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민철 (문단 편집) === 2010 ~ 2011년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file.osen.co.kr/201401271532772219_52e5fdd34ab35.jpg|width=100%]]}}}|| || {{{#fff '''한화 이글스 코치 시절'''}}} || 은퇴 이후 2010년 [[한대화]] 감독 체제에서 바로 코치진으로 이동했으며 코치로서 [[한화 이글스]] 마운드를 볼 때마다 속이 타들어갔을 것이다. 2010년 당시엔 불펜코치인 데다가 별다른 언급도 없어서 그냥 평범한 투코로 1년을 보냈으나, 특이한 투구폼으로 10여 년간 코치들에게 투구폼을 변경해야 한다는 강요와 투구폼을 변경하면 오는 어깨의 통증 때문에 투구폼을 바꿔야 하나 하는 고뇌와 자괴감에 빠져있던 [[박정진]]에게 '''네가 정말 던지고 싶은 투구폼으로 던져라'''라는 조언과 신뢰를 보내줘서 2010년 그의 각성을 이끌어내 [[한화 이글스]] [[불펜]]의 핵심으로 만들었다. 2011년 1군 서브코치로 코치 생활을 시작하여 [[한용덕]] 코치와 함께 [[장민재]], [[안승민]]을 성장시키고 [[양훈]]을 부활시켰다! 2011년 5월 2군으로 내려간 [[한용덕]] 코치 대신 1군 메인코치가 되었다. [[한화 이글스]] 투수들에게 자신이 현역시절 즐겨 던졌던 '''슬로커브'''[* 현역시절 정민철의 커브는 ''''백팔번뇌 커브''''라고 할 정도로 위력이 좋았다. 150Km/h에 육박하는 직구를 던진 후 낙차폭이 큰 100km/h대의 슬로커브를 던져서 타자들을 많이 고뇌시켰다. 이 슬로커브 말고도 12시에서 6시로 낙차 크게 떨어지는 파워커브도 보유했다.]를 전수했으며 실제로 2010 시즌에 [[유원상]]이 슬로커브를 장착하면서 꽤나 재미를 봤다. 2011 시즌이 지나가면서, 투수 교체가 서툰 [[한대화]] 감독을 대신해 투수교체 전권을 잡았다.[* 표면상으로만 [[한대화]] 감독이 투수 교체 타이밍을 정민철 코치에게 물어보고, 대게 그의 의견을 거의 따랐다.] 그래서 생긴 별명이 바람돌이, 정[[간신#s-2]]. 선발 투수를 한계 투구수까지 던지게 하면서 최대한 긴 이닝을 먹게 했다. 이런 방향성에서 가장 극적인 변화를 보인 투수가 [[양훈]]. 조금 투구수를 많이 가져가게 하면서 완봉승을 하게 된 뒤로 급격히 변화하기 시작했으며, '''10이닝''' 연장전에서 선두 타자에게 2루타를 맞으면서 무사 2루의 위기를 처하게 되었음에도 한대화 감독을 설득해 양훈 스스로 이닝을 끝내게 하였고, 이후 양훈은 기복이 심했지만 2경기에 한 경기 꼴로 [[류현진]]에 버금가는 성적을 내주게 되었다. 다만 부정적인 측면도 있었는데, 이렇게 어지간한 상황은 [[선발 투수]]에게 맡긴 탓에 투수 교체가 계속 한 타이밍씩 늦어져 결국 상황을 수습하지 못하고 날려먹은 경우가 있었다. 이 때문에 정민철의 투수 교체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 팬들도 다수. 그래도 이 때까지는 [[박정진]], [[양훈]], [[김혁민]],[* 김혁민은 2군에서 갑자기 달라져서 돌아와서 당시 2군 코치였던 [[송진우(야구)|송진우]]의 공이라는 말이 많았다.] [[안승민]]을 키워낸 명코치라고 찬양받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