 날과 영화 독전 2 시기인데 이 시기에도 예전과 같은 소자 수염으로는 안 다듬고 그냥 있는 그대로 고티 형태로 기르는데 확실히 하얀 수염을 볼 수 있다.


6. 개인사[편집]


차승원의 아내는 차승원이 지금처럼 유명해지기 전에 하이텔나우누리에서 모델 남편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노아엄마'라는 필명으로 꽤 꾸준히 올려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는데, 아직도 웹을 잘 뒤져보면 그 때의 글들을 일부나마 찾을 수 있다. 아예 나우누리에는 "노아엄마의 이야기방"이라는 이름으로 전용 공간까지 가지고 있었을 정도. 지금 보면 지금의 차승원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도 보이곤 해서 재밌다.

아내가 4살 연상인데, 그동안 방송 등지에서 언급된 바에 따르면, 차승원이 고등학생 때 나이트클럽에서 만났다고 알려졌었다. 아내는 대학생이었고 차승원은 고등학생으로, 차승원은 당시 나이를 숨기고 그녀와 교제했으며, 이 과정에서 아이가 생겨 1989년에 결혼했다고 했지만 '사실이 아니었고' 결혼 자체도 1992년(그러니깐 차승원이 만나이로 22살일때)에 했다. 자세한 것은 아래 서술. 여차하면 불행할 수도 있는 경우였지만, 다행히도 결혼에 성공한 거라고 볼 수 있으며 부부 사이도 정말 좋다고 하며 젊어서 아이를 낳았다고 알려졌기 때문에, 이후 차승원을 보고 저렇게 다 큰 아이들의 아버지였다고는 생각 못 했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들 '노아'와 딸 '예니'가 있다. 아들의 경우 방송 출연도 같이 한 적도 있고, 차승원의 집 공개 때 어릴 적에 방송 출연을 잠깐잠깐 했던 적이 있었다. 2012년 10월 경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 게임단인 LG IM팀에 영입된 서포터 담당인 Livy의 이름이 차노아여서 차승원의 아들이 아니냐는 루머가 돌았다. 그리고 그 사실이 결국 확인되었다.# ‘차승원 아들’ 차노아, 프로게이머 데뷔…차승원 “응원하고 있다”

그 뒤 차노아 친부의 고소로 인해 양아들임이 밝혀졌다. 이로 인해 차승원은 역대급 대인배 멘탈로 사람들을 경탄시키는 중이며 본인의 종교와 얽혀 성 차요셉[25]이라는 별명도 있다. 자세한 건 아래 항목을 참고. 다만 정작 차승원의 세례명은 요한이다.

딸은 방송에 노출된 적이 없다가 정말 얼떨결에 방송에 노출되었다. MBC 기분좋은 날 연예인 재테크 관련 촬영에서 부동산을 가치를 알아보는 부분을 방송하는 도중, 차인표-신애라 커플의 집 앞에서 지나가는 아이들을 붙잡고 "이 집이 차인표-신애라 집인 거 알아요?" 하고 물어보자 안다고 대답했고, 거기에 얼굴을 알고 있던 제작진이 "어! 얘 차승원 딸인데?" 하고 물어보자 맞다고 대답. 정말 얼떨결에 방송에 등장. 그리고 옆에 있던 남자아이는 "저 박주미 씨 아들이에요!"라 대답해서 같이 방송 최초로 공개된 것이다.

그러는 한편, 상당히 악성적인 루머에 시달렸던 적도 있다. 2000년 무렵에 발생했던 L양과의 루머가 바로 그것. 당시 차승원이 L양과 해외 촬영 중 대놓고 같은 방에 묵었다는 등의 소문이 파다했다. 워낙 요란했던 탓인지 차승원이 강단이 있었던 것인지 당시로선 이례적으로 차승원 측이 여기에 정면 대응했긴 했는데 문제는 당시 시대여건상 고소미를 먹인다던가 정식으로 기자간담회를 연다던가 하는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었으며 당시로써는 가까운 연예부 기자들에게 개인적으로 만나 진실이 아님을 밝히는 게 최선이었다.

