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대종사

덤프버전 :


왕가위 감독 장편 연출 작품


일대종사[1] (2013)
The Grandmaster, 一代宗師[2]

파일:b2b394e0352c439bb3127920e18fd1a1.jpg
감독
왕가위
각본
왕가위, 추정지
제작
왕가위, 팽기화
기획
오사원, 진이근, 메간 엘리슨, 송대
촬영
필립 르 솔드
편집
장숙평
미술
장숙평
음악
진훈기, 우메바야시 시게루
출연
양조위, 장쯔이, 장첸, 송혜교
장르
무협, 시대극
제작사
안나푸르나 픽처스
배급사
파일:중국 국기.svg
파일:홍콩 특별행정구기.svg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무비꼴라쥬
파일:미국 국기.svg 와인스틴 컴퍼니
수입사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무비꼴라쥬
개봉일
파일:중국 국기.svg 2013년 1월 8일
파일:홍콩 특별행정구기.svg 2013년 1월 10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3년 8월 22일
월드 박스오피스
$73,933,046
총 관객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01,642명
상영 등급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파일:영등위_12세이상_2021.svg 12세 이상 관람가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PG-13 로고.svg

1. 개요
2. 예고편
3. 삭제분에 대한 설명
4. 등장인물
5. 줄거리
6. 평가
7. 기타
8. 버전
9. 명대사



1. 개요[편집]


왕가위의 2013년 영화. 양조위영춘권의 일대종사인 엽문 역을 맡았으며, 송혜교가 엽문의 아내인 장영성 역을 맡았다. 장쯔이는 궁 가문의 딸로 엽문과 무술을 통해 교감하는 가상의 인물 궁이 역을 맡았다.



2. 예고편[편집]



▲ 예고편


3. 삭제분에 대한 설명[편집]



▲ 삭제분에 대한 설명
감독의 특성상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간대가 복잡하게 섞여있고, 극장판에서 삭제된 분량이 상당하여 해당 분량을 참조하지 않고는 영화의 주제와 맥락을 이해하기 힘들다. 아래에서는 시간대별로 확인된 삭제분을 참조 및 구분하여 내용을 기술하였다.


4. 등장인물[편집]


