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기토/사례 (문단 편집) === [[일본사 관련 정보|일본사]] === 각 진영을 대표하는 [[사무라이]]가 앞으로 나와 일대일로 겨루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일본식 일기토는 [[헤이안 시대]]부터 14세기 [[가마쿠라 막부|가마쿠라 시대]]까지 무려 500년 동안이나 이어지던 일종의 전쟁 관습이었다. 일본에서는 [[센고쿠 시대]] 이전까지 기마 무사 중심의 기마전이 주전법을 이뤘는데 적과 마주한 상태에서 본격적으로 교전에 들어가기 전 각군의 기마 무사들이 앞으로 나와 자신의 성명과 신분, 가문 내력, 전공, 전쟁의 명분 등을 외치는 '[[나노리|나노리(名乗り)]]'라는 의식을 통해 자신의 명예와 아군의 사기를 높였다. 이때 적을 도발하는 하나의 수단으로서 일기토를 걸기도 하는데, 적으로부터 일기토 도전장을 받은 측에서는 상대와 비슷한 신분과 명성을 가진 장수를 보내어 싸우게 하거나 거절하기도 한다. 만일 신분이 낮거나 한미한 가문의 장수를 보내면 상대를 모욕하는 행위가 되어 오히려 커다란 불명예를 뒤짚어 쓰게 되며, 이렇게 싸운다고 한들 이는 일기토(一騎討ち)라고 부르지도 않았다. 결투 방식은 활을 쏘는 것(騎射)과 근접 무기로 겨루는 두 가지가 있으며 어떤 방식이든 결코 말에서 내려 싸우지는 않는다. 그러다가 [[무로마치 시대]]부터 다시 전란이 빈발하면서 [[아시가루]]로 대표되는 보병 중심의 집단전으로 주전법이 바뀌게 되자 기마 무사들의 여흥과도 같았던 '나노리'와 '명예로운 일대일 대결' 문화는 급속히 사라지고 만다. 센고쿠 시대에는 [[2차 갓산토다 성 전투|갓산토다 성 전투]]에서 시나가와 마사카즈(品川将員)의 정식 일기토 도전을 받아들인 [[야마나카 유키모리]](山中幸盛)와 같은 사례도 몇몇 있기는 했지만 거의 대다수의 일기토는 치열한 교전 상황에서 적장끼리 만났을 때 발생했다. >황록색의 민소매 겉옷(胴肩衣)을 입은 무사, 흰색 수건으로 머리를 감쌌으며 누런색 말에 올라 3척 길이의 칼을 뽑아 들고 접이 의자에 앉아 계신 신겐 공이 있는 곳으로 똑바로 쳐들어와 칼끝으로 세 번을 찔렀으나 신겐 공이 일어나시어 군바이 부채로 막아내셨다. 나중에 신겐 공이 부채를 보니 칼자국이 8개나 나 있었다... (중략) ... 후에 듣기로 그 무사, 테루토라(輝虎)[* 우에스기 겐신의 이름. 겐신은 법명.]였다고 한다. >---- >'''《코요군칸(甲陽軍鑑)》''' 일본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일기토인 [[다케다 신겐]]과 [[우에스기 겐신]]의 대결이 바로 [[카와나카지마 전투#s-3.3|제4차 카와나카지마 전투]] 중 혼란한 상황에서 발생했는데 다케다 신겐 측 사료인 《코요군칸(甲陽軍鑑)》에 따르면 다케다군의 본진까지 쳐들어 온 우에스기 겐신이 직접 다케다 신겐에게 칼을 휘둘렀지만 신겐은 이를 군바이(軍配)로 막아냈고, 마침 옆에 있던 가신 하라 토라요시(原虎吉)가 겐신의 말을 창으로 찔러 위기의 순간을 벗어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런데 우에스기 겐신 측 사료인 《우에스기케고넨푸(上杉家御年譜)》에 따르면 우에스기군의 공세에 완패해 진영을 버리고 퇴각하던 다케다 신겐은 아라카와 나가자네(荒川長実)라는, 우에스기 군의 말단 무사와 일기토를 치르다가 손을 다쳐 가신의 도움으로 간신히 위기의 순간을 벗어난 것으로 나온다. 한편 당대의 고승이었던 [[난코보 텐카이|텐카이]]의 목격담에 따르면 도망치던 다케다 신겐에게 칼을 휘두른 적장은 우에스기 겐신이었다. 또 센고쿠시대의 독특한 전투 문화 중 하나였던 '이치반야리(一番槍)'[* 한문 뜻 그대로 적에게 일번으로 창을 휘두른 사람. 즉 돌격대의 선봉장과 비슷하다]는 사무라이로서 개인의 명성을 올리고, 사후 논공행상 때 아주 중요한 가점 요소였기 때문에 각 진영에서 창칼 좀 휘두른다고 자부하는 젊은 사무라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이치반야리를 자처했다. 그래서 전투가 시작되면 선봉에 선 각 진영의 이치반야리들 간에 종종 일기토가 벌어졌는데, 이렇게 젊은 시절 이치반야리로 참전해 적의 이치반야리로 나선 적장과 많은 일기토를 벌여 명성을 쌓은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시마즈 요시히로]]다.[* 사실 센고쿠시대를 대표하는 이치반야리는 [[이이 나오마사]]지만 나오마사는 아카조나에라는 돌격 전문 기마대를 운용했기 때문에 개인 대 개인으로서 싸운 일기토 기록은 거의 없다. 현재까지 개인 대 개인의 일기토 기록이 가장 많은 장수는 시마즈 요시히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