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종현(농구선수) (문단 편집) === 대학 시절 === || [[파일:/image/109/2009/12/04/200912040847201300_1.jpg|width=400]] || [[파일:external/img.newspim.com/20130822000526_0.jpg|width=400]] || || 고등학생 시절 || 고려대학교 시절 || 휘문중학교 때부터 이미 팀을 우승으로 이끄는 선수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성장판 검사에서 216cm까지 클 거라는 기대감을 심어줬다. [[경복고등학교]]에 입학해서는 [[최준용(농구선수)|최준용]]과 함께 트윈 타워를 형성했으며 3학년 때(2012년)에는 동학번 센터 랭킹 2위라는 계성고 [[박인태]]를 상대로 리바운드를 '''42'''개 잡아내며 임팩트를 남겼다.[* 박인태도 적어도 아마농구 무대에서는 평균 이상의 퍼포먼스를 보이는 실력파인데, 이날 이후 이종현에게 완전히 호구잡히면서 대학 진학 이후에도 이종현의 [[고려대학교|고려대]]만 만나면 삽질을 일삼게 되고... 결국 연세대 [[정재근(농구)|정재근]] 감독의 예상치 못한 사퇴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동년에 결국 런던올림픽 남자농구 최종예선 성인 국가대표팀에 발탁되면서 [[최진수(농구)|최진수]] 이후 6년만에 고교생 신분으로 성인 국가대표팀에 발탁된 선수가 되었다.[* 역대 고교생 신분으로 성인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었던 선수는 신동파, 하동기, [[하승진]], [[최진수(농구)|최진수]], 그리고 본인까지 총 5명.] [[하승진]] 이후 오랜만에 나타난 고교 최대어의 출현은 각 대학들 사이에 치열한 스카웃 전쟁을 촉발시켰고, 스카웃 전쟁에서 승리한 [[고려대학교]]는 이종현의 입학을 통해, 그간 목말라 왔던 센터에 대한 갈증을 깨끗이 해결할 수 있었다. [[한기범]], [[김유택]], [[김주성(농구)|김주성]], [[오세근]]을 배출한 중앙대와 [[서장훈]], 하승진을 배출한 연세대에 비해 고려대는 상대적으로 항상 센터가 취약한 팀이었는데,[* 임정명과 [[전희철]] 외에는 국가대표급 빅맨을 배출하지 못했다. 임정명도 키가 188cm에 불과했으며, 198cm의 전희철 역시 센터라기보다는 [[파워 포워드]] 혹은 [[스몰 포워드]]로 이름난 선수였다.] 이종현의 입학 이후에는 인사이드의 높이만으로도 상대를 눌러버리는 농구를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이종현이 입학하기 전까지 고려대 센터를 맡던 [[이승현(농구선수)|이승현]]은 이종현과 함께 뛰기 위해 [[파워 포워드]]로 포지션을 변경하였고, 이승현-이종현의 인사이드는 역대 최고 수준의 대학 빅맨진이라는 평을 받았다. 이종현이 입학 예정자 신분으로 뛴 2012년 [[농구대잔치]]에서는 상무의 108연승 및 농구대잔치 5연패 도전을 저지하고 고려대의 첫 농구대잔치 우승을 이끌어내면서 '역시 이종현' 이라는 얘기가 나오게 된다. 이종현의 고려대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2013년 [[MBC배 전국대학농구대회|MBC배 대학농구]], 2013년 [[한국대학농구리그]], [[2013년]] [[프로-아마 농구 최강전]]까지 출전한 모든 대회에서 우승하며 전관왕을 달성, 새로운 고려대 왕조의 역사를 써내려가게 되었다. 이종현은 2013 MBC배 대학농구에서는 MVP, 2013 프로-아마 농구 최강전 MVP, 2013 대학농구리그에서는 신인상과 챔피언 결정전 MVP를 수상하며 1학년 신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고려대의 핵심 선수임을 증명한다. [[2014년]]에도 이종현은 고려대의 MBC배 대학농구 우승과 아시아-퍼시픽 대학농구 챌린지 우승, 대학농구리그 통합 우승을 이끌며 고려대의 전성기를 이어갔다. 