  • 엽문 葉問 : 양조위 (성우: 김일)[3]
영춘권의 고수.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나이 40까지 별다른 직업없이 수련에 몰두해서 영춘권을 아우르는 남권에서 가장 고수로 나온다. 남권의 고수들이 모인 금루(金樓)에서 팔괘장, 형의권, 홍가권(실제로는 여러가지 무술이 섞인 잡가라고 말한다)의 고수들을 차례대로 물리치고 북방무술의 태두 궁우전을 만나 승리하여 그의 명성을 이어받는다. 이후 궁이와의 결투에서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만나 패배하고 그녀에 대해(정확히는 궁이의 무술에 대해) 관심을 갖게된다. (삭제분)엽문은 북방으로 궁이를 찾아가 만나면서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되고, 마음 한 구석에 그녀가 자리잡게 된다. 이는 가족사진을 찍는 장면에서 부인 장영성 옆에 빈 의자가 묘사되며(엽문의 마음속 - 흑백 - 에만 빈 의자가 나타날 뿐 실제 사진 - 컬러 - 은 평범한 가족사진으로 찍혀졌다) 영화 후반부 '단추'를 통해 계속해서 암시된다. (영화판)일제에 의해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홍콩으로 이주한 엽문은 생계를 위해 영춘권 도장을 열지만 불량배들이 찾아와서 영춘권을 가르쳐달라는 둥 막장상황에 처하게 되자 직접 영춘권으로 참교육을 시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삭제분)궁이에게 마음을 갖고 있던 일선천이 찾아와 대결을 펼치지만 무승부로 끝난다. (영화판)이후 궁이가 찾아와 마음을 고백하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였고, 그녀가 사망한 뒤 장례식에서 그녀의 호위 무사였던 복성에게 유품을 전달받게 된다. (삭제분)복성은 궁가에는 아직 64수의 전승자가 한 명 더 남아있다는 말을 전해주는데 이후 정련산이 엽문을 찾아오는 것으로 연결된다.
팔괘장의 고수. 궁우전의 딸. 의사이기도 하다. 아버지 궁우전이 엽문과의 대결에서 패배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엽문과 직접 결투를 벌여 승리한다. (삭제분) : 이후 64수의 오의를 궁금해하던 엽문이 자신을 몇 번 더 찾아오지만 끝내 비급을 공개하지 않았다. (영화판) : 원래 아버지의 뜻에 따라 문파의 대표를 마삼에게 넘기고 본인은 일반인과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는 것으로 평범한 삶을 살려고 했으나, 복수하지 말라는 아버지의 뜻을 어기고 기차를 타려던 마삼을 찾아가 결투를 벌여 승리함으로써 복수를 완수한다. 궁가의 비급인 64수의 전승자 중 하나. 그러나 마삼과의 결투에서 심각한 내상을 입어 그 뒤로 64수를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오랜시간 엽문의 존재를 잊지못하던 궁이는 엽문을 향한 자신의 감정이 사랑이었음을 그에게 고백하지만 내상을 입은데다 아편을 복용하고 있던 그녀는 오래 살지 못할 운명이었다. 결국 엽문과 이어지지 못하고 사망한다.
  • 궁우전 宫羽田 : 왕경상 (성우: 안종국)
북방팔괘장 종사(삭제분에서는 궁씨팔괘장이라고 나온다). 또한 팔괘장과 형의권을 통합하려는 것도 인생의 목표이다. 영화에서는 그의 자를 이용해 보삼(寶森)또는 궁보삼이란 이름으로 불린다. 남권과 북권을 모두 아우르는 중화무술협회를 만들어 중국 무술을 통합하고 체계화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 남권의 중심지인 광동성으로 내려와 엽문을 만나서 그의 실력을 확인하려 한다. 자신의 뜻을 이을 만한 인재인 엽문을 발견하고 자신의 명성을 모두 넘겨준다. 이후 은퇴하여 마삼에게 문파를 맡겼으나 일신의 영달을 위해 문파 전체를 장악하고자 찾아온 마삼의 도전을 받아 절기를 사용하여 그를 물리친다. 다만 이 대결에서 입은 부상을 극복하지 못하고 이후 사망한다. 팔괘장과 형의권을 합친 궁씨 팔괘장의 종사이자 궁가의 비급인 64수의 오의를 모두 섭렵한 인물 중 하나.
  • 정련산 丁連山 :조본산
궁우전의 사형. 대외적으로는 사제 궁우전이 문파를 대표하고 있으나 정련산은 안보이는 곳에서 문파를 위해 암살 등 더러운 일을 도맡아 해왔던 것으로 추측된다. 원래 동북지역에서 살고 있었으나 1905년 일제치하에서 광동성 불산에 도피하여 숨어있다 사제 궁우전이 찾아오자 그에게 더 이상의 행보를 멈추라는 경고를 해준다. 이후 홍콩에서 64수에 대해 계속해서 관심을 보이는 엽문에게 찾아가 담배에 불을 붙여달라며 사실상의 경고에 가까운 행동을 보여주는데, 엽문이 정련산의 의도를 눈치채고 한 발 물러섬으로써 싸움으로 번지지는 않았다. 정황상 엽문을 암살하러 갔다가 그의 태도를 보고 마음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궁우전이 사망하고 궁이는 마삼과의 결투에서 내상을 입어 절기를 사용할 수 없게 되어 사실상 정련산이 절기를 사용할 수 있는 최후의 인물로 남게 되었다.