뭐 어쨌든 이런 루머가 반쯤 공개화되어버린 탓에 당시 스포츠신문들이 아주 신이 나서 기사를 팔아재껴 댔다. 그러니까 '이런저런 소문이 있지만 아니란다.'라는 기사를 쓰면서 어째 '이런저런 소문'을 자세히 언급하는 방식이었으며 아예 L양 루머가 진실이라는 입장 하에 차승원을 탓하는 쓰여진 일부 몰지각한 기레기들까지 나오기까지 했다. 이 사건이 2010년대 이후로 벌어졌으면 아마 여러 사람이 콩밥을 먹었을 것으로 보인다.


7. 논란 및 사건 사고[편집]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7.1. 양자 관련 논란[편집]


2013년, 양자 차노아가 대마초 흡입 및 청소년 성폭행 혐의로 피소되었다고 한다. 기사 차승원은 사실 여부를 떠나, 아버지로서 도의적인 책임을 느낀다며 미투데이를 통해 사과의 뜻을 전했다. 기사 후에 차노아는 대마초 흡입에 관해서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형을 선고받았고, 성폭행 혐의에 대해선 고소가 취하되었다.

2014년 10월, 차노아의 친아버지가 차승원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걸면서[26] 차승원이 사실은 아내의 전 남편에게서 태어난 차노아를 자기 아들로 받아들이고, 아내와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내가 고등학생 때 날라리라 아내와 교제하던 중에 속도위반을 한 거였다"는 거짓말로 자기 이미지를 깎아먹을 각오까지 하면서 가족을 지켰다는 내막이 드러났다.[27] 차승원이 아내와 결혼할 당시, 차노아는 3살 정도였다고 한다. 즉 '미성년자일 당시 만난 아내와 속도위반으로 차노아를 낳고 책임지기 위해 결혼했다'는 이전까지 알려졌던 결혼에 얽힌 사연은 아내의 이혼 경력과 차노아가 의붓 아들이라는 것을 감춰 주려고 본인의 이미지 추락을 감수하고 꾸며낸 이야기였다.[28] 차승원은 가슴으로 낳은 아들이라 생각하고 있으며, 끝까지 가족을 지킬 것이란 입장을 밝혔다. 이 사건이 있기 전에 아들인 차노아가 구설수에 올랐을 때, 아들이 진짜로 그런 사고를 쳤는지의 여부와 상관없이 차승원은 유명인이란 입장에 있는 아버지로서 사과했고, 아들을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차승원을 대인배이자 생불로 칭송했다. 이후 10월 7일 차노아의 친부는 명예훼손 소송을 취하했다. # 여론이 모두 차승원을 응원하는 쪽으로 돌아섰기 때문인지, 아니면 당사자간에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불명.

참고로 유명인들 중에서 아내가 전 남편 사이에서 낳은 아이를 양자로 삼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29], 그에 더해 아내와 아들을 보호하려고 자신의 명예 실추와 커리어 박살을 각오하면서까지 '미성년자 때 사고를 쳐서 아들이 생겼고 후에 그 아들의 어머니와 결혼했다.'고 거짓말을 하는 사례는 정말 드문 편. 비슷한 사례로 들 수 있는 건 아내가 불임인데, 자신이 불임이라고 거짓말을 한 미국 프로레슬링 선수인 케인과 아내의 불륜에도 불구하고 딸과 가정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양보한 만화가 야부키 켄타로 정도다. 특히 입양에 대해 조금 더 열린 시각을 가진 서양권이면 모를까 가족에 대한 인식이 아직도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서는 드문 케이스다.

사실 아들이 대형사고를 쳐서 당시 많은 논란을 빚었지만, 오히려 진심을 담은 사과와 그동안의 차승원의 노력이 드러나면서 이미지가 더 좋아지면서 또 다른 전성기를 누리게 된 셈이며 또한 아들에게도 자신이 친아버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같이 이야기한 듯하지만, 아들이 오히려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아빠, 엄마가 더 힘들었을 것이라고 위로했다고 한다.

