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진(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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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이희진(역사학자)3.jpg

이름
이희진(李熙眞)
출생
1963년
서울특별시[1]
학력
고려대학교 이과대학 (생물학[2] / 학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3] (역사학 / 석사[4])
서강대학교 대학원 (사학 / 박사[5])
링크
파일:유튜브 아이콘.svg유튜브 채널
파일:이글루스 아이콘.svg이글루스
파일:네이버 블로그 아이콘.svg네이버 블로그

1. 개요
2. 생애
3. 웹상에서의 논쟁
4. 문제: 증거제시 및 전문성 결여에 근거한 전문가 비난
4.1. 데이비드 글랜츠 수준 운운
5. 저술활동



1. 개요[편집]


대한민국한국사 저술가.

2. 생애[편집]


1963년 서울특별시에서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및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를 지낸 아버지 이성무와 어머니 김복기 사이의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자(父子)가 공동으로 한국사 서적을 집필한 적도 있다. 이성무는 고대사 파트, 이희진은 현대사 파트를 집필했다고. 그리고 이희진이 본인의 블로그에 이성무의 칼럼을 올리기도 했다.

고려대학교 생물학과에 입학하였고, 고려대학교 졸업 후 1992년 8월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역사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1996년 서강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희진의 고백으로는 서강대학교 대학원에서는 자유로운 학풍[6] 덕에, 다른 학교에서 까였던 것과는 달리 그의 연구가 호응을 받았었다고 한다.[7]

이후 서강대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 등에서 강사를 한 경력이 있고, 2016년부터 한국항공대학교에서 강사를 하고 있다. 시간강사 활동과 더불어 각종 단행본 출간 및 연구참여, 인터뷰 등을 하고 있다.

학자로서 그의 역량이 어떤지는 몰라도 일단 역사 관련 도서를 출간하는 작가로서는 어느 정도 흥행하는 작가인 듯하다. 그의 작품 활동은 주로 한국고대사에 대한 재조명을 주제로 하고 있고, 특유의 깔끔한 전개와 논리가 인상적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한국고대사 중에서도 주로 가야사와 백제사를 연구한다. 이희진이 연구하는 것은 광복 이후 한국사학계의 '후식민사관'의 프레임에 굴절된 한국고대사를 재조명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의 저서 《식민사학과 한국고대사》(소나무, 2008)를 읽어보면 그가 학계에서 어떤 포지션에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과거 유사역사학대륙백제설에 대한 비판을 하기도 하였으나, 최근에는 송호정 교수와 김정열을 비판하며, 요하문명론에 동의하고, 이를 단군조선에 연결하는 것을 옹호하기도 했다.

3. 웹상에서의 논쟁[편집]


그는 '블레이드'란 닉네임으로 이글루스에 이글루를 만들어 역사 밸리음식 밸리를 중심으로 매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역사 밸리 활동량 통계를 내면 아마도 그가 탑일 것이다. 매일 아침마다 글을 올리니... 실제로 모 유저의 통계에 집계되기도 했다. 그런데 올라오는 글의 대부분이 이성무의 칼럼이고 (왜 그걸 본인 이글루에 올리는지는 모르겠다만...) 본인이 올리는 건 어쩌다 한 번 방영 중인 사극의 고증이나 황당한 스토리 전개를 비판하는 것이나, 평가는 매우 소략하고 주로 음식 사진으로 도배되어 있는 맛집 후기를 올리는 게 전부다.... 그리고 아주 가끔 학계 현실에 대한 비판 등을 끄적거린 '부담스러운 이야기'를 올리곤 했다. 2015년 3월에 이글루스를 떠났다. 현재는 네이버 블로그에서 똑같은 활동을 하고 있다.

이글루스에서 유저들과 논쟁을 하다가 6.25 전쟁 관련 논쟁에서 미국이 고의적으로 북한의 침공을 유도했다는 남침유도설을 주장하기도 했다. T-34 구식론을 꺼내며 시작했으나 T-34/76과 T-34/85를 구분하지 못하는 오류, 한국전 당시 투입된 셔먼의 주포를 모르고 있었으며, 셔먼의 주포를 75mm라 주장하며 셔먼의 75mm의 관통력 자료도 제시하지 못했을뿐더러 제1차 세계대전태평양전쟁미국유도설을 주장했다. 혹자는 그가 셔먼의 75mm를 판터의 75mm와 동일한 것으로 착각한 거 아니냐고 하는 등 무기체계만 따져도 밀덕후들에게 비난받고 기밀해제된 미국 정보부 문서 등을 제시한 반대 측에 대해 제대로 반박하지 못해 역덕들에게 비난받았다. 사실 두 계층은 온라인상에서는 교집합이 많이 되는 편이기도 하고. 밀덕들에게 두 번이나 지적당했으나 글을 삭제. 본인은 인정하지 않았으나,플래툰 2011년 7월호에서 이 논쟁을 언급하면서 '그 주장을 뒷받침할 수준의 병기나 군사 지식이 없는 분'이라고 간접 디스까지 건 상태.