원래 고아로 버려진 자였으나, 궁우전에 의해 키워져 형의권의 고수가 된다. 문파의 차기 당주로서 일신의 무예는 출중하지만 스승 궁우전의 뜻을 거스르고 일제에 부역하는 등 본색을 드러내었다가 결국 스승과의 마지막 대결에서 절기 노원괘인(老猿挂印)을 맞고 패배하여 문파에서 제명된다. 이후 궁우전의 장례에 참석하려 하였으나 궁이와 강복성에 의해 제지되고, 북방을 떠나려 기차를 기다리던 도중 복수를 하러 찾아온 궁이와 격전을 벌이나 스승과의 결투때와 같은 절기 노원괘인을 맞고 완전히 리타이어하게 된다.
엽문의 아내. 일부종사의 매우 전통적인 아내의 모습을 보여준다. 삭제된 분량에서 장영성은 남편 엽문이 궁이에게 마음이 있는 것을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으나 이 사실을 혼자서만 간직한 것으로 보인다. 출연분이 대거 삭제되면서 단순히 헤어진 남편을 그리워하다 생을 마감하는 단순한 캐릭터로 바뀌어버렸다.
북파 팔극권의 고수. 매우 강하지만 심지가 의롭지 못하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중국웹의 설명에 의하면 중국국민당의 특무조직인 남의사에 소속된 킬러라고 한다. 중국이 공산화 된 후 국민당 요원들에 대한 보복이 벌어지자, 홍콩으로 망명하여 이발사로 전직하는 한편 홍콩에 팔극권을 보급한다. 이후 자신의 이발소를 찾아와 시비를 거는 삼강수를 이문정주 한 방으로 날려버린다. 본인은 제자를 받고자 하는 생각이 전혀 없었으나 팔극권의 위력을 직접 체험해본 삼강수의 간곡한 부탁에 의해 그를 제자로 받아들이게 된다. 삭제된 분량에서는 일선천 또한 궁이에게 마음이 있으며 엽문의 실력을 테스트하기 위해 엽문을 찾아가 대결을 신청하는 장면이 있다. 엽문의 팔참도 실력을 보고자 했으나 마땅한 무기가 없어 일선천은 이발용 면도칼을, 엽문은 쇠젓가락을 사용하여 대결을 펼치나 무승부로 끝난다.


5. 줄거리[편집]


링크 참조
다음 리뷰

- 1936년 -
영화는 엽문이 비오는 포산시의 한 거리에서 떼거리로 몰려오는 한 패와 싸우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어지는 금루 내부의 대화장면에서 엽문은 쿵푸에는 오직 가로(패배자), 세로(승리자)만이 존재할 뿐이며 세로(승리자)만이 말할 수 있는 자격을 갖는다고 설명한다. 빗속에서 엽문은 십수명에 달하는 상대를 영춘권으로 물리치고 모두가 바닥에 쓰러진 가운데(가로=패배자) 홀로 서있는(세로=승리자) 모습을 보여준다. (삭제분) 사실 이 무리들은 궁우전의 사람들이었다. 궁우전이 엽문의 실력을 알아보기 위해 꾸민 일이었던 것. 마삼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발걸음을 돌리고 궁우전은 엽문이 진화순의 내제자라는 사실을 듣게 된다.

때는 1936년, 엽문은 40대에 접어들고 있었고, 일본의 중국침략은 노골화되고 있었다. 광주(廣州)의 금루(金樓)는 표면적으로는 기루에 속하지만 무술의 고수들이 모이는 곳이기도 했다. 북권에 속하는 팔괘장의 종사인 궁우전은 중화무술협회를 구성했고 곧 은퇴하려고 한다. 그는 자신의 뒤를 이어 북파의 대표자로 자신이 거두어 키운 마삼을 지명했다. 마삼은 금루의 실내를 박살내며 남파의 고수 4명을 한꺼번에 제압하는 등 범상치 않은 실력을 갖췄음을 보여준다. 체면을 구긴 남파의 무술인들은 엽문에게 남파를 대표하여 줄 것을 요청하고 뒤이어 일종의 테스트 형식으로 남파의 팔괘장, 형의권, 홍가권 고수들은 엽문에게 도전하지만 엽문은 이들을 모두 이기고 엽문은 남파의 대표자가 된다. 각 고수들은 대결과 함께 자신의 무술의 특징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주는데 이는 후에 엽문이 해당 무술들의 영향을 받아 실전에서 활용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마지막 절차로 궁우전은 엽문에게 자신의 손에 든 전병을 부숴보라며 일종의 테스트를 하고, 엽문은 궁우전을 직접 타격은 하지 않고 투로를 바꿔가면서 결국 궁우전의 손에 든 전병을 부순다. 이를 통해 엽문의 실력을 인정하게 된 궁우전은 엽문을 남파의 대표자로 인정하고 자신의 모든 명성을 물려준 뒤 고향으로 떠난다. 궁우전은 고향으로 떠나기 전 딸 궁이에게 다음날 열리는 엽문의 남파 대표자 취임을 축하하는 연회에 참석하라고 하지만 궁이는 생전에 한 번도 패배하지 않은 아버지가 이런 대련 같지 않은 대련으로 패배했다는 사실에 수긍하지 못하고 정식으로 엽문에게 대결을 요청한다.