2017년 별별톡쇼에서 차노아의 근황이 언급됐는데, 아버지의 권유로 헬스 트레이너 강사 자격증을 따 헬스 트레이너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방황기를 겪긴 했지만, 지금은 안정된 상태에서 잘 살고 있다고 하며, 논란이 일어났을 당시, 차승원이 자신을 친자식 이상으로 사랑하는 것을 보고 차노아 본인도 어느 정도 마음을 다잡게 된 듯하다.


8. 기타[편집]



파일:차승원셀카1.jpg


파일:차승원셀카4.jpg


파일:차승원셀카2.jpg


파일:차승원셀카3.jpg

  • 사진을 찍을때 <브이!>포즈로 자세를 취한다.

  • 젊을 때는 키가 너무 크다고 프로필 키를 줄였었다. 연예인으로서 처음으로 인지도가 올라가 주목받던 90년대 후반 이승연의 세이 세이 세이 고정 패널 시절에는 이승연에게 자신의 키가 186cm라고 말하고, 이홍렬쇼에 출연했을 때도 이홍렬에게 자신이 186cm라고 말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2000년대 중후반에 진짜 키를 공개했는데, 야심만만에 출연해서 진행자 강호동과 대화하다가 갑자기 서로의 진짜 신상정보를 남자답게 공개하자고 제안하면서, "188.2cm에 85kg"이라고 실제 키와 몸무게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 패밀리가 떴다에 게스트로 출연한 적이 있는데 이때도 수건으로 머리를 싸매고 요리를 한다. 게다가 갯벌에 가는 장면도 있어서 자연스럽게 삼시세끼가 떠오른다. #

  • 섹션TV 연예통신 리포터가 차승원의 아들 이름을 '노마'라고 잘못 얘기하자 차승원이 "그건 전원일기 이계인 씨 아들"이라고 맞받아쳐 리포터가 민망해하며 웃은 적이 있다.

  • 2005년 SBS의 토크 프로그램 야심만만에 게스트로 출연하여 '외국에서 나쁜 짓을 했을 때는 일본인인 척해야 한다'라고 발언한 방송분이 일본에 전해지는 바람에 물 건너에서는 이래저래 까이는 인물이다.[30] 그러나 이와 별개로 차승원은 아사히 맥주 광고 모델이 되었고, 일본에서 팬미팅도 여러차례 진행할 정도로 일본팬층도 꽤 탄탄하다. #

  • 코믹한 이미지에 약간 허당스럽지만 출연한 예능에서는 성심성의껏 촬영에 임하여 예능인과 네티즌들의 평가가 좋은 편이다. 무모한 도전의 레전드로 평가받는 연탄 나르기 대결[31]이 대표적 사례며, 그 덕에 영화배우로서 차승원의 헬스클럽이라는 단독 예능 프로를 맡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간고등어 코치 최성조 씨가 스타덤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이때 개봉한 국경의 남쪽은 흥행에 참패한다

  • 무모한 도전의 인연으로 무한도전 극한알바에 한 번 더 출연했다. 촬영 전날 공리와 파티하고 귀국하자마자 유재석에 의해 강제 캐스팅되었다. 촬영에서 동갑내기 절친인 박명수와 함께 63빌딩 창 닦기 알바를 하는 듯 했으나, 특유의 연기력으로 박명수를 속여 탈출했지만 그러나 유재석과 함께 탄광 알바를 하며 변함없이 생고생했다.[32] 어쨌든 극한알바 역시 성공적인 결과를 낳으며 역시 무도 팬들에게 믿고 보는 차승원을 다시 한번 입증시켰다.

  • 승승장구에서 밝히기를, 천장에 닿을 만큼 키가 커서 드라마 촬영 때 어쩔 수 없이 집안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앉아야 했다.

  • 꼬집어 말하긴 어렵지만 억양이 독특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다. 말꼬리를 슬쩍 내려 끄는 듯한 느낌이다.

