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442연대전투단 (문단 편집) == 역사 == 제442연대전투단은 [[백악관 행정명령 9066호#s-7|제100보병대대]]가 먼저 창설된 이후인 1943년에 일본계 미국인 부대를 창설할 수 있도록 허용되면서, 본격적으로 자원자들을 받아 제442연대전투단이 창설되었다. 다만 이들은 [[태평양 전쟁]]에서 싸우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제442연대전투단은 미국 본토에서 훈련을 마친 뒤 제1대대를 제외한 상태[* 본토에 남은 제1대대는 독립부대인 제171보병대대로 재편되었다.]에서 1944년 5월 이탈리아로 파병되었고, 제34보병사단 소속으로 이미 싸우고 있던 제100보병대대와 합류했다. 그리고 제100보병대대는 명칭을 제1대대로 바꾸지 않고 제442연대전투단에 합류했다. 이탈리아에 도착한 제442연대전투단은 1944년 6월 수베레토에서 첫 실전을 경험했고, 아르노 강까지 진격했다. 이후 남프랑스 전선으로 전속되고나서는 제36보병사단 소속으로 [[마르세유]]에 상륙해 브뤼에르와 비퐁텐느에서 전투를 치뤘다. 그리고 같은 사단 소속이였던 제141보병연대 1대대가 고립되자[* 속칭 [[https://en.wikipedia.org/wiki/Lost_Battalion_(Europe,_World_War_II)|잃어버린 대대]](Lost Battalion).], 당시 사단장이던 [[https://en.wikipedia.org/wiki/John_E._Dahlquist|존 달퀴스트]] [[소장(계급)|소장]]은 제442연대전투단에 구출을 명령했다. 제442연대전투단은 격전 끝에 고립되었던 대대를 구출하는데 성공했지만, 그 과정에서 제36보병사단에 배속되었을 당시 3,000명에 가깝던 인원 중에서 단 3주만에 2,000명에 가까운 사상자가 발생했다.[* 달퀴스트 사단장은 이로 인해 많은 비판을 받았다. 잃어버린 대대를 구출한 이후, 달퀴스트 사단장은 제442보병연대를 시찰하던 와중 적은 수의 부대원을 보고 다른 부대원은 어디있냐고 연대장을 질책했지만, 이에 버질 밀러 연대장은 '''"그들이 전부입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리고 달퀴스트 사단장이 본토에 시찰을 갔다가 전 100보병대대장 고든 싱글스 중령을 마주쳤는데, 싱글스 중령도 높은 계급의 상관에게 예의를 차렸지만 끝내 달퀴스트 장군의 악수 요청을 거절했다고 한다. 하지만 달퀴스트 사단장은 전후에도 계속 진급해 1956년에 [[대장(계급)|대장]] 계급으로 전역했다.--[[에드워드 알몬드|알몬드]] 과였나 보네.--] 이후 제442연대전투단은 리비에라로 재배치되었고, 프랑스-이탈리아 국경의 순찰 임무를 맡았다. 그리고 지크프리트 라인에 배치된 제522야전포병대대를 제외한 나머지 부대는 이탈리아로 복귀해 고딕 라인을 돌파하는데 투입되었고, 이탈리아에서 종전을 맞이하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