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민철 (문단 편집) === 선수 시절 관련 일화들 === * 손가락이 긴 것으로 유명하다. [[파일:/image/020/2010/09/04/30966740.1.jpg]] 데뷔 때부터 화제가 되었을 정도. 당장 이 문서 개요에 있는 젊었을 적 사진을 보라. 손이 본인 얼굴만 하다. 특히 [[선동열]]이 "내 손가락이 정민철만큼 길었으면 [[슬라이더]]를 더 잘 던질 수 있었을텐데..."라며 부러워한 것도 꽤 유명한 이야기.--거기서 슬라이더를 더 잘 던진다고?--이 때문에 손가락이 길어서 조금만 더 갈고 닦으면 변화구를 잘 던질 수 있을 거라는 식의 이야기를 선수 생활 내내 들어야 했다. 물론 손가락이 길다고 변화구를 잘 던질 것이라는 것은, 지금까지도 야구계 일각에 존재하고 있는 대표적인 편견. 정민철 본인은 코치 시절에 이런 견해를 밝혔다.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20&article_id=0002164654|기사]][* 다만 [[포크볼]] 등의 일부 체인지 오브 페이스 계열 구종구사에 있어서 긴 손가락은 대단한 메리트를 가지는 건 사실이다. 짧은 손가락으로는 구사 자체가 힘들기 때문. 실제로 불미스러운 일로 야구계를 떠난 사이드암 투수 [[박현준]]은 일반인들에 비해 손가락이 마디 하나 정도 더 길어서 포크볼 구사가 힘든 사이드암임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포크볼을 선보인 바 있다.] * [[선동열]]의 후계자라는 별명답게 선동열이 아끼는 선수였다. 정민철이 결혼을 전후로 해서 체격이 불자[* 솔직히 배가 나오기 시작.] 타팀 선배인 선동열이 따로 불러 몸 관리 안 하냐고 타박을 주었다.[* 이런 저런 정황으로 볼때 선동열은 팀을 가리지 않고 좋은 투수가 나오면 애착을 갖는 듯하다. 인터뷰를 봐도 자기와 같은 케이스인 직구-슬라이더를 잘쓰는 [[김광현]], 심지어 같은 팀 후배 겸 제자인 [[윤석민(투수)|윤석민]]보다 타팀 에이스 [[류현진]]을 더 아끼는 발언이 있다.] * [[박경완]]이 평생에 잡아본 최고의 직구로 꼽았다.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18&article_id=0000496547|기사]] 선동열의 직구가 돌덩어리를 잡는 느낌이라면 정민철의 직구는 공을 잡아도 그 안으로 파고드는 독수리 같다고... 역시 이글스의 상징다운 독수리 직구. 사실 [[박경완]]의 발언이 2000년대 후반의 팬들에게 유독 널리 알려졌을 뿐, 애초에 정민철은 90년대 초중반부터 계속해서 이런 식의 평가를 받아왔다. 포수 바로 뒤에서 공을 보는 심판들이 뽑은 최고의 직구로 정민철과 당시 OB 베어스의 [[김상진(1970)|김상진]]을 꼽는 기사도 있었고, 이종범 역시 최고 직구로 정민철의 공을 뽑으며, [[오승환]], [[임창용]]보다 낫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44&article_id=0000242062|기사]] * 선수 생활 동안 맞은 홈런 중 본인에게나 당시 팬들에게나 가장 임팩트가 컸던 홈런은, 1996년 8월 23일 [[이종범]]에게 바깥 높은 공을 던져 허용한 홈런. '''9회초 2사 만루 4대 1로 앞서던 중 맞은 역전 만루 홈런'''이었기 때문. 이날 정민철은 잘 먹지도 못하는 소주를 혼자서 2병이나 깠다고.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073&article_id=0002396953|기사]] 한편 이 홈런이 나온 경기가 바로 이종범이 9회말에 '''포수마스크'''를 쓴 경기이다. 즉, 9회초에 총력전을 펼치느라 포수가 교체 되었는데 역전 만루홈런을 치고 9회말에 포수가 없어서 대신 그 자리에 들어갔다. 사실 이런 역전패의 결과가 나오게 만든 최고 원흉은 다름 아닌 감독 [[강병철]]이다. 애초에 정민철은 이 경기 선발이 아니었다. 송진우가 8회까지 1실점으로 던지고, 9회에 힘이 떨어져 연속해서 주자를 내보내자 갑자기 정민철을 구원 등판시켰던 것. 그리고 구원 등판까지는 이해한다고 쳐도, 이 경기에 패한 후 강병철의 인터뷰가 그야말로 걸작. "정민철 정도의 베테랑이라면 알아서 거를 줄 알았다"라나 뭐라나. 정민철은 통산 BB/9가 2.81에 불과할 정도로 볼넷을 꺼리는 타입으로 유명했으며, 1996년은 패스트볼 구위가 하늘을 찌르는 전성기 때였다. 그런 정민철이, 아무리 상대가 전성기 이종범이라고 해도 밀어내기를 감수하며 2사 만루에서 유인구로 승부한다? 그야말로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 정말로 강병철이 2사 만루에서 이종범을 걸러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명확하게 사인을 냈어야 한다. 그것도 아니라면 경기 끝난 후에 선수탓으로 돌리며 입을 털어서는 안 되었던 일. 하지만 이후 정민철 위원의 인터뷰에서 해당 경기에서의 등판이 자원등판이었음을 밝혔다. *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야구 대표팀]]과 별로 인연이 없었다. [[아시안 게임]]이나 [[올림픽]]에 출전한 경험이 전무. 처음으로 프로가 아시안 게임 등에 출전하게 된 것이 [[1998 방콕 아시안 게임]]인데 이 때는 엔트리가 100% 미필자로만 채워졌었고, [[2000 시드니 올림픽]]은 일본 진출 첫 해라서 자연스럽게 이름이 거론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김경문호/2007년|2007년 추가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던 것이 전부. 다만 시드니 올림픽의 경우, 올림픽 예선전인 1999 서울 아시아 선수권 대표로 출전했었다. 또한 [[한일 슈퍼게임]]에도 1995년과 1999년 2회에 걸쳐 출전하여 호투했다. * 상복하고도 담을 쌓았다. 신인 시절 [[염종석]]에게 신인상에서 밀린 것은 유명하지만, 그 이후로도 [[KBO 골든글러브]] 수상을 한 적이 없다. 두 자리 숫자 패전 때문에 번번이 발목을 잡혔기 때문.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