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국 (문단 편집) == 어원과 의미 == 비록 똑같이 '제국'이라는 단어로 묶여 있지만 [[동양]]의 '''천자국'''([[天]][[子]][[國]])과 [[서양]]의 '''엠파이어'''(Empire)는 그 뜻과 성격이 매우 다르다. [[동아시아]]에서는 [[황제]]가 다스리는 [[전제군주제]], 즉 제정을 정치체제로 채택한 국가를 의미한다. 다만 제국이라는 표현 자체는 옛 동아시아에서는 쓰이지 않았던 말이다. 실제로 [[조선왕조실록]]에서도 [[고종실록]] 이전까지는 '제국'이라는 표현이 아예 나오지 않는다. 실록 상에 帝國이 세 번 나오기는 하는데 이는 '제국'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글 중에 우연히 이어진 것이다. 서양에서는 동양과 다른 의미로 쓰이는데, [[델로스 동맹|아테네 제국 (Athenian empire)]]의 예가 있듯이 전제 군주가 없더라도 광대한 영토를 차지하고 그 안에서 다수의 민족이나 종족의 자치권을 부정하여 위계적, 계서적(階序的)으로 지배하는 국가를 보통 제국으로 지칭한다. 따라서 굳이 황제라는 전제 군주가 없더라도 제국이 될 수 있다. 현재 역사학계에서 쓰이는 용어도 이러한 서양적 관념 하의 제국이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제국"이라는 표현이 쓰이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왕국 같은 개념 역시 동아시아에서는 일체 쓰이지 않았다. 제국에 해당되는 단어는 '''천자국'''이었고 왕국에 해당되는 단어는 '''제후국'''이었다. 동아시아에서 제국이라는 단어가 쓰이지 않은 것은 동아시아의 황제는 "제국"이라고 불려야 할 하나의 나라가 아닌 천하 그 자체를 다스리는 사람[* 즉 [[명나라]]를 예로 들자면 명목상으로는 [[조선]], [[대월]](베트남), [[캄보디아]], [[일본]], [[여진족]], [[몽골족]] 모두가 명나라 황제의 백성이다.]이었기 때문이다. 즉, "나라"가 아닌 "나라들의 집합체" 그 자체를 다스리는 사람이기에 [[천하|황제의 통치권역]]에 감히 "나라"라는 단어 따위를 쓸 수가 없었다. 때문에 천자가 다스리는 중원 지역을 가리키는 중국이라는 단어는 가운데에 있는 나라가 아니라 나라의 가운데라는 국명이라기보단 지리적 뜻으로 이해되었다. 또한 중화권에서는 황제를 한 글자로 줄여쓸 때 '제'가 아니라 '황'을 선호해서 [[송나라]] 때의 당악을 보면 황제가 다스리는 지역을 '皇州'라고 표현했다. 자국을 황국이라고 부르던 시기의 일본도 천자국을 똑같이 '황국'이라고 표현했다. [[서구권]]의 제국 개념은 [[고대 로마]]의 [[라틴어]] Imperium(임페리움, 의미: 지배, 권위, 통제)에서 출발하는데 [[영어]]로 제국을 뜻하는 단어인 Empire([[엠파이어]]) 역시 임페리움에서 비롯[* Imperium은 영단어로도 쓰이는데, 이 쪽은 Empire와 묘하게 뉘앙스 차이가 있다. Empire는 정치적으로, Imperium은 군사적으로 우위를 차지한 것에 약간 무게가 실린다. 뒤에 이야기할 어원의 맥락이 반영된 것이다.]되었다. 임페리움은 후술할 역사적 사건을 거쳐 '황제국'(혹은 황제권)과 '군사적 지배'의 밀접하지만 구분되는 두 개념을 포괄하는 단어가 되었다. 미국이 가끔 미제(美帝)로 불리는 것은 미국이 군주국은 아니지만 주변국에 군사적 영향력, 즉 '임페리움'을 행사한다는 인식 때문인데 이를 알면 임페리움 개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임페리움은 역시 라틴어인 Impero로부터 유래했는데, 정치적 의미의 '지배'보다도 '지휘'[* 영어로는 "command"에 해당한다.]가 원래 의미로, [[로마 공화국]]의 [[집정관]], [[법무관]], [[조영관]] 등 선출직 정무관에게 고유의 지휘권[* 임페리움은 정무관의 권한에 맞춰 부여되었으며 꼭 군사 지휘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조영관의 '임페리움'은 수도 로마의 공공시설물과 이를 관리하는 인력들에 대한 것이었다.], 즉 임페리움이 부여된 것과 관련이 있다. 