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전쟁경제 (문단 편집) == 특징 == [[경제]] 상황이 망해가는 지름길이다.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만 그럼에도 물건은 항상 부족한 상황이다. 당연하지만 [[전쟁]]은 인력, 물자, 자본을 모두 급격히 소모시키고, 사회 시스템을 무너뜨리기 때문에 경제에 매우 안 좋다. * 인력: 모든 젊은이를 군대에 징발한다. → 인력부족으로 거의 모든 기업이 업무 정지. * 자본: 모든 자본을 군대에 투입한다. → 자본이 메말라서 역시 거의 모든 기업이 업무 정지. * 물자: 모든 물자를 군대에 투입한다. → 물자가 메말라서 역시 거의 모든 기업이 업무 정지. 따라서 [[사회]] 전반이 전쟁으로 인한 지출 때문에 극도로 피폐해지게 된다. 전쟁은 결국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지만, 물자는 끝없이 소모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대전]]은 약탈이라도 일어나지 않는 이상 피해가 주로 전장에 국한되던 근세의 전쟁과는 다르게 [[한국군 vs 북한군]]처럼 한쪽이 압도적으로 강하거나 일방적으로 쳐들어가 남의 영토에서 전쟁 중인 쪽이 아닌 이상 민간 부분에도 심각한 피해를 입힌다. [[제2차 세계 대전]] 이래로 전쟁으로 인해 사망하는 민간인의 비율은 군인보다 많아지고 있다. 이는 이전과는 달리 국가의 통제력이 강해져서 전쟁이 국가의 모든 국력을 쏟아넣는 "[[총력전]]"의 형태를 띠게 되었기 때문이며, 따라서 적을 무찌르기 위해서는 적의 군사력을 떠받치는 경제력. 즉, 민간 부분까지 파괴해야 한다는 전략 사상이 태어났기 때문이다. 근세전에서는 그나마 [[전쟁]]의 피해를 보상해주던 [[전쟁배상금]] 또한 [[현대전]]에서는 거의 의미가 없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전쟁비용이 너무 늘어난 탓에 [[총력전]]을 벌인 결과 국가가 입게 되는 피해는 제 아무리 국력을 들여도 배상할 수가 없게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프로이센-프랑스 전쟁]]까지는 [[프랑스]]가 [[독일]]에게 전쟁배상금을 갚을 수 있었지만,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막대한 양의 전쟁배상금이 부과된 독일은 결국 배상금을 상환할 수 없었다.[* 1차대전 종전 이후 전후처리를 위한 [[파리 강화 회의]]에 영국대표단의 일원으로 참가했던 [[케인즈]]는 전쟁에서 입은 모든 피해를 보상받겠다면서 엄청난 [[전쟁배상금]]을 요구하는 프랑스 대표단에 대해서, "현실적으로 독일이 갚을 수 없는 배상금을 부과하는 것은 전후 유럽경제 재건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격렬하게 반발하였다. 하지만 결국 프랑스의 강경론에 영국 정부가 동조하면서 1320억 마르크라는 천문학적인 액수의 배상금 강제징수를 골자로 하는 [[베르사유 조약]]이 체결되자, "이제 남은 것은 전쟁뿐"이라는 비판을 남기고 사퇴하였다. 그리고 이 문제를 다룬 저서 『평화의 경제적 귀결』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케인즈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결국 독일 경제의 붕괴로 연합국은 얼마 안 가서 그 액수를 대폭 경감해야 했으며, 그마저도 거의 받지 못했다. 말 그대로 실리도 명분도 다 놓친 최악의 조약. 게다가 베르사유 조약에 대한 독일인들의 격렬한 반발은 나치 정권을 탄생시켜서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 시점에서 세계열강 간의 전면전쟁은 국가로서 감당할 수 없는 상상을 초월한 피해를 입히게 된 것이다. [[현대전]]에서는 특히 [[전쟁]] 비용이 늘어났으며, [[미국]]조차도 [[이라크 전쟁]]의 결과 경제적으로 피폐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전보다 훨씬 더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하는 사회가 되었고, 이는 정치권에서도 전쟁을 위해서는 감수해야 할 대가가 훨씬 늘어나는 결과로 이어졌다. 때문에 [[선진국]]에서는 더욱 전쟁을 기피하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