또한 6.25 전쟁 관련 남침유도설에서 화제를 돌리려 풍납토성을 왕성으로 보는 견해를 비판한다면서 고고학 분야가 왜곡되었다고 비판하였다가 다른 학자의 있지도 않은 발언을 왜곡하는 등의 행태를 보이기도 했으며 논쟁은 의견을 교환하는 선으로 마무리 짓고 끝나는 것처럼 보였으나 사실상 판정패했다.

이후 각궁의 위력이 M16 소총의 60%라고 하거나 황산벌 전투 당시 백제군 패잔병이 기벌포 전투에 투입되었다는 등 근거가 부족한 주장을 자주 하며 비난의 소재를 제공하였으며 그중 근거로 댄 사이드카 드립은 많은 이들에게 조롱거리가 되었다. 황산벌 전투와 기벌포 전투는 같은 날 벌어졌으며 30km 이상 떨어져 있다. 지휘부가 궤멸한 상태에서는 불가능한 소리. 또한 신라군은 보급부대로 당군은 신라군에 보급을 전적으로 의존했다고 하지만 산술적이나 보급부대에 대한 기록이 적힌 중국 쪽 사료를 무시한 결과다.

8월 말 동아넷 포럼에서 어느 이글루저가 식민사학자 쓰다 소우키치(津田左右吉)에 대해서 식민사학자라고 다 틀린 소리인가? 라고 언급한 걸 인용해서, 이글루스에서 까였다.[8]

2012년 1월 부러진 화살이 이슈를 모으자 판사 석궁 테러 사건을 분석하며 김명호 전 성균관대 수학과 교수를 적극 옹호하며 자신의 처지를 김명호에 비유하다가 토론 과정에서 크게 패하고 이글루스에서 더욱 평판이 깎였다.

2012년 5월 역사 밸리에서 책사풍후의 멀티 아이디 제홍씨와 임나일본부설 문제를 놓고 키배를 벌이고 있다. 역사 밸리의 반응은 이 둘 말고도 심각한 도배질로 역사 밸리가 초토화돼서 둘이 뭘 하든 그냥 무관심.

2013년 3월 역사 밸리에서 6.25 전쟁남침유도설 논쟁이 재발했는데 이때 앞서의 T-34 구식론에 대한 반박에 재반박으로 T-34가 1934년 제식화되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소련의 대일 개전은 일본이 사실상 항복한 뒤에 이루어져서 아무런 피해 없이 한반도에 진입하였다고 주장했다. 본인의 주장을 정리하면 8월 9일 일본이 소련을 통해 협상시도가 이루어졌고, 곧바로 소련이 극동 방면에서 전쟁을 개시했으며, 10일 일본이 항복했으므로[9] 끝났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뭔가 앞뒤가 안맞는다고 생각이 들면 만주 작전 항목을 보면 된다. 극동 방면 소련군이 약체(?)라고 주장하기 위하여 소련군을 목격한 사람들이 소련군이 거지부대처럼 생겼다고 한 증언을 근거로 삼는 등, 계속해서 논쟁 중이다.

2차대전 시기 소련군을 집중 연구해서 그 분야의 본좌로 추앙받는 데이비드 글랜츠의 주장을 비판하다가 비난받기도 했다.

2018년 하반기부터 2019년 현재까지 여전히 풍납토성과 관련된 고고학 연구 자료를 비판하는 영상을 올리고 있으며, 더나아가 요하문명론에 동의하고, 그것을 단군조선과 연결짓는 비전문가들을 옹호하고 있다. 심지어 한국민족종교협의회 개천절 학술대회에서는 송호정 교수의 인성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송호정 같은 이들은 비전문가가 나선다고 비난하기 전에 무엇 때문에 그러한 사태가 생기고 힘을 얻고 있는지 반성부터 하라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어서 한국상고역사 전문가를 자청하는 사람들이 비전문가들이 나설 수밖에 없게 만드는 수준 이라고 비꼬았다. 송호정 같은 세력이 조작과 왜곡을 일삼는데 이를 '작태'라고 비난했다고 한다.