공화정 중기 로마의 영역이 확장되면서 2명의 현직 [[집정관]]이 맡지 않는[* 로마 공화국이 매년 전쟁을 수행하던 시기에, 집정관들은 보통 그 해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던 전선을 맡았다.] 여러 속주에 대해 원로원이 지정한 전직 집정관에게 집정관의 임페리움 중 해당 속주와 그 주둔군의 지휘권을 위임하는 Imperium proconsulare(임페리움 프로콘술라레[* 이후 전직 집정관만을 의미하던 proconsul은 속주 총독까지 지칭하는 단어로 확대되었고, 단순히 로마 정무관의 지휘권을 의미하던 임페리움은 로마의 속주 지배를 통한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개념이 된다.])가 부여되었다. 그러면서 정무관의 권한을 의미하던 임페리움은 주로 군사 지휘권을 지칭하게 되었고, 임페리움 보유자를 의미하던 Imperator(임페라토르)는 군 사령관, 그 중에서도 [[개선식]]의 주인공[* 공화정 후기에는 임페라토르가 단순한 군 사령관의 호칭이 아니었다. 중요한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뒤 유권자이기도 했던 군단병들이 사령관을 자발적으로 "임페라토르!"로 부르며 환호하는 것은, 사령관에게 로마 귀족의 최고 영광이었던 [[개선식]]을 치를 자격이 있다고 승인하는 관례였다. 이후 개선식에서 군단병들과 전 로마인이 개선장군을 임페라토르로 칭하며 환호하는 일은 개선장군에게 부여되는 가장 특별한 영예였다. 또 특정 개인이 공화국을 뛰어넘는 권위를 갖게 되는 것을 매우 경계했던 로마 공화국에서, 예외적으로 개선장군은 [[개선식]] 당일만큼은 종교적 권위를 드러내는 분장과 의상으로 치장하고 신에 가까운 존재로 추앙받았다. 따라서 임페라토르는 개선장군에게만, 그것도 인생의 절정인 승리와 개선의 순간에만 허용되는[* 개선식 이후에도 고참병들이 옛 사령관을 애정을 담아 임페라토르로 부를 때가 있기는 했지만, 그 정도의 예외를 제외하면 이는 모든 시민들이 사용하는 영구적인 호칭이 아니었다.] 초월적 영예와 선망이 집약된 호칭이었다. 따라서 이 호칭이 공화정기의 군사령관에게 부여되기는 했으나 군주의 칭호가 되어도 무리가 없을 정도[* 실제로 마리우스나 술라, 폼페이우스나 카이사르 등 화려한 전공을 올려 임페라토르로 환호받았던 이들은 독재자로 군림해 왕으로 등극하게 될 거라는 의심을 끊임없이 받았다.]로 범접할 수 없는 권위가 있던 것이다. 이 호칭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지위뿐만 아니라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전공이 뒷받침되어야만 했는데, 공화정 후기에는 사소한 공을 세운 지휘관들조차 개선식을 위해 휘하 병사들에게 자신을 임페라토르로 불러줄 것을 요구해[* 정치적 사정으로 이런 경우에도 개선식이 허용되는 일이 가끔 있었는데, 당연히 당대 로마인들도 이름뿐인 개선식과 '임페라토르'를 인정하지 않았고 이는 빠르게 잊혀졌다.] 빈축을 샀다. 그러다보니 두 차례 내전의 승자였던 본인이 처음 영구적으로 임페라토르를 칭하는 데는 별 문제가 없었으나, 군사적 실적이 부족한 후계자에게 임페라토르 칭호를 물려주면 로마인들에게 비웃음거리가 되는 것은 당연했고 나아가 정통성까지 흔들림을 잘 알았던 [[아우구스투스]]는 [[티베리우스]]와 [[게르마니쿠스]] 등 후계자 후보들을 최전선에 파견해 임페라토르 호칭에 어울리는 군공을 쌓도록 하기 위해 각별히 노력했다.[* 이렇게 황제나 계승 후보자가 최전선에 나가야만 하는 관행은 [[클라우디우스]] 이후 제정이 안정화되고 브리타니아 정복처럼 휘하 장군들이 수행한 전쟁도 황제의 공으로 인정되어 자연스럽게 개선식을 치르게 되면서 정리된다. [[대 드루수스]], [[가이우스 카이사르]], 루키우스 카이사르, [[게르마니쿠스]] 등이 줄줄이 객사하는 등 교통이 매우 불편하고 전염병과 매복 등 위협이 도처에 존재하던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황제나 그 후계자가 계속 전선에 나가 있는 것은 위험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그래도 클라우디우스는 로마에 앉아 서류만 만지지 않고 직접 출정했음을 보이기 위해 불편한 몸을 이끌고 잠깐이나마 브리타니아를 방문해야 했다. 