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기토/사례 (문단 편집) ==== [[오호십육국시대]], [[위진남북조시대]] ==== >[[유요]] 평선(平先)에게 진안(陳安)을 추격하게 했는데, 진안은 왼쪽 손에는 대도(大刀)를 쥐고, 오른손에는 [[장팔사모]](丈八蛇矛)를 쥐며, 가까우면 도와 모를 함께 펼쳤고, 멀면 말을 타고 활을 쐈으나, 평선이 진안과 싸워, 세 번 엇갈리더니 그의 모를 탈취해서 돌아왔다. >---- >'''《[[진서]]》''' ---- >형양내사(衡陽内史) 왕응지(王應之)가 하혜문(何慧文)과 더불어 '''군을 내버려두고 직접 싸워'''(...), 하혜문을 8곳 찍었고, 하혜문은 왕응지를 찍어 다리를 잘라, 그를 죽였다. >---- >'''《[[송서]]》''' 지휘관들끼리 군대를 버리고 지들끼리 치고박고 일기토하다가 결국 하나가 죽은 케이스이다(...) ---- >노상(魯爽)이 반역해, 설안도(薛安都)가 그를 토벌했는데, 노상은 일세의 건장하고 날랜 장수였으나, 설안도가 바로 나아가 그를 찌르니, 즉시 쓰러졌다. >---- >'''《[[남사]]》''' 설안도의 일화는 [[관장지용]]의 일화 중 하나다. ---- >초도(焦度)가 위(魏)의 표피공(豹皮公)과 조우해, 창을 교차하며 싸우니, 표피공이 땅에 떨어졌다. >---- >'''《[[남사]]》''' ---- >[[진경지]]가 현호성(懸瓠城)에 있을 때, 위의 효장(驍將) 요웅(堯雄)의 자식 요보악(堯寳樂)이 가장 용맹해, 단기로 교전하길 구하나, 진경지의 자식 진흔(陳昕)이 말을 채찍질해 뛰어들어서 바로 요보악을 취하니, 위의 군이 흩어져 달아났다. >---- >'''《[[남사]]》''' 명색이 최고지휘관의 아들이 일기토를 하겠다고 나섰는데 적장의 아들과 1:1로 일기토를 하다가 패해 죽었고 위나라 군은 지휘관이 죽자 바로 흩어져 도망쳤다. ---- >유중례(柳仲禮)가 청당(靑塘)에서 [[후경]]과 싸울 때, 창이 장차 후경에게 미치려는데, 지백인(支伯仁)에게 어깨를 베여, 마침내 달아났다. >---- >'''《[[양서]]》''' 후경은 후경의 난 일으킨 그 사람 맞다. 그 정도 되는 사람이 1:1로 싸우다가 다른 장수의 난입으로 일기토가 중단된 것이다. ---- >[[북제]]의 군이 여량(呂梁)에 이르렀을 때, 서역호(西域胡)가 궁술이 훌륭했는데, 오명철(吳明徹)이 소마가(蕭摩訶)에게 이르길 "만약 이 호를 죽이면, 저들의 군은 기세를 잃을 것이오." 소마하가 이에 말을 타고 달려가 제의 군에 충돌하니, 호가 앞장서 진 앞으로 10여 보 나왔는데, 소마하가 선현(銑鋧)을 던져, 그의 이마에 정확히 적중시켜, 즉시 쓰러뜨렸다. >---- >'''《[[진서]]》''' 역시 [[관장지용]] 일화에서도 나온 1:1 일기토 사례 ---- >여사휘(徐嗣徽)의 효장 포팽(鮑砰)이 작은 군함으로 전후(殿後)가 됐는데, 주문육(周文育)이 포팽의 배에 뛰어 들어가 포팽을 참살하고, 이에 그의 배를 이끌고 돌아갔다. >---- >'''《[[진서]]》''' 이제는 1:1 일기토를 떠서 적장을 죽이고 그 배를 빼앗아서 돌아간다. ---- >위([[북위]])의 종실 탁발가실릉(拓跋可悉陵)이 양주(凉州)를 정벌하는데 종군했는데, 저거무건(沮渠茂虔)이 효장 한 명에게 탁발가실릉과 싸우게 해, 양쪽의 창이 모두 부러져, 탁발가실릉은 화살을 뽑아 그를 쏴서 낙마시키나, 그들의 구원이 이를까 두려워, 검을 뽑을 겨를도 없이, 칼날로 그의 목을 어그러지게 해서 잘랐다. >---- >'''《[[북사]]》''' 명색히 '''황족이라는 사람이 직접 1:1 일기토를 뜨고 있다.''' ---- >[[후주]]가 [[북제]]와 싸울 때, 주의 장수 왕웅(王雄)이 [[곡률광]](斛律光)을 추격하니, 곡률광의 좌우는 모두 흩어져, 오직 노복 한 명과 화살 하나만 남았다. 왕웅이 살피기론 창이 곡률광에게 1장 남짓 미치지 못해서, 곡률광에게 이르길 : "너를 죽이지 않고, 응당 생포해 천자께 보이리라." 곡률광이 활을 쏴 왕웅의 이마에 적중시켜, 왕웅은 물러나 달아났으나, 영에 이르러 죽었다. >---- >'''《[[북사]]》''' 이 경우에는 적이 무너져 흩어지고 지휘관만 남은 상태에서 좋다고 생포한답시고 달려들다가 화살에 맞고 죽은 사례, 참고로 [[관우|삼국시대 때 어떤 남자]]도 저런식으로 이마에 화살을 맞았었는데 안 죽었다(...) ---- >채우(蔡祐)는 하교(河橋)의 전투에서, [[동위]](東魏)가 두터운 갑옷에 장도를 든 자에게 바로 채우를 취하게 했으나, 채우는 그가 이름을 기다렸다가 10 보 떨어진 곳에 이르니 곧 활을 쏴서, 그의 얼굴에 정확히 적중시키고, 곧 창으로 찔러 죽였다. >---- >'''《[[북사]]》''' 역시 활로 쏘아 적장을 죽인 케이스. ---- >[[돌궐]]이 진양(晉陽)을 핍박할 때, 진중의 한 기장(騎將)이 대오를 벗어나 와서 싸워, 기연맹은 앞장서 홀로 나와, 그와 상대하다, 적을 찔러 낙마시키고서, 바로 그를 참살했다. >---- >'''《[[북제서]]》''' 이민족과 싸울때도 일기토를 뜬다. ---- >후막진숭(侯莫陳崇)이 묵기추노(万俟醜奴)를 토벌할 때, 적이 아직 대열을 이루지 못해, 후막진숭이 단기로 적 안으로 들어가, 말 위에서 만사추노를 사로잡으니, 무리는 감히 움직이지 못했다. >---- >'''《[[주서]]》''' 이 경우엔 적이 방심한건지 후막진승이 날렵했는지 어쩐건지 대열을 이루는 동안 후막진승이 단독으로 적의 지휘관을 사로잡아서 적진이 바보가 된 사례(...)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