대결을 수락한 엽문은 대결에 앞서 자신이 금루 내의 어떠한 물건이든 손상시키게 된다면 자신의 패배임을 인정하겠다고 선언한다. 대결도중 엽문과 궁이는 똑같이 영춘권 방수(幇手)의 자세를 취하게 되는데 이는 궁이가 영춘권에 대한 사전지식이 있음을 암시한다. 이를 본 엽문은 팔괘장의 자세를 취함으로써 본인 또한 팔괘장에 대한 존중과 이에 대한 대비가 되어 있음을 드러낸다. 대결은 엽문의 우위로 흘러가는 듯 했으나 계단 아래로 추락하는 궁이를 끌어 올리는 과정에서 엽문은 금루의 계단을 미세하게나마 갈라지게 만들고 결국 이 대결은 엽문의 패배로 끝난다. 대결 후 궁이는 엽문에게 64수를 보여준 것은 엽문으로 하여금 언제나 더 뛰어난 실력자가 있음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으며, 그가 북방으로 찾아오길 기다리겠다고 말하며 헤어진다.

궁이와의 대결 후 엽문은 궁이와 서신을 주고 받는다. 서신의 내용은 일견 풍경을 묘사하는 것 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대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낸다. (삭제분) 엽문은 결국 궁이를 만나기 위해 북방으로 향한다. 짧은 만남은 간단한 무술 대련으로 끝나버리고 엽문 vs 마삼의 기차역 결투는 통으로 편집되어버렸다. (영화판) 집으로 돌아오면서 아내 장영성에게 모피 코트를 선물한다. 장영성은 남편의 심경 변화를 눈치채고 모피 코트를 받으며 '불산이 추운 곳인가요?'라고 반문(불산은 중국 남방도시로 겨울에도 눈이 내리지 않는 사실상 아열대에 가까운 따뜻한 기후를 보이는 지역이다)하지만 엽문은 대답대신 가족사진을 촬영하자고 한다. 가족사진을 촬영하는 장면에서 빈 의자가 하나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촬영된 사진에서 빈 의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궁이를 마음 한켠에 두고 있는 엽문의 심리를 드러내는 장면.

-1937년-
한편 중국을 야금야금 침략하던 일본은 본격적으로 마각을 드러내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했고, 불산은 일본군에 점령되었다. 일본은 엽문을 회유하지만 엽문은 일본과의 협력을 거부하고, 모든 재산을 일본에게 몰수당한다. 엽문은 가난 속에서 두 딸을 잃어버린다. 극심한 생활고에 엽문은 목인장마저 땔감으로 처분해버리고 전쟁의 여파로 동북지역에 갈 수 없게 된 엽문은 아내에게 선물했던 모피 코트도 팔아버린다. 모피 코트의 단추를 하나 떼어 간직함으로써 엽문은 단추를 궁이와의 추억을 기억하는 매개체로 삼게 된다.

-1938년-
엽문의 대저택은 일제에게 징발당하고 엽문과 가족은 거리로 나앉게 된다. 금루(金樓) 또한 일제에게 넘어가버리고 대기근으로 엽문의 두 딸은 사망한다.

남방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일선천이 피를 흘리며 앉아있다. 기차내에서 일본군의 검문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일선천은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반대편에 앉아있던 궁이에게 면도칼을 보인다. 즉 일본군에게 자신을 드러내면 죽이겠다는 것. 그러나 궁이는 놀랍게도 일선천의 옆자리로 이동하여 자신의 코트로 상처부위를 가려주며 연인 행세를 한다. 일본군은 그 둘에게 신분증을 제시하라고 요구하나 다른 사람의 소동으로 인해 신분증 검사를 하지 못한다. 기차가 도착하고 일선천은 코트를 다시 그녀에게 덮어주고 떠난다.