  • 아테나:전쟁의 여신 촬영 당시 같이 출연한 추성훈과의 격투신에서 똑같이 때렸는데 곧 '어? 이게 아닌데?' 하고 깨달았다고 한다. 차승원 역시 나름대로 몸짱으로 유명한데다 몸 만드는 프로를 진행해 본 경력이 있지만 격투가와 일반인의 차이를 확실하게 보여준 예다.[33]


  • 2013년 2월 무릎팍도사일본 아이돌 SMAP쿠사나기 츠요시(초난강)이 출연했을 때 화력 지원을 하러 온 차승원이 본 게스트인 초난강보다 더 방송 비중이 높게 편집, 방영돼 한동안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둘 모두 한일 합작 연극 홍보 차원에서 출연한 것인데, 전체적인 내용도 빈약하기 짝이 없었고 외국 손님 모셔다 놓고 이게 무슨 짓이냐는 말만 들었다.


  • 자신의 아버지가 차승원이 사는 빌라 경비원이었다는 한겨레 기자의 이 알려졌는데, 오가며 예의 바르게 인사하고, 명절 때 용돈 챙겨주고 CF 찍고 받은 맥주를 선물하는 등 경비원에게도 인간적으로 대한 일이[34] 알려지면서 호감도는 더 상승했다.

  • 롯데리아의 강정버거 모델로 활동하면서, 사람들에게 이래저래 패러디되었다.[35] 1달 반 정도 롯데리아에 서식하면서 강정버거 차승원 아트만 만든 사람도 있었다. #[36]

  • 과거 god의 멤버 박준형과 사이가 안 좋았던 적이 있다. 우연히 두 사람이 화장실에서 마주쳤을 때 차승원이 박준형을 동생인 줄 알고 "야 쮼!" 하면서 반말로 응대했는데 이에 박준형이 "야! 난 너보다 형이야!"라고 외쳤다고 한다. # 사실 박준형이 1969년생으로 차승원보다 1살 형이니 맞는 말이지만, 고등학생 때 데뷔한 차승원과 다르게 서른이 넘어 데뷔했는데다가 초창기에 1974년생으로 나이를 속이고 활동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 것이었다. 당연히 이러한 사실을 몰랐던 차승원이 어린놈이 개념 없는 행동을 한다며 꽤나 열받아서 상당 기간 냉랭한 관계를 유지했으며, 훗날 서로 간의 오해를 풀어 현재는 원만하게 지낸다고 한다. [37]


  • 627 대첩 당시 베스트 댓글로 차인표는 머리를 36회 감고, 차승원은 타이어를 40번이나 갈았다는 내용이 화제가 되었다. 야구 중계 당시 차인표가 출연한 TS 샴푸 광고 송출 횟수와 차승원이 출연한 한국타이어 T-STATION 광고 송출 횟수를 뜻한다.

  • 22세라는 너무나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해서 한동안 마음을 터놓고 지낼 친구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 그래도 예전부터 친구를 꼽자면 70년생 동갑내기 유해진이라고 삼시세끼에서 언급했다.[38] 그 외 성지루도 친한 사이이며 실제 승승장구에서 몰래 온 손님으로 성지루가 오기도 했다.

  • 어지간하면 모든 채소를 다 먹긴 하는데 쑥갓은 안 먹는다고 한다. 쑥갓도 못 먹으니 이보다 향이 더 센 고수는 자동적으로 못 먹을 확률이 크다. 삼시세끼에서 말하길 먹으면 사람 돼서 안 먹는다고 한다.

  • 삼시세끼 시리즈에서 볼 수 있듯 요리를 매우 잘한다. 그냥 잘하는 수준이 아니라 특별히 계량 없이 넣어도 요리에서 무슨 맛이 나올지 알 정도였다. 한식뿐만 아니라 오븐도 없던 곳에서 아궁이를 개조해 임시로 만든 화덕에서 까지 만들어내고, 두부까지 만들며 어촌편에서는 마치 많이 해본 듯 유해진이 잡아온 생선들을 잡아 도 뜨고 문어 손질, 장어 손질 등 상당히 능숙한 솜씨를 보여주고 시즌마다 여러 재료로 김치를 만드는 모습까지 보인다. 덕분에 삼시세끼 내 포지션은 안주인이었으며 당연히 바깥양반은 유해진이었다.

