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대종사 (문단 편집) == 평가 == ||★★★★ '''내려앉지 못하고 흩날리는 것들의 풍경화''' - [[이동진]] ★★★☆ '''홍콩영화라는 문파의 일대종사 왕가위''' - 주성철 ★★★ '''왕가위의 재고정리''' - [[박평식]] ★★★★ '''무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서''' - 김성훈 || 왕가위 감독이 보여준 90년대 영상미학이 무술신에 녹아 있기 때문에 평론가들의 평은 일단 호의적이다. 하지만 난해한 대사 및 전통적 무협영화와 다른 서사 때문에 대중적으로는 그다지 흥행하지 못했다. 한국 개봉성적은 관람객 10만명에 불과했다. 제작비는 3800만달러를 들여, 6400만달러 정도를 벌어들였으니 손익분기점 (약 2배)에 미치지 못해서 손해를 본 듯 하다. 원래 왕가위 영화는 흥행성적이 좋지않다. 유명작품들도 홍콩달러로 1000만 달러를 넘어 보지 못하다가 이번 영화에서 처음으로 1000만 달러를 넘었다. 대중적이지 않은 왕가위의 스타일이 그대로 나온 영화이다.[* 일부 영화팬들은 왕가위가 2000년대 들어 부진한 이유를 중국공산당 탓으로 돌리고 있는데, 전혀 근거가 없는 이야기다. 왕가위는 홍콩이 중국에 넘어가기 전부터도 모아니면 도의 흥행성으로 제작자들과 갈등을 빚어왔고, 이것이 누적되면서 2000년대부터는 투자받기가 상당히 어려워졌다. 2013년에 일대종사를 내놓고 2021년까지 몇년간 메가폰을 못 잡았던 것도 이 탓이 더 크다. (다행히 2021년에 두 편 (<중경삼림 2021>, <번화>)이 개봉한다.) 왕가위는 중국과 갈등을 빚기는커녕 오히려 중국 공안의 도움으로 연명한 적도 있다. 1990년대 왕가위는 삼합회가 투자한 <[[아비정전]]>을 자기스타일로 찍다가 거액의 손해를 안겼고, 이에 격분한 삼합회가 왕가위를 죽이려고 해서 왕가위는 <[[동사서독]]> 촬영을 핑계로 오히려 삼합회가 설칠 수 없는 중국으로 도피한 적이 있을 정도이다. 이 당시 아비정전의 제작자인 등광영은 왕가위를 죽이려던 삼합회를 말리느라고 진땀을 뺐다고 한다.] 이에 반해 견자단의 [[엽문 시리즈]]는 모두 손익분기점을 넘겨 제작비의 2배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특히 한국팬들이 중국 국수주의를 옹호했다며 비판하는 [[엽문 4]]조차도 52M달러의 제작비로 236M의 매출을 올려 대박을 냈다..[* 엽문 시리즈의 대부분 매출 대부분은 중국에서 났으며, 이런 현상은 홍콩 민주파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견자단이 중국 공산당을 옹호하는 것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