-1940년-

전쟁은 끝났지만 가난해진 엽문은 1949년 홍콩으로 와서 영춘권 도장을 연다. 당시 홍콩은 여러 무술을 배운 권법가들이 망명해 오고 있었고 엽문은 이들과의 대결에서 계속 승리하면서 명성을 얻어간다. 하지만 1951년 중공정부는 홍콩-광동성 국경을 폐쇄하여 엽문은 더이상 고향으로 가지 못하고, 아내와 아들과도 헤어져 이산가족이 되었다.

한편 엽문은 궁이가 홍콩에서 개업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궁이를 찾아가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를 알게 된다. 10년전 일본의 괴뢰정부 만주국 정부는 궁우전에게 협력을 요구하지만 궁우전은 거부한다. 하지만 북파의 대표인으로 삼은 궁우전의 제자 마삼은 일본에 부역한다. 궁우전은 마삼의 이런 매국노짓에 분노하여 찾아온 마삼과 대결을 하다 사망하게 된다.

궁이는 아버지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해 아미타불에 앞으로 절대 결혼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하고, 봉천의 기차역에서 마삼과 대결하게 된다. 결국 궁이는 마삼과의 무술 대결에서 이기지만, 그 결과로 큰 내상을 입게 되었다. 일본이 물러나자 궁이도 북중국을 떠나 홍콩으로 내려와 개업한다.

홍콩에서 재회한 엽문과 궁이는 애뜻한 감정을 느끼지만 궁이는 이미 부처님께 평생 독신하겠다고 서약을 한 과거가 있어 엽문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게다가 마삼과의 대결에서 입은 내상 때문에 아편을 남용하다가 의사일도 그만두고 아편중독자가 되었다. 궁이는 결국 1953년 아편중독으로 인해 사망한다.

한편 엽문은 영춘권을 적극적으로 대중화시켰다. 영춘권은 이제 소수의 무술가 사이에서 전해지는 비전이 아니라 대중적인 무술로 승화되었다.


6. 평가[편집]


★★★★
내려앉지 못하고 흩날리는 것들의 풍경화
- 이동진
★★★☆
홍콩영화라는 문파의 일대종사 왕가위
- 주성철
★★★
왕가위의 재고정리
- 박평식
★★★★
무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서
- 김성훈

왕가위 감독이 보여준 90년대 영상미학이 무술신에 녹아 있기 때문에 평론가들의 평은 일단 호의적이다. 하지만 난해한 대사 및 전통적 무협영화와 다른 서사 때문에 대중적으로는 그다지 흥행하지 못했다. 한국 개봉성적은 관람객 10만명에 불과했다.

제작비는 3800만달러를 들여, 6400만달러 정도를 벌어들였으니 손익분기점 (약 2배)에 미치지 못해서 손해를 본 듯 하다. 원래 왕가위 영화는 흥행성적이 좋지않다. 유명작품들도 홍콩달러로 1000만 달러를 넘어 보지 못하다가 이번 영화에서 처음으로 1000만 달러를 넘었다. 대중적이지 않은 왕가위의 스타일이 그대로 나온 영화이다.[4] 이에 반해 견자단의 엽문 시리즈는 모두 손익분기점을 넘겨 제작비의 2배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특히 한국팬들이 중국 국수주의를 옹호했다며 비판하는 엽문 4조차도 52M달러의 제작비로 236M의 매출을 올려 대박을 냈다..[5]


7. 기타[편집]


