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희진(역사학자) (문단 편집) == 웹상에서의 논쟁 == 그는 '블레이드'란 닉네임으로 이글루스에 이글루를 만들어 [[역사 밸리]]~~와 [[음식 밸리]]~~를 중심으로 '''매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역사 밸리 활동량 통계를 내면 아마도 그가 탑일 것이다. 매일 아침마다 글을 올리니... ~~실제로 모 유저의 통계에 집계되기도 했다.~~ 그런데 올라오는 글의 대부분이 이성무의 칼럼이고 (왜 그걸 본인 이글루에 올리는지는 모르겠다만...) 본인이 올리는 건 어쩌다 한 번 방영 중인 사극의 고증이나 황당한 스토리 전개를 비판하는 것이나, 평가는 매우 소략하고 주로 음식 사진으로 도배되어 있는 [[맛집]] [[후기]]를 올리는 게 전부다.... 그리고 아주 가끔 학계 현실에 대한 비판 등을 끄적거린 '부담스러운 이야기'를 올리곤 했다. 2015년 3월에 이글루스를 떠났다. 현재는 네이버 블로그에서 똑같은 활동을 하고 있다. [[이글루스]]에서 유저들과 논쟁을 하다가 [[6.25 전쟁]] 관련 논쟁에서 미국이 고의적으로 북한의 침공을 유도했다는 [[남침유도설]]을 주장하기도 했다. [[T-34-76|T-34]] 구식론을 꺼내며 시작했으나 T-34/76과 T-34/85를 구분하지 못하는 오류, 한국전 당시 투입된 [[M4 셔먼|셔먼]]의 주포를 모르고 있었으며, 셔먼의 주포를 75mm라 주장하며 셔먼의 75mm의 관통력 자료도 제시하지 못했을뿐더러 [[제1차 세계대전]]과 [[태평양전쟁]]의 [[미국]]유도설을 주장했다. 혹자는 그가 셔먼의 75mm를 [[판터]]의 75mm와 동일한 것으로 착각한 거 아니냐고 하는 등 무기체계만 따져도 [[밀덕후]]들에게 비난받고 기밀해제된 미국 정보부 문서 등을 제시한 반대 측에 대해 제대로 반박하지 못해 역덕들에게 비난받았다. 사실 두 계층은 온라인상에서는 교집합이 많이 되는 편이기도 하고. [[밀덕]]들에게 두 번이나 지적당했으나 글을 삭제. 본인은 인정하지 않았으나,[[플래툰(잡지)|플래툰]] 2011년 7월호에서 이 논쟁을 언급하면서 '그 주장을 뒷받침할 수준의 병기나 군사 지식이 없는 분'이라고 간접 디스까지 건 상태. 또한 [[6.25 전쟁]] 관련 [[남침유도설]]에서 화제를 돌리려 [[풍납토성]]을 왕성으로 보는 견해를 비판한다면서 [[고고학]] 분야가 왜곡되었다고 비판하였다가 다른 학자의 있지도 않은 발언을 왜곡하는 등의 행태를 보이기도 했으며 논쟁은 의견을 교환하는 선으로 마무리 짓고 끝나는 것처럼 보였으나 사실상 판정패했다. 이후 [[각궁]]의 위력이 [[M16 소총]]의 60%라고 하거나 [[황산벌 전투]] 당시 백제군 패잔병이 [[기벌포 전투]]에 투입되었다는 등 근거가 부족한 주장을 자주 하며 비난의 소재를 제공하였으며 그중 근거로 댄 사이드카 드립은 많은 이들에게 조롱거리가 되었다. 황산벌 전투와 기벌포 전투는 같은 날 벌어졌으며 30km 이상 떨어져 있다. 지휘부가 궤멸한 상태에서는 불가능한 소리. 또한 신라군은 보급부대로 당군은 신라군에 보급을 전적으로 의존했다고 하지만 산술적이나 보급부대에 대한 기록이 적힌 중국 쪽 사료를 무시한 결과다. 8월 말 동아넷 포럼에서 어느 이글루저가 식민사학자 [[쓰다 소우키치]](津田左右吉)에 대해서 식민사학자라고 다 틀린 소리인가? 라고 언급한 걸 인용해서, [[이글루스]]에서 까였다.[* 인용된 이글루저는 역밸에서 다른 블로거에 인정받지 않고 오히려 비판받고 있는 주류라고 할 수 없는 사람이라, 그런 견해를 마치 주류의 의견인 것인양 인용하는 것 역시 왜곡이므로 까일 수밖에 없었다.] 2012년 1월 [[부러진 화살]]이 이슈를 모으자 [[판사 석궁 테러 사건]]을 분석하며 [[김명호(1957)|김명호]] 전 성균관대 수학과 교수를 적극 옹호하며 자신의 처지를 김명호에 비유하다가 토론 과정에서 크게 패하고 이글루스에서 더욱 평판이 깎였다. 2012년 5월 [[역사 밸리]]에서 [[책사풍후]]의 멀티 아이디 제홍씨와 [[임나일본부설]] 문제를 놓고 키배를 벌이고 있다. 