  • 2020년 후반기에 지금까지 주로 해왔던 헤어스타일을 단발머리 스타일로 바꾸고 본인의 트레이드마크인 콧수염도 미는 등 파격적인 이미지 변신을 했다.

  • 영화 귀신이 산다에서 닭 600마리와 촬영 후 조류공포증이 생겼다.


9. 출연작[편집]



9.1. 영화[편집]


개봉 연도
제목
배역
비고
1997년
홀리데이 인 서울
애인

1998년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변지민

1999년
자귀모
나한수

주유소 습격사건
폭주 청년
특별출연
세기말
상우

2000년
신혼여행
김준호

리베라 메
여희수

2001년
신라의 달밤
최기동

2002년
라이터를 켜라
양철곤

광복절 특사
최무석

2003년
선생 김봉두
김봉두

2004년
귀신이 산다
박필기

여선생 VS 여제자
김봉두
특별출연
2005년
혈의 누
이원규

박수칠 때 떠나라
최연기

2006년
국경의 남쪽
김선호

2007년
이장과 군수
조춘삼

아들
이강식

2008년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안현민

2009년
시크릿
김성열

2010년
포화 속으로
박무랑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이몽학

아테나: 더 무비
손혁

2012년
아부의 왕
본인
특별출연
2014년
하이힐
윤지욱

2015년
미니언즈
내레이션
애니메이션•한국어 더빙
2016년
고산자, 대동여지도
김정호

2018년
독전
브라이언[39]

2019년
힘을 내요, 미스터 리
철수

2021년
낙원의 밤
마 이사
파일:넷플릭스 로고.svg
싱크홀
정만수

2023년
독전2
브라이언 리
파일:넷플릭스 로고.svg
미정
폭군[40]
임상

전,란
선조
파일:넷플릭스 로고.svg


9.2. 드라마[편집]


방영 연도
방송사
제목
배역
비고
1997년 ~ 1998년
파일:SBS 로고(1994-2000).svg
뉴욕 스토리

시트콤
1998년
바람의 노래
이지훈

파일:MBC 로고(1986-2005).svg
맨발로 뛰어라
박실장

수줍은 연인
임성범

1998년 ~ 1999년
파일:KBS 2TV 로고(1984-2018).svg
천사의 키스
장태주

파일:MBC 로고(1986-2005).svg
여자 대 여자

시트콤
1999년
장미와 콩나물
최규대

파일:SBS 로고(1994-2000).svg
맛을 보여 드립니다
승일

러브스토리 메시지
정인기

2003년
파일:KBS 2TV 로고(1984-2018).svg
보디가드
홍경탁

2009년
파일:SBS 로고.svg
시티홀
조국

2010년 ~ 2011년
아테나 : 전쟁의 여신
손혁

2011년
파일:MBC 로고(2005-2011).svg
최고의 사랑
독고진

2014년
파일:SBS 로고.svg
너희들은 포위됐다
서판석

2015년
파일:MBC 로고.svg
화정
광해군

2017년 ~ 2018년
파일:tvN 로고(2012-2021).svg
화유기
우마왕

2021년
파일:쿠팡플레이 로고.svg
어느 날
신중한

2022년
파일:tvN 로고.svg
우리들의 블루스
최한수

미정
파일:넷플릭스 로고.svg
광장
김선생
특별출연


9.3. 뮤직 비디오[편집]


연도
아티스트
곡명
비고
1998년
김장훈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2000년
포지션
I Love You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주영훈
노을의 연가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김장훈
난 남자다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2002년
4U
In My Heart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2011년
티아라
Cry Cry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2012년
Lovey Dovey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2013년
김장훈
소나기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2017년
Wanna One
Beautiful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9.4. 예능[편집]



