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광은 (문단 편집) === 프로 경력 === ||<#182132> [[KBO 골든글러브|[[파일:KBO 골든글러브 로고.svg|height=40]]]] [br] [[틀:KBO 골든글러브/3루수|'''{{{#b58a5d KBO 골든글러브}}} {{{#ffffff 3루수 부문 수상자 (1984)}}}''']] || ||<#182132> [[KBO 골든글러브|[[파일:KBO 골든글러브 로고.svg|height=40]]]] [br] [[틀:KBO 골든글러브/외야수/1900년대|'''{{{#b58a5d KBO 골든글러브}}} {{{#ffffff 외야수 부문 수상자 (1985 ~ 1987)}}}''']] || [[파일:external/dimg.donga.com/49136771.7.jpg]] 선수 시절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프로야구가 출범한 1982년 [[MBC 청룡]]의 창단 멤버로 지명받아 합류한다. 하지만 개막전 당시에는 군 복무를 위해 성무(공군) 소속으로 활동 중이었고, 제대한 시즌 중반부터 비로소 합류할 수 있었다. [[파일:external/www.ejanews.co.kr/2013120829037359.jpg|width=360&height=420]] [[MBC 청룡]]의 프랜차이즈 스타로써 10년간 한 팀에서 맹활약한 선수였고, 3할의 타율과 잠실에서는 수준급이던 장타력[* 3번 두자릿수 홈런을 기록했다.], 나쁘지 않았던 베이스 러닝을 바탕으로 한 도루 능력과 내야수 출신으로 좋은 어깨를 바탕으로 준수한 수비까지 보여주면서 구단을 대표하는 호타준족으로 자리매김했었으며 3루수로 한 번, 외야수로 세 번의 [[KBO 골든글러브]][* 1985년부터 3년 연속 수상]를 차지했다. 무엇보다도 MBC-LG 구단 역사상 몇 안되는 우타자 성공사례이기도 하다.[* LG 트윈스는 전신이던 MBC 청룡 시절부터 좌타자가 많았던 것에 비해 우타자가 많이 없기로 유명했던 팀이었다. 그나마 성공했던 우타자 사례가 이광은을 비롯해 [[노찬엽]], [[조인성(야구)|조인성]], [[채은성]] 정도.] 1990년 LG의 첫번째이자 본인의 선수시절 유일한 한국시리즈 우승 당시에도 주전 3루수로 출장하여 활약했다. [[김일권]]이 훗날 [[전설의 타이거즈]]에 출연해 밝히길 김일권-이광은 트레이드가 성사될 뻔하다가 해태에서 틀었다고 한다. 김일권은 [[김응룡]] 당시 해태 감독, 이광은은 [[김동엽(1938)|김동엽]] 당시 MBC 감독 눈 밖에 나서 서로 윈윈하는 트레이드를 계획했으나 김일권은 결국 [[태평양 돌핀스]]로 현금 트레이드됐다가 선수 말년에 LG 유니폼을 입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