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엄 (문단 편집) == 평가 == 유비 사후의 촉한의 명백한 중심인물 중 하나였고 상당히 오랜기간 보이지 않는 곳에서 활약했지만, 말년이 좋지 않았던 인물. 이는 본인의 잘못이 크다. 능력도 있었고 정치적 영향력도 컸지만 신하로서의 충성심이 의심되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제갈량에게 했던 제의들을 본다면, 도저히 촉한의 신하라고 보기 어려운 수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평도 탁고대신이었던 만큼 제갈량도 이평을 함부로 대할 수는 없었다. 이평은 형식상으로는 제갈량과 동급의 권위까지는 아니지만 유비가 직접 제갈량의 보좌로서 지명했기에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고, 제갈량이 촉한의 권력을 모두 가지고 있음에도 단독으로 이평을 파직시키거나, 형벌을 내릴 수 없었다. 그런만큼 제갈량은 이평을 탄핵할 때 당시 종군했던 거의 모든 무장, 문관들을 모아서 연명 상소를 냈다. 물론 그 중심이 된 것이 제갈량이라는 것은 틀림없지만 제갈량을 비롯한 많은 신하들이 연명하여 탄핵해서 물러나게 했으니 이평을 탄핵한 조치의 의의는 그만큼 컸던 것. 그리고 이 조치를 되물릴 수 있는 정치력도 제갈량만이 가지고 있었다. 제갈량의 뒤를 이은 [[장완]], [[비의]]는 여러 모로 제갈량의 권위를 내세우고 있었기 때문에, 제갈량의 정책을 답습할 수밖에 없었으므로 제갈량이 생전에 직접 주도한 탄핵 조치를 되돌릴 수 있는 정치력은 가지고 있지않았다. 어느 정도 정책을 조정할 수는 있어도 제갈량은 촉한의 '모범'이 되는 인물이었으므로 제갈량의 정책을 정면으로 거스를 수는 없었다. 더욱이 이평은 제갈량도 제어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비록 위험분자이기는 했지만 그는 뛰어난 인재였고 후에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하였으니 강유의 북벌에 종군했으면 좋았겠지만, 강유가 북벌을 할 때면 이평의 나이를 알 수 없지만 활동 연대를 봤을 때 이평은 잘 해봐야 할아버지다. 어쨌든 실제로는 제갈량 사후 바로 죽는데다가 역사에 만약이란 것은 의미가 없다. 어쨌든 이평은 제갈량의 4차북벌까지 오나라 방면 방어나 후방 군량수송과 같은 중요 요직을 책임졌던인물인만큼, 능력은 상당했던 인재로 보아야 한다. 계한보신찬의 평가는 냉담하다. 이엄은 선주에게 유명을 받아 후세의 기강 정립에 참여했는데, 의견을 서술하지도 않았고, 협조하지도 않았다. 이단을 만들어 그 시대에서 쫓겨나게 되었으므로 임무나 공적도 없어졌다고 한다. 이평에 대해 엄청나게 부정적으로 서술하는 [[삼국지연의]]에서도 능력에 대해서는 인정하는지, 황충과 50합이나 대등하게 싸우는가 하면[* 게다가 제갈량은 이평이 힘으로 이기지 못할 상대라 판단하고 싸움을 중지시켰다.] 제갈량이 북벌을 준비하는 동안 유선과 다른 신하들이 손권의 뒷치기를 걱정하자 "'''[[육손(삼국지)|육손]]'''을 막아낼 수 있다."란 평을 하였고[* 단, 이걸로 이엄과 육손이 동급이라고 단정할 순 없다. 이 평가는 유리한 위치를 가진, 수비하는 입장에서 말한 것이기 때문인데다, 전통적으로 오나라는 공성전이 약한 편이었다. 손권이 여러 번 합비에서 패배했던 것과 육항이 나헌에게 막혔던 것이 그 예다.], [[맹달]]을 달래어 5로 군사 중 하나를 물리치기도 했다. 삼국지 연의에서 탁고대신으로서의 중요성은 부각되지 않지만...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