9.4.1. 고정[편집]


방영 기간
방송사
제목
비고
2006년 2월 26일 ~ 4월 16일
파일:MBC 로고.svg
차승원의 헬스클럽

2015년 1월 23일 ~ 3월 20일
파일:tvN 로고(2012-2021).svg
삼시세끼 어촌편 시즌 1
9부작[41]
2015년 10월 9일 ~ 12월 11일
삼시세끼 어촌편 시즌 2
10부작[42]
2016년 7월 1일 ~ 9월 16일
삼시세끼 고창편
12부작
2019년 3월 15일 ~ 5월 24일
스페인 하숙
11부작[43]
2020년 5월 1일 ~ 7월 10일
삼시세끼 어촌편 시즌 5
11부작[44]
2023년 8월 4일 ~ 9월 29일
형따라 마야로: 아홉개의 열쇠
[45]


9.4.2. 게스트[편집]




9.5. 교양[편집]


  • 아침마당: 8941회[48]


9.6. 광고[편집]




9.7. 연극[편집]


  • 2013년 나에게 불의 전차를 - 이순우


10. 수상[편집]


  • 1995년 모델라인'95 베스트 드레서상, 한국패션사진가협회 올해의 모델상, 한국모델협회 올해의 모델상
  • 1995년 제12회 베스트 드레서 시상식 모델상
  • 1996년 한국패션협회 올해의 남자모델상
  • 1997년 모델센터주관 Adieu Fashion Festival'97대상(패션부문)
  • 1999년 제16회 코리아 베스트 드레서로 선정
  • 2002년 제25회 황금촬영상 시상식 최우수 인기남우상 《신라의 달밤》
  • 2003년 제39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 연기상 《광복절 특사》
  • 2003년 제16회 그리메상 최우수남자연기상 《보디가드》
  • 2003년 KBS 연기대상 인기상, 최우수연기상 《보디가드》
  • 2003년 KAA어워즈 광고주가 뽑은 좋은 모델상
  • 2007년 제15회 이천 춘사대상영화제 남우주연상 《아들》
  • 2007년 TVCF AWARD 모델부문상
  • 2008년 제1회 대한민국 주얼리 어워드 사파이어상
  • 2009년 SBS 연기대상 드라마스페셜 남자연기상, 10대 스타상 《시티홀》
  • 2010년 제5회 아시아모델상시상식 - 아시아특별상(영화)
  • 2011년 제5회 Mnet 20's Choice 핫 식스팩 종결자상, 핫 드라마스타 남자상
  • 2011년 제38회 한국방송대상 탤런트 부문 개인상 - 최고의 사랑
  • 2011년 제4회 스타일 아이콘 어워즈 대상
  • 2011년 제24회 그리메상 최우수남자연기상 《최고의 사랑》
  • 2011년 MBC 연기대상 베스트커플상, 미니시리즈부문 남자최우수상 《최고의 사랑》
  • 2015년 제10회 아시아모델시상식 배우부문 아시아스타상
  • 2015년 MBC 연기대상 10대 스타상 《화정》
  • 2017년 제8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대통령 표창
  • 2021년 제41회 황금촬영상 촬영감독이 뽑은 인기상《싱크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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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사[2] 2014년까지 B형으로 알고 살았으나 딸 예니가 A형이어서 다시 검사를 해보니 AB형인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하며, 참고로 아내 이수진씨의 혈액형은 O형이라고 한다. 이에 다시 혈액형 검사를 한 이유는 아내를 의심하고 싶지 않았다는 이유였다고.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B형과 O형의 사이에서는 A형이 나올수가 없다.[3] 아내와 그녀의 전 남편 사이에서 출생.[4] 조기입학으로 2002년생들과 같이 학교를 다녔다.