  • 무술영화 치고는 영화가 매우 난해하다. 여러 권법의 특기를 가진 등장인물들이 잠시 나오다 사라지는데다가, 대사도 무술의 철학에 관한 내용이 많기 때문에 이해하기가 쉽지 않으며, 거기다가 대사도 시(詩)와 같이 함축적으로 되어 있어서 상당히 번역도 힘들다.[6] 대신에 당시 중국무술계의 분위기를 상당히 잘 반영하였고, 양식 태극권, 팔괘장, 팔극권, 홍가권 등 당시 주요 권법들의 특징들을 보는 묘미가 있다.
  • 이렇게 영화가 난해하기 때문에 일부에서는 중국정부의 입김이 때문에 영화가 산으로 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뉴시스 기사 일부 영화 블로거들도 이 영화를 두고 이 기사와 대동소이한 음모론을 펴셔 마치 정설인양 유포되고 있다. 다만 이런 주장은 별로 근거도 없이 지나치게 음모론적으로 접근한 것이며 1990년대의 왕가위 감독의 성향을 안다면, 이 영화에서도 왕가위 감독의 스타일이 그대로 나타났다고 보면 된다.[15]
    • 위 기사는 이 영화를 둘러싼 음모론의 근거로 " 중공정권 수립후 공산주의에 맞지 않아 무림이 해체되었다"는 떡밥을 깔고 있으나, 무림해체는 이념적인 이유보다는 범죄방지 및 치안확립이라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었다.[7] 그리고 무림의 고수들은 이런 사람들의 주장과는 달리 감옥으로 간 것이 아니라 무술학교의 사범이나 교수로 갔다.[8] 대륙에서 무술을 배운 이연걸, 견자단우징은 이런 스승들에게서 배운 것이다. 또한 엽문이 당원이었던 중국 국민당은 현재에는 대만에서 소수야당으로 전락한데다가, 오히려 양안화해라는 대륙(즉 중국공산당)입장에 발맞추고 있기 때문에 이 영화처럼 엽문을 높이 평가하는 것이 딱히 대륙의 심기를 거스르는 것은 아니다. 결정적으로, 왕가위 감독은 특별히 반중입장을 가진 감독도 아니고, 필모그래피를 봐도 정치성 있는 영화를 만드는 감독도 아니기 때문에, 딱히 중국 입장에서 작품에 간섭할 여지도 없다.[9] 이 영화는 1990년대의 왕가위 감독의 스타일 그대로 나온 영화이고, 왕가위 감독은 원래부터 화면 미학으로 알려졌지만 영화 서사는 대중적이지 않은 스타일로 일관했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다.
    • 이런 음모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이 영화에서 궁이가 공산당이 선호하는 인물이라 장쯔이가 맡은 그 분량이 공산당의 입김으로 늘어났다고 주장하나, 이것은 왕가위 구미에 맞는 격투신을 찍기 위한 현실적인 개연성을 부여하기 위한 것일 뿐, 공산당과는 아무 상관없다.[10] 이 영화는 무술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액션과는 거리가 먼 양조위가 주연으로 나오기 때문에, 액션을 보여주려면 장쯔이의 분량이 늘어날 수밖에 없으며, 결과적으로 장쯔이(궁이)와 장진(마삼)의 기차역 결투신은 이 영화에서 거의 유일하게 볼만한 결투신이다.[11] 이 결투신을 보면 90년대 왕가위 스타일이 그대로 묻어나며 이 결투의 개연성을 위해 장쯔이 분량이 대폭 늘어난 것[12]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13]
    • 이러한 소문의 진위여부와는 별개로 장쯔이의 분량이 지나치게 늘어나서 이 영화가 엽문을 다룬 것인지 아니면 궁이를 다룬 것인지 헷갈린 정도이며, 이로 인해 왕가위의 오랜 페르소나로 함께했던 양조위가 크게 반발해 왕가위와 결별을 결심했다는 홍콩발 보도가 있었다. 다만 이후 양조위가 왕가위 영화 프로젝트에 참가하고 있는 걸 보면 어느 정도 화해된 듯 하다.[14]
  • 이소룡은 영화 말미에 엽문의 도장에서 수련하는 아이로 잠시 등장한다.
  • 일선천(장첸)은 영화 초반에 잠시 나왔다가 사라지고, 엽문의 홍콩 망명시절인 영화 말미에 이발사로 전직해서 홍콩에서 팔극권을 보급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일선천의 이야기가 너무 간략화되어 있어서 그 분량이 편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 장학우가 <동사서독> 이후 간만에 출연한 왕가위의 영화지만, 완전히 통편집되었다.
  • 이 영화를 찍기 위해 배우들은 무술 연마에 굉장한 노력을 들였다. 양조위40대 후반의 나이에 무려 4년 간 무술을 배웠고, 심지어 연습하다가 팔이 두 번이나 부러졌다고 한다. 장첸은 팔극권을 배우다가 실력이 일취월장해져 실제 팔극권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 이동진 영화당 #


8. 버전[편집]