리그베다 위키에서는 본인의 블로그에서 불쾌감을 표시한 것으로 인해 작성금지 처리 되었고, 닉네임인 '블레이드'로의 우회등록도 금지됐다.

다만 나무위키에서는 정식으로 작성금지를 요청하지 않으면 받아주지 않기 때문에 이희진에 대한 서술이 복원되었다. 본인도 이를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투데이신문 칼럼[10]평판 조작되는 사회라는 제목으로 나무위키를 신랄하게 깠다.


4. 문제: 증거제시 및 전문성 결여에 근거한 전문가 비난[편집]



4.1. 데이비드 글랜츠 수준 운운[편집]


이 논란은 이희진이 만주 전역에 투입된 소련군을 일부 증언을 바탕으로 형편없는 거지꼴의 오합지졸이라 주장하다가 반박을 받던 과정에서 생긴 논란이다. 몇몇 블로거들이 글랜츠 연구를 바탕으로 반박하자 글랜츠 수준 드러나네 운운하며 비방을 하더니 글랜츠의 이 글을 근거로 눈속임 기법이라 주장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

스타브카는 주요 사령부들과 함께 수많은 독립 전차 부대, 독립 포병 부대, 독립 공병 부대들을 만주의 다양한 지역에서 적절한 작전 지원을 위해 극동으로 이동시켰다. 이 전력들의 재배치는 만주에 배치된 사단들을 40개에서 80개 이상으로 증강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철도 교통의 크기는 이러한 전력 재배치의 복잡함과 거대함을 설명해 준다. 소련군은 9,000 Km 에서 12,000 Km 이동에 열차 136,000량을 동원했다. 1945년 6월에서 7월에 시베리아 횡단철도에서 매일 열차 22~30대가 돌아다녔다. 소련군 부대들은 마지막 집결지로 가기 위해 도로도 강대하게 사용했다. 예를 들어, 자바이칼 전선군은 몽골 초이발산으로 향하는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주요 철도선 종점에서 하차한 후 철도와 도로 모두를 사용해 500~600 Km 를 추가로 이동했다. 광대한 병력 재배치는 극동과 자바이칼 지역 안에서 이미 시작하고 있었다. 1945년 5월에서 6월까지 30개 사단의 100만 인력이 새 주둔지로 이동했다.」- 데이비드 M. 글랜츠, Leavenworth Paper No. 7, August Storm: Soviet Strategic Offensive in Manchuria, 1~2p


여기서 이희진은 '1945년 5월에서 6월까지 30개 사단의 100만 인력이 새 주둔지로 이동했다'는 점을 들어 눈속임 기법일 수 있다는 지적을 했는데 증거도 제시하지않고 군사학 전문문헌도 제시하지 않았다.그나마 군사학적 근거가 되는 게 아는 선배에게 들은 것이라고 하는데, 그것도 어떤 대화가 이뤄졌는지 자세히 쓴 것도 아니다.

심지어는 저런 주제에 "이런 사정 감안해보면 1-2달만에 100만 병력이 이동한 것처럼 써놓은 위 글랜츠의 논문이 적어도 이 부분에서는 어떤 수준으로 쓰여졌는지 쉽게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눈속임을 했다는 증거나 전문적인 군사학 분석서를 내놓지도 않으면서 2차대전 시기 소련군 연구에 관해서 세계적 권위자인 데이비드 글랜츠[11]의 논문을 수준 운운한 것. 당연히 밀덕, 역덕계에서 가루가 되도록 까였지만 이에 대한 어떤 제대로 된 반박이나 대응도 내놓지 않았다.


5. 저술활동[편집]



