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자유도시 (문단 편집) == 자유도시의 [[현실]] == 일단 실질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기 가장 편한 위치인 영주의 지배를 받지 않고, 시민들이 모두 자유민이라는 점에서 영주의 지배를 받는 도시 내지는 [[장원(농업)|장원]]보다 더 살기 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실상은 호랑이 없는 골에 여우가 왕이 된다고 도시 내의 유력자, 특히 배신(陪臣. Vavasour)이나 도시 내 행정·사법업무를 수행하던 ministerialis, 소수의 부유한 대상인이 사실상의 영주 행세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애초에 수도와 인접한 지역이 아니라면 국왕이나 황제가 직접적으로 통제하기가 힘들다는 점에서 결국에는 도시 내 유력 가문의 수장이 시장이 되어 봉건 영주와 다를 바 없는 권한을 행사했고, 시 의회(번역에 따라서는 시참사회)에서는 여러 [[길드|상인조합 및 동직조합]]의 알력다툼이 벌어졌다. 게다가 이쯤 되면 속된 말로 거주자들의 대가리가 굵어질 대로 굵어진 지라 봉건 영지에 비해 정치적 불안정성이 상당히 심했다. 즉 여러 유력 [[가문]]들이 [[시장(공무원)|시장]] 자리를 두고 정치적인 암투를 벌이기도 했다. 중세말~[[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 [[도시국가]]들 역사는 이런 면이 특히 두드러진다. 특히 자유도시도 여전히 기존 [[기득권]] 세력과 자유도시에서 성장한 신흥 세력 간의 갈등이 이어졌다. 이 신흥 세력들은 주로 상공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었는데, 이들은 봉건 영주나 [[교회]] 세력에 비하면 세력이 미약했기에 결국에는 국왕 혹은 황제와 결탁하게 되고, 이는 [[절대왕정]]으로 이어진다. 더구나 [[신성로마제국]]의 경우는 [[황제]]-영주들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형성된 곳들이 대부분이라 어차피 누군가의 말이나 편을 들어야 하는, 이름만 자유도시인 곳들이 일반적이었다. 이곳에서 대부분의 도시들은 황제-교황-영주들 간 힘겨루기 속에 열심히 줄을 갈아타야했다. 무엇보다 자유도시들은 국력에서 황제와 영주들에게 상대가 되지 않고 군사력도 미약하다보니 그들의 눈밖에 난다 싶으면 황제와 영주들이 보낸 군대에게 공격당하여 도시가 망할수도 있었다. 특히 북이탈리아는 줄 잘못 섰다가 도시가 쑥대밭이 되는 일이 자주 발생했다. 심지어 상대적으로 실권이 적었던 [[교황]]까지 당시에도 꽤 강한 도시인 [[피렌체]]의 대표였던 [[단테 알리기에리|단테]]가 말을 잘 듣지 않자 그냥(...) 호출해서 추방하기도 했다. 또한, [[부르주아]] 계층이 사회정치적으로 유의미한 의미를 가지게 되는 기반이 되었기에 자유도시의 위상을 높게 쳐주지만, 실상은 자치 특허를 부여받은 [[행정구역]]의 이름이었을 뿐 도시라고 할 정도로 큰 곳은 드물었다. [[14세기]] 중반 기준 [[독일]]의 자유도시는 3천 개에 이르렀지만 고작 인구 1천을 넘는 곳이 불과 200여 개였고, 1만을 넘는 곳은 20개에 불과했다. 전근대 시기 최소한의 도시 기능을 수행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기준 인구가 2천인걸 생각하면, 중세 유럽의 대다수 자유도시는 현대로 치면 큰 [[마을]]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이런 경향은 [[유럽]] 대륙에선 [[프랑스 혁명]] 시대 직전까지 이어졌다. [[성벽]]을 두른 도시도 별반 다를 바 없었는데, 성벽이 주거지에서 저 멀리 떨어져있고 널찍하게 밭, 목초지를 둘러서 도시라기보다는 그냥 [[시골]](...)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고 성벽은 그냥 울타리 정도로만 보이는 케이스가 상당수였다.[[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54149|#]] 특히나 성벽은 축조 자체가 돈이 많이 깨지는 터라, 오히려 실거주자인 도시민은 어떻게든 성벽을 안 짓거나 자기 몫을 줄이려고 들고, 주군인 군주나 영주는 기필코 성벽을 쌓게 만들려고 하는 기현상도 벌어졌다.[* 성벽의 축조 및 관리는 도시를 분할하는 몇 개의 소규모 [[공동체]](특히 재판공동체나 종교공동체) 단위로 부과되었고, 그 외에도 성문 및 성벽에 파수병을 세우거나 직접 파수임무를 맡는 일, 방어 시 무장하고 성벽에 투입되거나 그 일을 대행할 [[용병]]을 유지하는 일 등 몇 가지 의무가 뒤따랐다.] 또 이런 도시민들은 자신들이 촌락의 사람들과 구분되는 특권 계층이라는 의식이 무척 강했고, 배타성도 강하여 주변 [[농민]]들을 멸시하고 착취하는 경향도 있었다. [[빌런]]이라는 단어의 유래가 촌락민이라는 말에서 유래했을 정도니 도시민들의 촌락 멸시가 얼마나 심했는지 알만하다.[[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54148|#]]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