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엄 (문단 편집) === 이엄의 처벌 === 제갈량 안티 및 음모론자들은 제갈량이 조정을 완벽히 장악하려고 이엄을 숙청했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지만 걸러듣자. 이엄은 선제로부터 황제의 보좌를 부탁받은 중신이다. 위에서 [[사마의]]가 [[조상]] 죽이고, 오에서 [[손준]]이 [[제갈각]] 죽이는 걸 보고, 아, 탁고대신끼리는 서로 죽여야 되는구나 싶은건지, 유비가 미쳤다고 너네 둘이 싸워서 이기는 놈이 권력 잡으라고 제갈량과 이엄 지명했을까? 물론 이엄은 제갈량에게 황권을 모욕할 것을 권했고, 비상시국에 권력을 나눠달라며 태업을 했고, 북벌로 바쁜 제갈량의 승상부 사무를 제갈량으로부터 가져가고, 국가사업인 북벌을 망치면서 제갈량을 음해하려고 했다. 이는 분명히 유비의 기대를 저버린 행동이고, 국가의 중신으로서의 자격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지만, 최소한 이엄은 황제에게 칼을 들이대지는 않았고, 죄가 있다 해도 죄와 벌에 대한 재판을 받아야 했으며, 선제의 유지를 받든 몸에 따르는 특별 대우는 여전하다. [[판관 포청천]]에서 [[포청천]]이 늘 고생하는 게 선대 황제가 신변보증한 자들이 죄 저질렀을 때 그거 재판하는 거랑 비슷한 상황이다. 더군다나 이엄 사건의 경우, 현대식으로 풀어볼 때, 이엄이 저지른 그 동안의 죄는 심증/증인(제갈량)은 있지만, 그 증인의 성격상, 그것을 증거로 할 경우 오해를 받기 쉽고, 물증은 없었다. 물증이 드러난 게 231년 북벌의 일이고 그리고 그 증거가 다 밝혀지고 탄핵이 이루어질 때야 비로소 제갈량이 이엄의 그간 행각에 대한 증언을 한다. 현대 재판으로 봐도 이건 딱히 흠잡을 데 없는 재판이다. 하물며 안 그래도 국력도 약한 촉이 이런 식의 정치싸움을 하면 뭐가 될까. 양의와 위연이 이런 짓을 했다. 그나마 장완이 없었다면 수습도 미지수였을 것이다. 하지만 장완도 양의를 죽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런 난세에서 법과 원칙을 세워간 촉이 더 대단한 것 아닐까. 삼국의 정쟁에서 정적이 살해당하지 않고 유배로 그친 나라는 촉이 유일하고, 권력다툼이 게재되지 않은 나라도 촉이 유일하다. 이건 촉이라는 나라의 특수성과 제갈량-장완의 품성이 결합된 운 좋은 예지만, 이엄의 아들 이풍이 계속 관리로 임용된 것도 다른 나라에서 볼 땐 경악할 노릇. 제갈량은 이런 식으로 나라의 힘이 소모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한 것이다. 섭섭한 마음을 표현하면서도, 제갈량은 이엄을 완전히 제거하려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 아들 이풍에게 제갈량은 편지를 써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와 그대 부자가 마음을 합쳐 협력하여 한실을 보좌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다 알 뿐만 아니라 하늘도 다 알고 있는 일이네. > >나는 표문을 올려 도호[* 이엄을 가리킨다. 중도호를 지낸 적이 있기 때문이다.]가 한중을 주관하게 하고 동관(강주)를 자네에게 맡겼었네. 이것은 다른 사람과 상의하지 않고 한 일이요, 진심은 사람을 감동시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확보할 수 있다 하는데, 누가 이리도 중도에서 어그러질 줄 알았겠는가! > >지난날 초나라 영윤[* [[춘추전국시대]] 사람 두국우도를 의미, 영윤은 초나라의 재상에 해당하며 두곡우도는 3번 파면되고 복직되었으나 늘 화를 내지 않고 신임 영윤에게 임무 인계를 했다고 한다. [[공자]]가 충성스럽다고 칭찬했다.]은 수차례나 파면되었으나 복직될 수 있었다 하는데, 여기서 올바른 도를 생각하면 복을 받고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네. > >바라건데 도호를 잘 위로하여 지난날의 과오를 뉘우치게 하시게. 지금 비록 관직에서 해임되어 직무와 권세와 가업이 원래보다 못하다 하나 노복들과 빈객들이 1백여 명이나 있고 자네가 중랑장 참군으로 승상부에서 일하고 있으니 동류들과 비기면 그래도 처지가 나은 셈이 아닌가. > >만약 도호가 죄과를 반성하고, 한마음으로 나라에 보답하며, 자네가 공염(장완)과 서로 믿고 같이 일한다면 막혔던 길은 다시 트일 수 있고 잃었던 것도 다시 얻을 수 있을 것이네. 이상의 말을 곰곰히 생각해보면 나의 정성스러운 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니. 이제 다 쓴 서신을 앞에 놓고 긴 한숨을 지으며 눈물만 흘릴 뿐이네. 이풍은 좌천되었으나 재산을 몰수당하지는 않았고, 제갈량 직속으로 승상부에서 근무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리 엄한 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이때 제갈량이 이풍을 성도나 강주가 아니라 승상부에 둔 것은, 당시 제갈량이 한중에 사실상 상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풍이 한중에 비교적 가까운 재동에 있는 아비 이엄을 모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이엄은 끝내 복직되지 못하고, 제갈량이 숨진 이후 병으로 세상을 뜨고 만다. 제갈량이 숨진 사실을 알고 제갈량의 후계자는 이런 기회를 주지 않을 것임을 헤아렸기 때문에 격분하여 결국 병들어 죽은 것이다. 이런 반응은 아마 이런 제갈량의 마음씀의 우회적인 표현이 아닌가 싶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