그러면서 임페라토르는 자연스럽게 황제 가문이 세습하는 칭호가 된다.] 출발부터 서구의 황제와 제국 개념은 군 지휘권과 밀접한 관계가 있던 것이다.]에게 바쳐지는 호칭이 되었다. 그런데 [[로마 공화정]] 붕괴 이후 [[아우구스투스]]에게 속주 총독의 임페리움을 앞서는 Imperium proconsulare maius(임페리움 프로콘술라레 마이우스[* 독재관, 혹은 현직 집정관에게 부여되는 수준의 광범위하고 속주 총독이나 법무관 등의 임페리움에 우선하는 명령권이다. 원래 1년 임기의 집정관이나, 위기시에만 독재관에게 아주 짧게 부여되던 이러한 광범위한 임페리움은, 야심가들의 꼼수나 지속되는 내전 때문에 임페리움 마이우스로 이름을 바꿔 기한을 늘려가며 점차 상설직으로 변하는 흐름을 거쳐 결국 황제의 영구적 권한이 되었다. 아우구스투스라는 천재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지만, 제정으로의 변화는 기존 [[로마 공화정]]의 헌정질서, [[모스 마이오룸]](Mos maiorum)이 점차 유연화되고 붕괴되는 흐름의 연속선상에서만 온전히 이해될 수 있다. 원래 [[독재관]]에게는 집정관의 권한에도 우선하는 무제한의 임페리움이 부여되었지만, 공화정 중기까지는 위기 때만 임명되는 6개월 임기의 비상설 독재관이 다른 정무관들 위에 군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때문에 예외적 상황에서 독재관이 취임할 때를 빼면 [[집정관]]이 정국을 주도했으나, 공화정 후기 정쟁이 격화되고 전란이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집정관 직에서도 상대 붕당의 집요한 반대, 특히 [[호민관]]의 거부관에 시달리던 공화정기의 거물들은 점차 반대가 불가능한 독재관의 비상대권에 눈독을 들이게 되었다. 합법적으로 미트리다테스 전쟁을 지휘할 권한이 있던 현직 집정관 [[술라]]는 호민관 술피키우스의 책동으로 인해 [[마리우스]]에게 지휘권을 빼앗겼으며, 로마 입성 후 집정관에 취임해 가급적 법의 틀 내에서 내전을 수행하려던 [[카이사르]]는 군자금 확보 과정에서 호민관 메텔루스의 거부권 행사에 꽤나 애를 먹었다. 결국 술라와 카이사르는 통상적인 6개월의 임기 대신, 무기한 임기의 독재관에 취임하며 이 문제를 해결하게 된다. 다만 [[술라]]와 [[카이사르]] 이후 독재관은 공포와 독선의 대명사가 되었고, 누구나 탐낼법한 초법적 권한이 있음에도 독재관 취임은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 되었다. 때문에 [[폼페이우스]]는 독재관 취임 대신 해적 소탕을 위해 3년간[* 폼페이우스는 절대적 권한을 효율적으로 행사해 3개월 만에 임무를 완수하고 깔끔하게 이 전대미문의 임페리움 마이우스를 내려놓았다. 다만 이는 특정인에게 장기간 임페리움 마이우스를 부여할 수 있는 선례가 되어, 공화정 헌정의 붕괴로 이어지는 단초가 된다.] 바다와 해안의 속주, 군대에 한해 독재관의 권한만 행사하는 임페리움 마이우스를 민회에 요청해 승인받았고, 이를 본받은 2차 [[삼두정치]]의 구성원들은 제국을 셋으로 나눈 뒤 각자의 영역에 대한 5년 임기의 임페리움 마이우스를 민회로부터 부여받아 전권을 행사하였다. 이후 안토니우스와의 내전 과정에서 삼두정치 구성원들에게 부여되었던 임페리움이 확장되어, 옥타비아누스에게 본국 이탈리아, 제국의 전체 속주와 군대에 대한 임페리움 마이우스가 부여되었다. 결국 내전 승리 후 [[아우구스투스]]가 된 옥타비아누스는 제국이 안정되지 않았다는 구실을 들어, 이탈리아와 안정된 후방의 임페리움은 내놓았지만 죽을 때까지 전방 속주와 주둔군에 대한 지휘권만은 내려놓지 않았다. 결국 이는 후계자 [[티베리우스]]가 물려받아, 로마 황제가 대대로 세습하는 권한이 된다.])가 부여되어 속주의 군 지휘관은 최고 임페리움을 가진 아우구스투스의 대리인으로 격하되었다. 