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임진강 (문단 편집) == 개요 == >림진강 맑은 물은 흘러 흘러 내리고 >뭇새들 자유로이 넘나들며 날건만 >[[대한민국|내 고향 남쪽 땅]] 가고파도 못가니 >림진강 흐름아 원한 싣고 흐르느냐 > >강 건너 갈밭에선 갈새만 슬피 울고 >[[보릿고개|메마른 들판에선 풀뿌리를 캐건만]] >[[집단농장|협동벌]] 이삭 바다 [[풍년|물결 우에 춤추니]] >림진강 흐름을 가르지는 못하리라[* 모두 2절(연)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절(연)은 박세영이 고향인 남한을 그리워하는 내용이지만, 서울 성동구 태생의 [[월북]] 작가이다. 작가의 실제 심리가 반영된 것일 수도 있다. 2절은 사회주의 체제인 북한이 남한보다 경제 사정이 우월하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사실 [[1950년대]]엔 정말로 북한이 더 잘 살았긴 했다. 남한이 북한을 경제적으로(수치상으로) 앞지른 건 1974년부터다.][* 2절이 너무 노골적인 북한 체제 찬양이기 때문에 남한에서 부를때는 메마른을 내마음으로 바꿔 부를때가 많다. ~~아니 그냥 1절에 내고향 '남쪽땅'만 '북쪽땅'으로 바꾸면 되는거 아닌가??~~] >------ > [[박세영(시인)|박세영]] - [[임진강(노래)|림진강]] 임진강(臨津江)은 [[한반도]] 중부에 위치한 강이다. 북한의 강원도 법동군 룡포리 두류산[* 이북5도행정위원회 상으로는 함경남도 문천군 풍상면 용포리]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흘러 [[군사분계선]]을 넘어 [[연천군]]을 거쳐서 [[파주시]] 교하읍[* [[파주시]] 교하읍(交河邑)은 임진강과 한강이 해당 지역에서 만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고려시대]]에 [[고려]] 정부가 [[몽골 제국]]의 침공에 [[강화도]]로 피난하였을 때 강화도 일대와 교하, 일산 일대를 일부 [[간척]]한 것 때문에 현재 [[한강]]의 유로는 과거의 모습에서 바뀐 것이다.]과 북한의 [[개성시]]와 접해있는 하구에서 한강으로 합류한 후, [[서해]](강화만[* 이 강화만에서 예성강이 합류한다.])로 흘러 나간다. 본류인 [[한강]]과 거의 바다 직전에서 만나기 때문에 사실상 한강과는 별개의 강이지만, 종점이 [[파주]]로 되어 있는 [[환경부]] 고시로는 종점이 [[김포]]인 [[한강]]의 제1지류로 처리한다.[* [[북한강]]에 이어 유로연장과 유역면적 모두 한강의 두번째 제1지류이다.] 임진강이 합류한 뒤의 김포반도와 개풍군 사이를 흐르는 구간을 조강이라고도 부른다. [[북한]]에서는 [[두음 법칙]]을 적용하지 않아 '림진강'이라고 적고 읽는다. 남북한에 걸친 강이라 [[구글 지도]]에서도 임진강, 림진강 둘 다 검색이 된다. 오른쪽 유역에는 아호비령산맥이 뻗었고, 왼쪽 유역에는 지류들이 흐른다. 주요 지류는 강원도 고미탄천(古味呑川: 114km), 경기도 평안천(平安川: 81km)·[[한탄강]](漢灘江: 130km) 등이고, 5km 이상인 지류는 250여 개이다. [[http://me.go.kr/ysg/web/meecoinfo/meEcoInfoUserView.do?menuId=4535&info_seq=4|환경부]] 수상교통의 요지로 [[6.25 전쟁]] 이전에는 고랑포까지 배가 다녔고 작은 배는 안협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었다. 기록에 따르면 삼국시대는 임진강을 칠중하(七重河)라 하였고, 경기도에 고구려 칠중현(七重縣)[* 칠중현은 고구려 때 난은별(難隱別)이라고도 하였는데, [[일본어]] (나나)가 7을 의미하는 것으로부터 연관성을 찾아 고구려어 7을 재구하려는 시도가 있다.]의 치소(治所)인 파주 칠중성(城)이 있었다.[* [[http://pajucc.or.kr/history/cultural_assets_detail.php?UidNum=68&s_num=0&page=1|파주문화원]] [[칠중성 전투]] 문서 참고.] 임진강은 예부터 자연 경계의 역할을 하였다. [[원삼국시대]]에는 마한 세력과 한사군의 경계선으로 추정 중이며 4세기~5세기 무렵에는 백제와 고구려, 6~7세기에는 신라와 고구려의 대치선이었고 통일신라 시대에도 임진강을 경계로 [[한주]]와 [[패강진]]을 분리해 전자에는 밀도 높은 직할 통치를 실시한 반면 후자에는 느슨한 통치망만 설치했다. 이후에도 [[임진왜란]]이나 [[6.25 전쟁]]의 주요 전장이었으며 현재에도 [[군사분계선]]이 이 근교에 위치한다.[* [[군사분계선]]이 임진강 수로와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대한민국]]도 임진강 이북의 옛 [[장단군]] 영역을 일부 보유 중이다.] 임진강 일대는 백제의 발원지로 유력시되는데, 2세기 무렵 임진강 일대에서 나타나 3세기에 [[대방군]]의 존재로 인해 한강 이남으로 내려간 고구려계 집단을 초기 백제로 추정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