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영우 (문단 편집) == 플레이 스타일 == 국내 야구계는 예나 지금이나 컨택이 좋고 발이 빠른 쌕쌕이 유형의 1번 타자를 선호하지만, 이영우는 그와는 상당히 판이한 스타일을 가진 선수였다. 사실 절대적인 주력이 느린 선수는 절대 아니지만, 센스가 좋지 않아 도루 실패가 매우 많았고 실제로 112도루 81실패를 기록하고 있다. 흔히 1번 타자하면 떠올리는 "단타 후 도루로 득점권 상황 만들기"와는 어울리지 않았던 셈이다. 하지만 이런 단점을 덮고도 남는, 엄청난 타격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리드오프 치고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클린업 트리오에 자리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수준의 강타자였으며, 전성기에는 wrc+ 130 이상을 꾸준히 기록하면서 8할 후반~9할 초반의 OPS를 넘나들었다. 3할 이상이 가능한 컨택과 20홈런 이상이 가능한 파워 뿐만아니라 타출갭이 1할에 달할 정도로 선구안도 준수했고, 강타자의 상징으로 꼽히는 3-4-5 슬래시 라인까지 찍어본 적이 있다. [* 1999년에는 출루율이 0.399로 아쉽게 실패했다.] 즉 수비는 약하지만 탁월한 컨택과 뛰어난 선구안으로 타석에서 진가를 발휘하는 [[장성호]]와 비슷한 유형의 선수였으며, 도루 능력이 특출하지 않지만 3할을 치면서 출루가 쏠쏠한 [[박한이]]와도 비슷한 파워형 1번 타자였다는 점에서도 비슷하다.[* 장성호는 98~00 해태시절 3년간 1번타자로 53개의 홈런을 쳤다. 박한이는 삼성 특유의 슬러거 타선에 가려진 숨은 중장거리 타자였으나 팀 사정상 1번 타자의 임무를 도맡아야 했다.] [[양세종]], [[노상수]], [[최계훈]]과 더불어 군 복무 후 급격하게 몰락한 선수다. 특히 30이 넘은 나이에서 군복무를 하는 바람에 군 복무 이후에는 이미 노장 선수 반열에 들어버렸고, 노쇠화와 부상의 여파로 결국 은퇴하고 말았다. 전성기 3시즌의 임팩트는 누구와 비교해도 대단했지만, 계속 꾸준했다면 장성호, [[이병규(1974)|이병규]]급으로 비교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매우 아쉬운 선수.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