역사 밸리의 반응은 이 둘 말고도 심각한 [[도배]]질로 역사 밸리가 초토화돼서 둘이 뭘 하든 그냥 무관심. 2013년 3월 [[역사 밸리]]에서 [[6.25 전쟁]]의 [[남침유도설]] 논쟁이 재발했는데 이때 앞서의 [[T-34-76|T-34]] 구식론에 대한 반박에 재반박으로 T-34가 [[1934년]] 제식화되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소련의 대일 개전은 일본이 사실상 항복한 뒤에 이루어져서 아무런 피해 없이 한반도에 진입하였다고 주장했다. 본인의 주장을 정리하면 8월 9일 일본이 소련을 통해 협상시도가 이루어졌고, 곧바로 소련이 극동 방면에서 전쟁을 개시했으며, 10일 일본이 항복했으므로[* 정확하게 8월 10일 새벽 4시부로 일본 정부는 포츠담 선언 수락을 통한 종전 결정을 내렸다. 이는 NHK와 도메이 통신의 전파 발송, 중립국을 경유해 연합국에게도 전달되었다. 문제는 일본은 천황제 유지를 위해 연합국과 옥신각신했고, 군부는 패전은 없다고 우겼다. 이렇게 시간을 날렸고 두말없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것은 우리가 아는 15일이 맞는다. 그럼 10일부터 15일 동안 시간에 뭔 일이 있었냐면, 국체호지라는 이유로 병사들이 이미 진 전쟁에서 죽어갔다. 그리고 항복은 했어도 개별적으로 항복을 받아들이지 않고 저항하는 쪽도 있었다. 지역별로 항복과 전투정지에 시간차가 있는데 만주군은 19일 항복했다. 그전까지는 쭉 싸웠다. 즉, 이희진의 주장은 기본적인 사실조차 무시한 창작이 된 것이다.] 끝났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뭔가 앞뒤가 안맞는다고 생각이 들면 [[만주 작전]] 항목을 보면 된다. 극동 방면 소련군이 약체(?)라고 주장하기 위하여 소련군을 목격한 사람들이 소련군이 거지부대처럼 생겼다고 한 증언을 근거로 삼는 등, 계속해서 논쟁 중이다. 2차대전 시기 소련군을 집중 연구해서 그 분야의 본좌로 추앙받는 [[데이비드 글랜츠]]의 주장을 비판하다가 비난받기도 했다. 2018년 하반기부터 2019년 현재까지 여전히 풍납토성과 관련된 고고학 연구 자료를 비판하는 영상을 올리고 있으며, 더나아가 요하문명론에 동의하고, 그것을 [[단군조선]]과 연결짓는 [[유사역사학|비전문가]]들을 옹호하고 있다. 심지어 한국민족종교협의회 개천절 학술대회에서는 송호정 교수의 인성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송호정 같은 이들은 비전문가가 나선다고 비난하기 전에 무엇 때문에 그러한 사태가 생기고 힘을 얻고 있는지 반성부터 하라'''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어서 '''한국상고역사 전문가를 자청하는 사람들이 비전문가들이 나설 수밖에 없게 만드는 수준''' 이라고 비꼬았다. 송호정 같은 세력이 조작과 왜곡을 일삼는데 이를 '작태'라고 비난했다고 한다. [[리그베다 위키]]에서는 본인의 블로그에서 불쾌감을 표시한 것으로 인해 [[http://rigvedawiki.net/%EC%9E%91%EC%84%B1%EA%B8%88%EC%A7%80/%EB%AA%A9%EB%A1%9D|작성금지 처리]] 되었고, 닉네임인 '블레이드'로의 우회등록도 금지됐다. 다만 나무위키에서는 정식으로 작성금지를 요청하지 않으면 받아주지 않기 때문에 이희진에 대한 서술이 복원되었다. 본인도 이를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http://www.n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637|투데이신문 칼럼]][* 이희진이 소련군의 무기체계처럼 자기가 잘 모르는 분야에서 말도 안 되는 우기기를 시전하다가 망신당했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다.]에 '''평판 조작되는 사회'''라는 제목으로 나무위키를 신랄하게 깠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