[5] 송추방위과 더불어 8,90년대 전투방위의 양대산맥인 금곡방위 출신으로 1993년 5월에 입대하여 18개월 동안 신병교육대 조교로 복무했다.[6] 출처[7] 삼시세끼에서 아줌마같은 호탕한 성격과 뛰어난 요리실력으로 인해 얻은 별명으로, 현재는 대중화된 유명한 별명이다.[8] 차승원이 가장 좋아하는 별명이다.[9] 삼시세끼에서 유해진이 붙여준 별명이다. 감정의 기복이 심하다고 한다.[10] 현재는 배우로 전향하며 YG엔터테인먼트 소속이다.[11] 김우빈, 이수혁, 한혜진, 홍종현 등이 있다.[12] 당시엔 지금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게이와 같은 동성애자들에 대한 취급이 좋지 않았다. 지금도 썩 좋지 않긴 하지만 그래도 홍석천 같은 사람들도 많이 나오고 그래서 희화화되는 개그 소재로라도 편하게 쓰일 수 있지만, 당시엔 게이가 정신병자와 동급으로 취급될 정도였다.[13] 지금이야 김혜수의 진행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김혜수의 플러스유 초창기에는 토크쇼 진행에 미숙하여 전임자였던 이승연과 비교당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보조MC로 들어온 차승원이 이를 잘 메워줬기 때문에 PC통신 게시판에서는 '김혜수가 아니라 차승원의 플러스유라고 불러야 되는 거 아니냐'는 반응까지 있었다.[14] 이런 반응은 1999년에 방영했던 MBC 주말연속극 장미와 콩나물에서 두드러졌다. 차승원의 경우 캐릭터성이 뚜렷한 배역에서 강점을 보이는데 이 드라마에서의 셋째 아들 배역은 거의 생활연기 위주였기 때문에 다른 캐릭터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밋밋한 감이 있었다.[15] 한국에선 이런 경우가 아직 흔치 않지만 할리우드에서는 짐 캐리, 아담 샌들러나 멜리사 맥카시, 크리스틴 위그와 같은 코미디 전문 배우들이 정극 배우로서 실력을 인정받는 경우가 꽤 흔한 편이다. 극에 잘 녹아들 정도로 코미디 연기를 잘 소화할 경우 다른 장르에서의 연기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다.[16] 다만 리베라 메도 흥행에는 참패했다. 서울관객 53만을 모아 나름 성공하지 않았냐는 얘기가 나올 수 있는데,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한 거액이었던 45억 원을 투입한 작품이었다.[17] 독전, 힘을 내요, 미스터 리, 낙원의 밤, 싱크홀이 있다.[18] 시청률은 낮아도 연기력은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MBC 사극의 종말이라고도 불린 화정에선 광해군 역으로 화정 초중반부의 시청률을 거의 혼자 이끌었다.[19] 2018년 여름에 개봉한 독전은 500만 관객을 돌파했고 차승원도 인상깊은 연기를 보여주었지만 캐스팅 목록 상으로는 조연이 아니고 카메오다.[20] 한 술 더 떠서 거기서 피자도 만들었다.[21] 열악한 환경에서 만든 어묵과 핫바는 나영석PD가 "대박이다"라고 극찬할 정도로 맛있었다고 한다.[22] 삼시세끼에서 게스트로 온 이광수가 닭을 사 오자 그걸로 치킨을 튀겨내거나, 유해진이 통발로 큰 문어를 잡아오자 문어를 넣은 짬뽕까지 만드는 등 못 만드는 요리가 없다. 손질이 어려운 대형 참돔이나 붕장어, 문어 등도 모두 차승원이 손질해다가 요리할 만큼 실력이 뛰어나다.[23] 일례로 스페인 편에서 손님용 저녁 메뉴로 닭볶음탕과 삼겹살 구이를 만들었는데, 손님이 오지 않자 출연진들이 먹을 만큼을 덜어낸 후 나머지를 제작진에게 저녁 식사로 먹으라고 줬다. 식사가 끝난 후 주방에 들어갔던 차승원은 제작진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깨끗하게 먹은 현장을 보고 경악했다.