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제동 (문단 편집) == 유년 시절 == [[울산]]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DDR, 철권, 세이브 축구, 1945 등 안 해본 게임이 없을 정도로 [[오락실]] 매니아였던 이제동의 인생을 바꿔놓은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 부모님이 사주신 컴퓨터였다.[* 이미 이 때부터 승부사 기질이 있었다고. 누구와 승부해서 이기는 걸 제일 좋아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때는 한창 닌텐도 게임이 유행할 시기였는데, 이 때문인지 아레나 MSL 조지명식 당시 [[이성은]]이 닌텐도 DS를 미끼로 자신을 [[마재윤|마모씨]]와 한 조에 넣도록 이제동에게 로비(...)를 넣기도 했다.] 친형의 친구인 인욱이 형이 알려준 스타크래프트를 접하고부터 "와, 뭐 이런 게임이 다 있어!"라며 미친 듯이 빠져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때부터 공부는 추락을 거듭했다고-- 여타 프로게이머들과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부모님의 반대가 극심했고, 프로게이머가 되기까지 순탄치만은 않았다고 한다. 중학생 때부턴 울산 시내의 PC방 대회를 자주 나갔는데, 하도 부모님이 반대하시니 몰래 몰래 나갔다고 한다.[* 정보 수집도 혼자, 대회 준비도 혼자, 출전도 혼자. 그냥 혼자 알음알음 알아보고 나가서 상타고 그런 식으로 보냈다고 한다.] 그런 어린 시절에도 클래스가 보였는지 점점 실력과 우승 횟수가 늘자 울산에는 더 이상 자기를 이길 사람이 없다고 판단, 부산과 서울의 대회까지 출전할 정도였다. --어찌 우물 안 개구리로 남아있으리-- 자기도 무모했다고 말할 만큼 중학생에겐 쉬운 일이 아니지만, 어쨌든 이때부터 프로게이머의 떡잎이 보였다. 평범히 게임을 즐기는 게 아니라, 진지하게 이 길을 걷겠다고 다짐한 시기도 이때쯤이었으며 점점 PC방 대회에서 좋은 결과를 거두자 프로게이머가 되겠다는 욕심도 늘었고, 결국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끝내 설득해서 '''공부와 병행하면서 게임을 하겠다는 약속을 했고, 실제로 그걸 지켰다.''' 주중에는 공부를 하고, 주말에는 지방 대회를 나갈 차비를 타서 대회에 참가하는 식으로. 이때의 일화로,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는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난생 처음 야간버스를 타고[* 2000년 초반만 해도 [[경부고속선]] [[울산역]]은 건설 중이었고, 울산에서 서울로 바로 가는 기차는 [[새마을호]] 하루 2번이랑 [[청량리역]]으로 가는 [[근성열차/대한민국|근성열차]] [[무궁화호]] 하루 한 번이 전부였다. 그래서 울산에서 서울 방면은 [[고속버스]]와 [[시외버스]]가 꽉 잡고 있었고 [[울산공항]]을 통한 비행기 수요도 제법 있었다.] 서울 강남터미널에 도착했는데, 혼자라서 무섭고 막막했다고 한다. 지하철도 이때 처음 타봤으며, 삼성역 코엑스에 도착하니까 새벽이라 문이 닫혀 있어서 문이 열릴 때까지 의자에서 노숙을 했다고(...). 그때 3등을 했다고 하는데, 당시 들었던 기분은 응원해주는 사람도, 지지해주는 사람도 없는데다 어린 나이에 버스타고 게임 대회 나가서 남들이 인정해주지도 않는 게임을 위해 이러고 있나 싶어서 허전하고 서글픈 심경 뿐이었다고 한다. 처음으로 부모님이 직접 데려다주신 포항의 한 대회에서는 1등으로 [[디카]]를 받고, 부모님이 지켜보는 가운데 1등을 해서 정말 뿌듯했다고 한다. 이벤트 대회에는 마침 한창 유명한 프로게이머, 게임으로 유명한 사람들은 거의 다 만났었다. KOR팀의 [[전태규]], [[주진철]] 선수[* 그때가 KOR팀이 한창 가난해서 전태규가 벌어오는 상금, 이벤트와 행사를 전전하며 그 수입으로 먹고 살 때다. 이때의 프로게이머들은 다 이렇게 힘든 시기를 거쳐왔다.]를 만나고 가슴이 설렜다고. '''그렇게 막연하게 프로게이머의 꿈을 꾸던 이제동은 고등학교 입시라는 거대한 암초를 만나게 된다.''' 당연히 미친듯이 게임을 했으니 중학교 성적은 바닥이었고, 꼴찌에 가까운 성적에 고등학교를 진학하지 못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부모님이 내건 조건은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게임을 계속 하도록 해주겠다는 것. 그때부터 미친듯이 공부를 해서 2005년 [[인문계 고등학교]]에 입학.[* 울산의 [[신정고등학교(울산)|신정고등학교]]를 입학하였고, 당시 [[신희승]]도 동문이었다. 후술하겠지만 n.Die 클랜에 입단해서 담임쌤이 야자 안 빼준다고 징징거리는 고딩 이제동(...)의 게시글도 이 때 나왔다.] 당연히 게임에 미쳐있으니 수업이 눈에 들어올 리 없었고, 밤에는 게임을 하고 낮에는 잠으로 보내며, --야자를 안 빼주니-- 학교를 무단 조퇴하고 야자를 빼먹고 게임하러 가기 일쑤였다. 그때 당시의 프로게이머에 대한 인식은 막장이라 선생님도 반대가 심했고, 상처되는 말도 많이 들었다고 한다. '''결국 고등학교 1학년 2학기, 자퇴를 결심한다.'''[* 울산의 [[신정고등학교(울산)|신정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난 뒤, 커리지를 뚫고 르까프 오즈에 입단하였는데 이후 조정웅 감독에게 고등학교 졸업을 권유받아, 결국 이제동은 서울의 [[성지중·고등학교|성지고등학교]]에 다시 입학하여 졸업까지 마쳤다. 학력인정 평생교육시설인 성지고의 경우, 출석 횟수를 채워야만 하는 일반계 고교에 비해 졸업 조건이 까다롭지 않아서 당시에 많은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들이 여기서 입학/졸업을 했었다. 이후 2010년부터 [[서울사이버대학교]]에 재학했었다.] 자퇴를 한 이유는 공부가 싫은 게 아니라, 그냥 게임에 미쳐있었고 프로게이머가 되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때의 생활은 매우 단조로워서 일어나서 연습 → 밥 → 연습 → 밥의 반복이었다. 자기가 좋아해서 선택한 일이지만, 미래가 불확실하니 불안함도 많았고, 부모님께 죄송스럽고 죄짓는 느낌이 많이 들어 더욱 더 열심히 연습하고 커리지에 참가하고 계속 도전했다고 한다. 이때의 이제동을 잡아준 것은 바로 친구들. 어른들은 전부 반대해도 친구들은 자신을 응원해주고 힘을 주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