  • 122분: 국제판(한국 개봉판)
  • 130분: 중국판
  • 108분: 미국판(와인스틴사 편집)
  • 111분: 3D판

이 영화는 여러 버전이 있는데, 한국에서 개봉한 국제판은 122분, 중국판은 130분[16], 미국 상영분은 아시아영화에 대한 가위질로 악명높은 와인스틴 컴퍼니에서 편집-배급한 108분 버전이다. 2015년에는 111분짜리 3D판도 나왔다. 모든 버전을 다 본 한 영화블로거는 중국판이 제일 괜찮다는 평을 남겼다. #

아마도 일선천의 이야기가 간략화된 것은, 영화가 편집되면서 일신천의 이야기가 삭제되었기 때문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이 부분은 2018년 3월 4일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다뤄졌다.


9. 명대사[편집]


중국무술의 철학을 담은 명대사들이 많은데, 대부분 현대중국어가 아닌 옛스러운 한문체로 되어 있다. 이런 문장은 영어나 한국어 자막에서는 제대로 번역되지 않는데, 원문으로 보면 인상적인 문장이 많다.

  • 쿵후는 두 마디로 정리할 수 있지. 수직과 수평. (功夫,兩個字:一橫一豎)
  • 무술은 고정된 품세가 없어야 하지. 물에 고정된 모양이 없는 것처럼 (兵無常勢, 水無常形)
  • 의도적으로 칠지언정, 의도적으로 멈추지는 마라 (寧在一思進,莫在一思停)
  • 무림에는 이런말이 있지. 잊지 않으면 해답은 있고, 등불을 켜놓으면 사람이 모이지. (武林当中有这样一句话:念念不忘,必有回响,有一口气,点一盏灯,有灯就有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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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각 무술 문파에서 한 시대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위대한 스승을 일컫는 말이다. 주로 각 문파를 부흥시키고 실력으로 널리 이름을 떨친 고수에게 붙여지는 명예로운 칭호로, 각 문파 내에서 뿐만 아니라 소속 문파를 벗어난 무림계 전체의 존경을 받는 위대한 인물에게 붙여진다. 일대종사의 칭호를 받은 인물은 무술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큰 공헌을 하여 만인들에게 널리 존경을 받게 되는데 중국 무림 역사상 일대종사의 칭호를 받은 이는 그리 많지 않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홍가권(洪家拳)의 황비홍, 영춘권엽문, 미종권의 곽원갑 등이 있다.[2] 광둥어: jat1 doi6zung1 si1, 얏더이쭝씨[3] 김일 생전의 마지막 양조위 더빙작.[4] 일부 영화팬들은 왕가위가 2000년대 들어 부진한 이유를 중국공산당 탓으로 돌리고 있는데, 전혀 근거가 없는 이야기다. 왕가위는 홍콩이 중국에 넘어가기 전부터도 모아니면 도의 흥행성으로 제작자들과 갈등을 빚어왔고, 이것이 누적되면서 2000년대부터는 투자받기가 상당히 어려워졌다. 2013년에 일대종사를 내놓고 2021년까지 몇년간 메가폰을 못 잡았던 것도 이 탓이 더 크다. (다행히 2021년에 두 편 (<중경삼림 2021>, <번화>)이 개봉한다.) 왕가위는 중국과 갈등을 빚기는커녕 오히려 중국 공안의 도움으로 연명한 적도 있다. 1990년대 왕가위는 삼합회가 투자한 <아비정전>을 자기스타일로 찍다가 거액의 손해를 안겼고, 이에 격분한 삼합회가 왕가위를 죽이려고 해서 왕가위는 <동사서독> 촬영을 핑계로 오히려 삼합회가 설칠 수 없는 중국으로 도피한 적이 있을 정도이다. 이 당시 아비정전의 제작자인 등광영은 왕가위를 죽이려던 삼합회를 말리느라고 진땀을 뺐다고 한다.[5] 엽문 시리즈의 대부분 매출 대부분은 중국에서 났으며, 이런 현상은 홍콩 민주파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견자단이 중국 공산당을 옹호하는 것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6] 대사 번역은 잘되지 않았는데, 대사가 굉장히 철학적-함축적이기도 하거니와, 표준중국어와 광동어가 동시에 나오기 때문이다. (한국어 자막은 영어 자막을 번역한 것 같은데, 이렇게 되면 중국어 특유의 운율(라임)과 댓구가 모두 사라진다) 북방계 인물들은 표준중국어를, 남방계 인물들은 광동어를 쓴다. 