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경호 (문단 편집) === 2012년~ 일본 진출 === 미국 유학을 마친 뒤 자신감이 상승한 조경호는 일본의 단체들에 프로필을 돌렸고 일본 프로레슬링 단체인 ZERO1[* [[하시모토 신야]]가 세운 단체다]에서 긍정적인 답변을 받아 김남석과 함께 진출하게 됐다. 하지만 2012년 2월 'ZERO 1 KOREAKUEN 대회'에서 매우 저조한 경기를 보여주며 한 관중으로부터 '티켓값을 환불하라'는 강도 높은 비난을 받았다. 이후 김남석은 국내무대에 복귀하지만, 조경호는 다시 한 번 본인의 성장을 위해 일본으로 간다. 당시 ZERO1은 많은 유학생들이 머물고 있었다. 현 WWE에서 활약하는 [[조던 데블린]], [[조 코피]] 나 WWE팬들에게는 리바이벌의 대쉬 와일더로 더 유명한 [[AEW]] 태그팀 [[FTR(프로레슬링)|FTR]]의 캐쉬 휠러, [[드래곤 게이트]]의 제이슨 리나 [[호호룬]], 신일본의 [[로비 이글스]]나 [[잭 갤러허]] 등이 조경호와 함께 훈련했던 동료들이다. 조경호는 이러한 각국의 유망주들과 함께 리그전을 통해 좋은 활동을 하면서 팬들이 뽑은 리그전 MVP에 뽑히기도 했다. 리그전 종료 후 제로원의 주니어 헤비급 토너먼트인 천하제일 주니어 토너먼트 엔트리에 뽑혔지만 토너먼트 전 요코하마 문화체육관 경기에서의 발목부상으로 아쉽게 기권패를 하고 만다. 부상 복귀 후 조경호는 일주일의 4~5회의 혹독한 경기 스케줄을 소화하며 많은 경기를 통해 성장해 나갔고 당시 일본에 인기였던 한류열풍을 타고 본격적으로 한류레슬러라는 기믹으로 활동을 이어 나갔다. 2013년 1월 고라쿠엔홀 대회에서 당시 아케보노와 대결을 앞두고 있던 [[하시모토 다이치]][* [[하시모토 신야]]의 아들로 현재 대일본 프로레슬링에서 활동을 이어 나가고 있는 프로레슬러]의 부상으로 친구였던 조경호와 제이슨 리[* 현재 드래곤 게이트에서 활동하는 홍콩 프로레슬러]가 대신 상대를 하게 되었고 핸디캡 매치를 하였으나 패배하였다. 이후 신키바 1st 링에서 [[후도 리키야]]와 팀을 이루어 엠블렘[* [[오오타니 신지로]]와 [[다나카 마사토]]로 이루어진 태그팀. 2002년도 도쿄 스포츠 프로레슬링 대상 최우수 태그팀]과의 경기를 통해 팬들의 상당한 호평을 받았다. [* 티켓값을 환불하라는 첫번째 경기의 반응을 180도 뒤집어 버린것] 당시 조경호의 말에 따르면 팬들이나 매치메이커는 조경호의 푸쉬를 원했지만 오피스 측에서는 제이슨 리를 푸쉬했다고 한다.[* 본인말에 따르면] 당시 홍콩 프로레슬링 소속으로 활동하던 제이슨 리를 통해 제로원은 중국시장 역시 겨냥하고 있었고 초 인디 단체 규모의 홍콩 프로레슬링이었지만 활발히 활동하며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던 홍콩과는 다르게 한국의 프로레슬링은 역사는 깊지만 활발히 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한국의 프로레슬링 시장은 죽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후 제이슨 리가 [[WWE]]의 [[WWE 더 크루저웨이트 클래식]]에 참가한 것을 보면 오피스의 선택이 맞았다고도 할 수 있다.] 죽어가는 시장 때문이라고 생각한 조경호는 한국 프로레슬링의 발전을 위해 국내활동을 최우선으로 했고 예전처럼 레귤러 참전은 하지 않았지만 제로원 프로레슬링, 오사카 프로레슬링, 전일본 프로레슬링[* 마사카토 프로레슬링과 합동흥행에 참전하였다.], 도톤보리 프로레슬링, 마사카도 프로레스 등 여러 일본 프로레슬링 단체에서 스팟 참전을 하며 꾸준히 일본에서 오가며 경기를 뛰게 된다.[* 1년에 많으면 2번 적으면 1번]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