[24] 차승원은 출연진뿐만 아니라 게스트, 제작진을 비롯한 주변인들을 늘 챙긴다. 삼시세끼에서 유해진이 잡은 대형 참돔회를 저녁식사 삼아 세 명이서 먹고, 워낙 큰 참돔이라 살이 많이 남으니 제작진들에게도 맛 보라고 나눠주고, 다음날 게스트로 온 이광수에게도 조금 먹어보라며 남겨둔 참돔회를 꺼내 대접했다. 문어짬뽕을 만들 때도 뭘 그렇게 많이 하냐는 유해진의 물음에 "아니 뭐, 우리만 먹나~" 라고 답했고, 손호준이 5년 전의 짬뽕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할 때 나영석PD가 "그 때 사실 (너무 맛있어서) 조금 충격 받았거든"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아 오래 전부터 이랬을 것으로 추정된다.[25] 예수의 양아버지인 나자렛의 성 요셉. 자신의 아이가 아닌 아내 성모 마리아의 아들을 자신의 아들처럼 길렀다는 점에서인 것으로 보인다.[26] "차승원이 차노아의 친부가 아님에도 방송 등에 출연해 마치 친부인 것처럼 말해 명예가 훼손됐다"라는 이유로 소송을 걸었다.[27] 참고로 차노아가 차승원의 아들이 아니라는 루머는 2000년에도 돌았다. 그런데 막상 차승원의 동네에서는 차노아가 차승원 아내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소문이 돌았다.[28] 둘은 92년에 결혼했다고 하는데, 이때는 차승원의 커리어 초반으로 이미지 관리가 굉장히 중요한 시기였다. 그런데 이 시기에 잘못하면 커리어를 접을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하고 속도위반을 저질렀다고 주변을 속인 것. 시대가 많이 변한 지금도 속도위반 결혼을 좋지 않게 보는 시선이 있는데, 더욱 보수적이던 90년대에 그냥 속도위반도 아니고 무려 미성년자로서 속도위반. 그런 거짓말은 진짜 커리어 박살날 각오를 해야 한다.[29] 영국 배우 데이비드 테넌트 역시 결혼하면서 아내 조지아 모펫의 아들을 자신의 큰아들로 입양한 사례다.[30] 사실 이건 90년대 당시에 유행하던, 지금으로 따지면 아재 개그다. 외국에서 사고치면 "스미마셍"해야한다는 것이며 당시 어린이들 사이에선 숫자 노래에서 "일일 일본놈인 김일성"이란 정체불명의 가사가 돌아다닐 정도였다.[31] 이 특집에서 그 유명한 말 좀 그만해가 나왔다.[32] 사실, 여기에는 김태호 PD의 입김이 있었다. 김태호 PD가 촬영에 앞서 차승원에게 어떤 차량에 반드시 타라고 권유했고, 그것이 탄광 가는 차량이었던 것이다.[33] 물론 드라마에선 '대본'의 힘으로 차승원이 이겼다.[34] 꼭 부유층이 모여 사는 아파트가 아니라도 경비원을 하인 취급하는 무개념한 사람이 적지 않은 걸 보면, 부유층으로 더 자만해지기 쉬운 차승원이 이렇게 대한 건 인간성을 확실히 입증해 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35] # ##[36] 강정버거 아트 시초자다.[37] 차승원은 모델 데뷔 시기까지 하면 박준형보다 10년 이상 앞서고, 배우나 심지어 방송 경력으로 봐도 선배다. 까마득한 후배인데다 공개적으로 74년생인데 실제 나이는 자기보다 형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38] "하나 있어, 유해진이라고" #[39] '이인무'가 극 중 본명이다.[40] 박훈정 감독의 신작.[41] 촬영장소 : 만재도.[42] 촬영장소 : 만재도.[43] 촬영장소 :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길.[44] 촬영장소: 죽굴도.[45] 촬영장소 : 멕시코[46] 화제의 인물로 출연.[47] JMT 마이사.[48] with 이광수.[49] 정우성과 같이 베가 광고를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