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기토/사례 (문단 편집) ==== 고대 ==== 이런 장수끼리의 일대일 대결은 전쟁의 한 양식으로서 정복전쟁이 시작된 청동기시대부터 동서양 막론하고 벌어진듯 하다. BC 12세기 청동기시대에 일어났다고 추정되는 [[트로이 전쟁]]을 다룬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에서는 전쟁에 말이 도입되기 전이라서 일기토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일대일 대결이 자주 나타난다. 하지만 이건 진짜 트로이 전쟁 시기의 묘사라기 보다는, 호메로스가 살았던 서사시 시대의 묘사에 가깝다는 것이 중평이다. 이 시기의 전투는 모두 귀족에 가까운 호족들간의 소규모 접전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병력간의 대결보다는 개인적 결투의 형태에 더 가까웠다고 보고 있다. 이 시기 소국의 양상은 일리아스에서 오디세우스의 나라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일리아스]]를 보면 그리스 측의 제일 맹장인 아킬레우스는 총사령관 아가멤논에 삐져서 출전을 거부하고, 트로이 측의 [[헥토르]]는 그리스측 무장이 나오자마자 족족 일기토로 죽인다. 이들이 벌이는 일기토는 말은 이용하지 않고 처음에 창과 방패로 싸우다가 나중에 칼을 쓰는 형식이다. 그리스 측 장수들은 헥토르의 무용을 두려워해서 제비뽑기를 하여 상대하게 된다. 그러다가 아킬레우스의 친구 파트로클로스가 헥토르와 일기토 끝에 죽자 아킬레우스는 드디어 출전하고 헥토르를 일기토에서 죽인다. 나중에 국가체제가 발전하면서 대규모 회전이 일상화되었지만 그래도 종종 장수들간의 일대일 대결이 벌어지긴 했다. [[아케메네스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3세]],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3세]] 등. 로마의 마르켈루스도 켈트족과의 싸움에서 부족장 비르도마루스와 일대일로 싸워 승리한 유명한 에피소드가 있고,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서기관이었던 [[에우메네스]]는 문관이었지만, 이후 후계자 전쟁에서 군을 지휘하면서 적장과 일대일로 싸우기도 했다. (게다가 이겼다.) [[갈리아 전쟁]] 당시 갈리아 부족장 [[콤미우스]]는 로마군 대대장 가이우스 볼루세누스와 일기토를 벌여 볼루세누스를 낙마시키고 무사히 도주했다는 기록도 있다. 다라 전투에서는 열세인 로마군과 페르시아군이 요새 앞에서 대치하고 있었는데, 대치가 지루해졌는지 페르시아군 장수 하나가 로마군에게 접근해 사령관인 벨리사리우스에게 일기토를 신청했다. 벨리사리우스는 직접 나서는 대신 자신의 목욕탕 청소 노예(...)를 대신 내보냈는데, 이 목욕탕 노예가 중무장한 페르시아 장수를 가뿐히 죽여버리고--???-- 분노하여 나선 두 번째 페르시아 기사까지 연달아 죽였다. 페르시아군의 사기는 크게 낮아졌고, 그 덕분이었는지 다음날 치뤄진 전투에서 로마군이 두 배 정도의 병력차에도 불구하고 승리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