두 언어는 사실 방언이라기보다는 외국어에 가깝지만 등장 인물들은 같이 등장할 때도 이렇게 말한다.(장쯔이와 양조위가 함께 말할 때도 장쯔이는 표준중국어를, 양조위는 광동어로 서로 대화한다.)[7] 이 영화에 묘사되는 것만 봐도 당시의 무술 종사들은 제자들을 사적으로 부리면서 조폭급으로 동원하는데, 제대로 된 정부라면 당연히 이런 행태를 보이는 무림을 내버려두지는 않을 것이다.[8] 물론 엽문처럼 정치적으로 공산당과 척을 진 사람들은 홍콩이나 대만으로 갔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엽문은 국민당 경찰로 일했으며, 홍콩으로 망명한 이유도 영화에서처럼 경제적 이유가 아니라 정치적 이유 때문이었다.[9] 일부 영화 커뮤니티나 영화팬들은 대체로 중화권 영화인사가 부진하거나 중화권 영화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중국공산당의 간섭 또는 탄압 탓, 혹은 중국화로 모는 경향이 있긴 한데, 탄압을 받는 인사나 작품은 반중성향의 민주파 인사(예를 들어 황추생) 들이나 중국공산당을 비판적으로 그린 영화(패왕별희, 인생(영화))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근거없는 뇌피셜일 뿐이다. 그리고 명백히 중국정부가 직접 제작한 선전영화들 (예를 들어 려해료, 아적국, 나와 나의 조국)이 있기는 하지만, 그 외에는 그냥 자기맘에 안든다고 중국공산당 제작이라는 딱지를 붙이기도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그레이트 월>. 이 영화는 그냥 장예모가 별생각없이 만든 상업영화인데, 한국의 일부 영화팬들은 중국공산당의 명령으로 제작된 국뽕영화라고 주장한다. 국뽕영화라면 미국인이자 백인인 멧 데이먼을 주연으로 썼을 리가 없다. 오히려 이 영화에서 송나라 조정은 무능하게 그려지며, 은 백인인 맷 데이먼이 해결사로 등장해 만리장성을 넘어온 도철을 토벌한다.[10] 장쯔이가 연기한 궁이는 본인도 공산당을 피해 홍콩으로 망명온데다가 아편중독자로 나오기 때문에 공산당과는 아무 관련 없는 인물이다. 대륙에 남아 있었으면 마약사범으로 총살형[11] 장쯔이는 무용전공자로 양조위가 불가능한 아크로바틱한 액션이 가능하며, 마삼역을 맡은 장진은 홍콩의 유명 액션감독 원화평의 스턴트팀인 원가반 출신이다.[12] 마삼의 일본부역 및 궁우전 살해, 궁우전의 딸인 궁이의 복수 맹세를 영화에 모두 넣지 않으면 궁이와 마삼의 대결은 영화서사상 매우 뜬금없는 장면이 된다. 결국 이 대결 때문에 궁이의 분량이 지나치게 늘어났다고 보는게 맞다.[13] 여기에 양조위가 홍콩 우산 시위를 지지해 분량이 줄어들었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으나, 이 영화는 2011년 촬영, 2013년 개봉했으며, 홍콩 우산 혁명은 2014년 9월에 시작된 이야기이므로 전혀 근거가 없다.[14] 이전에도 양조위는 왕가위와의 작업이 흥미로운 부분도 짜증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15] 왕가위 영화를 잘 챙겨보지 않는 팬들에게는 그저 중경삼림의 현란한 카메라워크만이 알려져 있지만, 왕가위의 다른 작품인 아비정전, 동사서독도 이 영화처럼 난해한 대사와 서사로 일관하여 전혀 대중적이지 않았다.[16]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일부 블로거들은 장쯔이분량이 늘어나고 일선천 분량이 간략화된 것은 중국의 검열을 의식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지만, 중국개봉판이 해외개봉판보다 더 길기 때문이다. 전혀 근거가 없는 이야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