국가대표로서 여름에 [[2014 FIBA 농구 월드컵 스페인|농구 월드컵]]에 참가하여 블락슛 전체 1위를 기록하였으며, 이어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인천 아시안 게임]]에도 참가하여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이 12년 만에 아시안 게임 우승을 차지하는 데 기여하였다. 금메달 획득으로 병역 특례도 받았다. [[2015년]] NBA 서머리그 참가를 위해 NBA 드래프트 참가 신청서를 낸 후 미국으로 갔으나 최종적으로 서머리그 진입에는 실패했다. 몇몇 팀들은 관심을 보였으나 [[NBA G 리그]]에서 계속해서 뛰기를 바랬고, 고려대학교를 떠날 생각이 없는 이종현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결정이었다. 고려대로 복귀한 후 여름에 열린 2015 [[프로-아마 농구 최강전]]에서는 기대만큼의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며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다. 특히 [[함지훈]], [[이승현(농구선수)|이승현]] 같은 [[빅맨]]들과의 파워 싸움에서 밀리는 모습을 보이며, 같은 대회에서 2년전에 보여주었던 압도적인 모습과 비교해 기량이 정체되고 있다는 우려를 낳았다. 국가대표팀 훈련과 연일 경기가 치러지는 최강전 일정으로 인한 체력 저하 문제도 있었다고는 하나, 자신보다 훨씬 작은 빅맨들과의 대결에서 밀리는 모습은 큰 아쉬움을 주었다. 또한 대회 전후 SNS에 멘탈이 약하다는 평을 받기쉬운 글을 남겨 농구팬들 사이에서 많은 질타를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고려대가 [[MBC배 전국대학농구대회|MBC배 대학농구]], [[한국대학농구리그|대농리그]]에서 우승 행진을 이어가는 데 기여했다. NBA 드래프트 당시 [[손대범]]이 이종현의 가능성을 물었는데 "'이종현은 좋은 센터가 될거야. [[한국프로농구|KBL]]에서(...)"'라는 평가를 들었다고 한다. 2016 NBA 드래프트에서 청소년기 라이벌이던 왕제린과 한 수 아래이던 저우치가 하위 순번이라도 드래프트되어 씁쓸함을 더해주었다.[* 사실 저 둘도 정체되었다는 평가의 이종현에 비해 엄청나게 발전하지는 못했다. 다만 NBA에 어울리는 사이즈를 갖췄고, 중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마케팅적 측면도 크다.] ~~그러나 그 둘 다 아직까지 한 번도 NBA에서 경기를 뛰어보지 못했다 [[카더라]]~~ 2015년 말에는 국제무대에서 웨이트의 필요성을 배우고 최근 몸무게를 부쩍 늘렸다. 빈약했던 팔과 상체에 근육이 붙고 있다. 어깨 밑 팔뚝도 몰라보게 굵어졌다. 팔꿈치에서 어깨로 이어지는 부위에는 굵은 핏줄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체질상 근육이 잘 붙지 않지만 태어나서 한 번도 먹어 보지 않은 단백질 보충제까지 먹고 있을 정도로 웨이트를 열심히 해서 107kg 체중을 115kg까지 늘렸다.[* 이때의 벌크업은 너무 성급했다는 평가. 플레이스타일 항목에 후술.] [[2016년]] 6~7월에 열린 아시아-퍼시픽 대학농구 챌린지(APUBC)에서는 득점, 블록슛 스탯에서는 괜찮은 모습을 보여줬지만 벌크업에 따른 체력 배분이 어려웠던 모양인지 결승전에서는 둔한 움직임과 함께 골밑에서 적극적인 몸싸움을 보여주지 못했다. 득점 스탯으로만 본다면 20점 가까운 기록에 70%가 넘는 자유투 성공률을 보여주었지만 50%에 못미치는 야투 성공률과 함께 그 피지컬을 가지고도 외곽에서 겉도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걸 떠나서 매치업 상대였던 장신 스트레치 포워드 조나단 젠슨에게 3점슛을 5개나 허용한 수비도 문제. 그래서 하와이퍼시픽대학에 밀려 준우승에 머물자 [[최준용(농구선수)|최준용]]과 함께 패배의 원흉으로 신나게 까이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