결국 [[제정 로마]]가 정착되고 아우구스투스의 계승자들도 '임페리움'을 독점하며 자연스럽게 임페리움 보유자를 부르는 말일 뿐이었던 [[임페라토르]]는 이를 독점하고 상속하는 군주의 호칭이 되었고, 이후 임페리움은 임페라토르가 다스리는 나라, 곧 제국을 의미하는 단어로도 쓰이게 되었다. 제정이라고는 해도 뼈대는 군주제 또는 [[봉건제]]·[[군현제]](즉 왕국)와 사실상 거기서 거기지만, 굳이 차이점을 꼽자면 제국은 내부에 여러 [[민족]]이 각자의 [[정체성]]과 때로는 신분상의 차별을 지닌 채 혼재되어 있으며 다수의 소국[* 예컨데 제국 내의 소왕국, [[공국]], [[후국]], 변경백령, [[백국]], 자치령 등이다.]을 영토 안에 아우르고 있거나 신하국의 형태로 주변에 거느린 상태[* 주로 동아시아에서 볼 수 있는 형태다.]라는 것을 들 수 있겠다. 보편적으로 [[왕국]](Kingdom)보다 권위에서 우월한 군주 국가라는 뉘앙스가 강하므로 주위의 이런저런 국가들 사이에서 특히 두각을 드러낼 만한 막강한 [[국력]]을 지니고 축적된 국력(무력)을 정복전쟁 등의 형태로써 활발히 행사함을 전제로 인정되는 경우가 많다. [[중세|중세시대]]까지 [[유럽]]에서 이 단어는 [[동로마 제국]], 그리고 [[서로마 제국]]을 계승했다고 자처하는 [[신성 로마 제국]]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차차 국경을 넘어 여러 국가의 주관을 좌지우지 하는 [[강대국]]을 통칭하는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동아시아권에선 [[천자]]인 [[황제]]가 다스리는 국가를 지칭한다. 당시 주변의 국가는 이 나라를 천자국으로 높여 불렀으며, 천자국에 입국하는 것을 하늘을 뵙는다는 뜻의 조천이라 부를 정도로 위세를 떨쳤다. 동아시아의 질서는 [[조공]] 체제와 관련이 깊은데 천자국이 주변국 위에 군림할 수 있게 하는 대신 소국은 대국을 섬기며 대국은 소국을 도와야 한다는 [[유교]]적 사상에 의해 상황에 따라 왕왕 달라지지만 되로 주고 말로 돌려받는 경우가 다반사인 것도 사실이었다. 이는 당시 [[중원]]의 문화와 경제력이 주변국을 압도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일단 군사력이 최약체로 알려진 [[송나라]]도 나름 주변국으로부터 천자국 대우는 받고 살았다.[* 다만 체면을 살리기 위해 어마어마한 정부 재정의 지출이 있었으며 이는 모두 어마어마했던 송나라의 경제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중동]] 지역의 경우 [[이슬람]]의 등장 전엔 [[페르시아]] 계통에서 황제의 뜻으로 쓰이던 샤한샤라는 호칭이 있었다. 이슬람의 등장 직후엔 이슬람 사회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정당한 후계자들이 [[칼리프]]의 칭호를 달고 전체 이슬람 제국을 통치했다. 당시 이슬람 사회 전체는 칼리프 아래의 단일 국가로 제국이라 불릴 만했다. 그러나 각 지역의 [[술탄]]들이 독립하면서 칼리프는 유명무실한 지위가 되었고 이후 오스만 제국의 군주들에게 직위가 양도되면서 [[오스만 제국]]이 이슬람의 수호자가 된다. 마찬가지로 중국의 [[천자]] 역시 제대로 된 황제이고 중국 역시 제대로 된 제국인데 중국의 행정구역상 군(郡) 또는 국(國)이 왕국에 해당되기 때문이며 그 넓이와 규모 역시 조선이나 왜국보다 더 큰 군(郡) 또는 국(國)이 존재하기 때문에 천자=황제 역시 말이 된다. 중국에서 황제의 포지션은 천자이며 그 휘하 왕국의 왕의 포지션은 왕(천자의 친족) 또는 [[태수]](일반인)가 된다. [[삼국지]]를 보면 '''○○태수'''라는 직함이 상당히 자주 나오는데 그 '태수'가 바로 황제 휘하의 관리다. 다만 천자의 일족이 다스리는 군(郡)인 국(國)의 경우 [[입헌군주제]] 또는 [[비주권군주제]]의 형식을 띠고 있어서 총리에 해당되는 국상(國相)이 왕 대신 해당 국을 다스린다. 호칭 역시 천자의 일족이 태수의 역할을 하고 있을 경우 남자는 왕, 여자는 공주로 칭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