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경배 (문단 편집) === [[삼성 라이온즈]]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photo.isportskorea.com/20040221152059288.jpg|width=1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photo.isportskorea.com/20000901212221107A3.jpg|width=100%]]}}}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photo.isportskorea.com/20010619173534524A5.jpg|width=1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photo.isportskorea.com/20000113000007720.jpg|width=100%]]}}} || 인천창영초, 대헌중, [[인천고등학교 야구부|인천고]], [[홍익대학교 야구부|홍익대]] [[무역학과]][* 92학번 ~ 96년 졸업 진학 당시 경영대학 무역학과(현 경영학과와 통합)]를 졸업하고 1996년 2차 5라운드로[* 사실 상위픽은 아니다. 다만 1996년은 이례적으로 2차 지명에서 한계가 없던 마지막 해였기 때문에 삼성은 무려 25명을 2차 지명에서 지명했고 이 중 16명이 입단했다. 1차 지명과 고졸우선지명을 합치면 29명 지명, 20명 입단이었다.]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 [[이동수(야구선수)|이동수]]가 수비 불안으로 자리를 옮긴 3루수 자리를 꿰차면서 [[백인천]]의 팀 리빌딩 주축 중 하나로 좋은 활약을 보였다. 이듬해부턴 [[김한수]]가 3루수에 자리잡게 되며 정경배는 붙박이 2루수로 고정, 백인천 감독이 밀어주던 리빌딩 주축들과 자리잡기 시작했고 [[이승엽]]-정경배-[[김한수]]-[[김태균(1971)|김태균]]으로 대표되는 삼성의 철벽 내야진을 구성하기도 하였다.[* 그 과정에서 타격이 시원찮던 [[김재걸]]은 대수비 - 대주자로 밀려나게 된다. 1995년에 2차 2라운드로 영입된 선수였지만 이 시기 리빌딩 과정에서 가장 중요시되던 덕목은 공격력이었다.] 타순은 주로 6~7번으로 하위 타순이었지만, 1999년에는 훌륭한 성적과 [[빌리 홀]]의 막장 출루율로 인해 1번 타자로 뛰기도 했었다.[* 1루는 훔칠 수 없다는 명언도 있듯이 발이 아무리 빨라도 1루에 나가질 못하면 리드오프로 뛸 수는 없다.] 1997년 5월 4일 대구에서 열린 [[LG 트윈스]]전에서 [[장문석]](1회말)과 [[차동철]](2회말)을 상대로 [[삼성 라이온즈/1997년/5월/4일|연타석 만루홈런]]을 쳐낸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이때 세운 1경기 8타점 또한 2015년 9월 20일 [[박석민]]이 9타점으로 경신하기까지 한국야구에서 한 선수가 올린 한 경기 최다타점 기록이기도 했다. 정경배 이후로 12차례의 타이 기록이 나왔는데, 그 중에는 [[이용규]], [[강민호]], [[최정]], [[최주환]] 등이 있었다. 그리고 LG의 [[천보성]] 감독은 이 경기 후 [[삼성 라이온즈/사건사고#s-1.7|삼성이 부정 배트를 사용했다고 의혹을 제기했고,]] [[백인천]] 삼성 감독도 그에 맞대응하며 한동안 LG와 감정 싸움을 벌인 적이 있었다. 그럴만도 한 게 3연전에서 홈런 17개 포함 49점이나 두들겨 맞았으니…. 게다가 정경배의 방망이는 톱으로 잘려지는 비운을 당했다. 하지만 배트 제조사인 [[미즈노(브랜드)|미즈노]]에 검사를 의뢰한 결과,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여기에 더해 5월 24일 메이저리그 사무국에 배트의 정밀검사를 의뢰했고 X레이검사와 도료검사까지 거친 뒤 6월 16일 이상이 없다는 최종 판단을 내렸다. 즉 결론을 내리면 당시 정경배는 그냥 갑자기 필을 받아서 방망이가 잘 맞았다는 것밖에......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7/1766424_19482.html|정경배 만루홈런]] 또, 그해 6월 27일 [[강인권]]의 전무후무한 '''끝내기 타격방해'''때 타격방해를 받은 타자였다. 커리어 하이는 1999년. 주전 2루수로 105경기에 출장해 타율 0.312, 18홈런, 16도루, OPS 0.870을 기록하며, 홈런 2개, 도루 4개 차이로 아쉽게 20-20을 놓쳤을 정도로 여러모로 인상깊은 활약을 보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