  • 저서
    • 중화사상동아시아 - 자기 최면의 역사: 한중일의 민족주의의 핵심에는 중화사상이 있다라는 주장
    • 근초고왕을 고백하다: 드라마 근초고왕(드라마) 방영 즈음에 출간된 서적으로 근초고왕, 성왕을 다루고 있다.
    • 백제사 미로찾기: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옹호하고 대륙백제설 등을 까는 내용으로 이루어저 있다.
    • 잃어버린 백제 첫 도읍지: 건축가 강찬석과 공저, 풍납토성이 백제의 첫 수도 하남 위례성이라는 역사학계의 정설에 대해 반박하고 하남 춘궁동 백제 유적이 진짜 위례성이라는 내용. 그런데 위례성 항목에서 보듯이 춘궁동 설은 이미 사장된 설이고 풍납토성 위례성 설이 현재 학계의 정설이다. 풍납토성 때문에 재산권 행사에 지장이 많은 풍납동 주민 단체에서는 당연하게도 큰 지지를 받고 있다.
    • 식민사학이 지배하는 한국고대사
    • 한국전쟁의 수수께끼: 6.25 전쟁 50주년 기념하여 낸 책 한국전쟁이 미국의 계획적이고 고의적 남침유도로 발발했다고 주장.
    • 살림지식총서 제 495호 한국전쟁사 : 2014년 10월 출간된 책으로 다행히 남침유도론같은 음모론은 없으며 한국전쟁의 전개과정을 간략하게 다룬내용이다. 다만 설명이 6.25 전쟁 전반부에만 치중되어있으며 중후반부는 어물쩡 넘기고 끝나는게 흠 여담으로 그간 남침유도설의 근거랍시고 T-34 구형론을 이글루스에서 주구장창 주장하다가 밀덕들에게 놀림당한것이 매우 분하고 억울했는지(...) 'T-34 전차는 제2차 세계대전 초부터 사용되었지만, 꾸준한 개량으로 실전에서 대단한 위력을 발휘했다.'라고 서술했다(...)
    • 전쟁의 발견: 삼국시대 주요 전쟁들에 대해 다루고 있는 책.
    • 625 미스터리: 한국전쟁의 수수께끼에서 표지와 제목을 바꾸고 쓴 사실상의 재판.
    • 징비록의 그림자: 징비록(드라마) 방영 즈음에 출간된 서적으로 정작 다루는 시기는 임진왜란 발발 이전부터 탄금대 전투 직후까지. 제목과는 달리 사실상 신립이 주인공으로 그를 비운의 명장 정도로 다루고, 류성룡도 부정적으로 묘사하며 김성일은 당쟁에 눈이 먼 우매한 신하라는 일반적인 통념으로 그리고 있다. 신립만 비장하게 다루고 김성일이 초유사로 활약하기 전에 끝나기 때문에 정작 중요한 행적은 안 나오고 부정적으로만 나와, 드라마 방영 즈음에 출간된 거 말고는 제목에 징비록이 들어간 의미가 없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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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사학 복수전공[3]한국학중앙연구원 산하의 한국학대학원에서 학위를 받음.[4] 석사 학위 논문 : 한반도 분할배경에 대한 연구 : 소련의 대일전 참전과정을 중심으로(1992. 8).[5] 박사 학위 논문 : 4 ~ 6世紀 加耶를 중심으로 본 국제관계의 展開(4 ~ 6세기 가야를 중심으로 본 국제관계의 발전, 1996).[6] 서강대학교 사학과는 학부 수업에서조차 학생이 교수와 반대되는 의견을 개진해도 전혀 제재받지 않는다. 박사 논문으로 스승의 학설을 정면으로 반대해도 통과되는 학교가 서강대학교다.[7] 자세한 내용은 도서 《식민사학과 한국고대사》(소나무, 2008)을 참조하기를 바람.[8] 인용된 이글루저는 역밸에서 다른 블로거에 인정받지 않고 오히려 비판받고 있는 주류라고 할 수 없는 사람이라, 그런 견해를 마치 주류의 의견인 것인양 인용하는 것 역시 왜곡이므로 까일 수밖에 없었다.[9] 정확하게 8월 10일 새벽 4시부로 일본 정부는 포츠담 선언 수락을 통한 종전 결정을 내렸다. 이는 NHK와 도메이 통신의 전파 발송, 중립국을 경유해 연합국에게도 전달되었다. 문제는 일본은 천황제 유지를 위해 연합국과 옥신각신했고, 군부는 패전은 없다고 우겼다. 이렇게 시간을 날렸고 두말없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것은 우리가 아는 15일이 맞는다. 그럼 10일부터 15일 동안 시간에 뭔 일이 있었냐면, 국체호지라는 이유로 병사들이 이미 진 전쟁에서 죽어갔다. 그리고 항복은 했어도 개별적으로 항복을 받아들이지 않고 저항하는 쪽도 있었다. 지역별로 항복과 전투정지에 시간차가 있는데 만주군은 19일 항복했다. 그전까지는 쭉 싸웠다. 즉, 이희진의 주장은 기본적인 사실조차 무시한 창작이 된 것이다.[10] 이희진이 소련군의 무기체계처럼 자기가 잘 모르는 분야에서 말도 안 되는 우기기를 시전하다가 망신당했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다.[11] 글랜츠는 2차대전에서 소련군의 역할을 평가절하하는 미국의 프로파간다를 방대한 실증자료에 기반한 연구로 박살내 인물이면서 동시에 소련군의 실패를 축소은폐하던 러시아의 프로파간다도 역시 실증연구로 깨부순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