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윤치호/사상 (문단 편집) === 비관주의와 자칭 합리주의 === 독립 운동에 대해서는 매우 비관적으로 보았다. 그는 민중이 깨우쳐 일제를 몰아내는 것 자체를 허황된 공상이라고 생각했다. 이는 갑신정변은 둘째치고, 독립협회나 만민 공동회에서 민중 참정권을 주장한 것과, 유럽의 의회제를 도입, [[의회]]를 설치하자는 견해를 고종, 순종에게 불충하는 역적 행위로 매도당한데 대한 실망과, 민중의 맹목적인 보수성에 대한 결론이었다. 비록 개인적 양심으로 독립 운동에 대한 소극적 지원이 없었던 건 아니나 그것 역시 자신에게 해를 부르지 않는 한도였고 적극적인 의지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자신에게 독립 자금을 빌리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에게 독립 운동 한답시고 외국에 나가 편하게 운동하면서 국내에 있는 자기한테 돈 빌려 달라고 하는건 상당히 무책임한 처사라고 일갈한 사람이 윤치호였다. 윤치호의 이런 행동은 그 당시 국제 정세에 대한 예리한 관측에서 나오는 것이기도 했다. 실례로 3.1 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던 [[우드로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에 대해 한국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제일 먼저 예측했던 사람도 윤치호였고 예상이 맞은 것도 윤치호였다. 대다수 독립 운동가들은 순진하게도 저 말을 진심으로 믿었다. 또한 윤치호는 사람들에 대한 탁월한 관찰력 또한 가지고 있었다.[* 독립 운동가 간의 분열을 정확히 예측했다. [[http://www.hani.co.kr/section-001065000/2004/04/001065000200404122208246.html|#]]을 참고하자. 그런데 해당 기사 자료는 시기나 앞뒤 정황이 맞지가 않다. 이 사료는 1933년 10월 4일자 [[윤치호 일기]]에 있는 내용인데, 당시 안창호는 대전 형무소에 수감 중이었고, 여운형은 신문사 사장에 있을 때였다. 실제로 둘 다 윤치호에게 찾아가 상의를 했는지에 대해서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윤치호가 보는 '지역 감정' 부분은 맞는 얘기...] 윤치호의 이같은 행동은 식민지 조선의 장래에 대한 냉소와 체념이 뒤엉켜져 소극적 저항으로 일관하다가 나중에는 '나약한 지식인'으로 돌아서게 되었다. >[[한반도|조선]]은 [[일본 제국|일본]]의 생명선이며, 군사적 힘으로 무리하게 강요하지 않는 한, 후자(일본)는 전자(조선)를 내놓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과 함께 전쟁을 치르고 있는 '''[[미국]] 혹은 [[영국]]이 불쌍하고 작은 조선을 독립시키기 위해서 [[태평양 전쟁|일본과 전쟁]]을 하려고 하겠는가? 상상할 수조차 없다!''' >----- >- [[윤치호 일기]] 1919년 1월 28일. 하지만 일제강점기가 지속되면서 이러한 합리주의도 점점 마비되어 갔는데 당장 적백 내전 이후 험악해져 가는 미국과 일본의 구도에서 일본 측을 부당한 피해자 운운한 것[* [[태평양 전쟁]] 발발 과정을 보면 알겠지만 오히려 뻔뻔하게 군 것은 일본이다.]은 물론 한국의 독립 가능성을 거의 없는 것으로 보았고 미국의 국력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는 커다란 우를 저지르게 되었다[* 윤치호가 미국에 대해 전혀 몰랐던 것도 아니고 직접 미국에 가서 유학까지 했으면서 이런 우를 저질렀다는 것은 그의 어리석고 편협한 시각을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다. 비슷한 예로 [[이슬람 극단주의]]의 사상적 아버지인 [[사이드 쿠틉]]도 미국에 유학을 갔다가 겪은 인종차별로 인해 오히려 미국을 증오하고 서구권을 모조리 멸망시켜야 한다는 [[이슬람 극단주의]]로 치닫게 된다.]. 이는 그가 어리석다고 비웃던 조선 민중들 사이에서 번진 [[https://cafe.daum.net/historywar/2LjP/1406|전쟁에서 일본은 지고 조선은 독립한다]]는 유언비어가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전쟁이 끝난 이후 현실화가 된 것]]과 더욱 대비된다. 게다가 그의 '합리주의'는 '이상적인 제국주의 국가 일본'이라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론상의 국가를 억지로 현실에 끼어맞춘 것이라 그나마 일본이 겉으로나마 합리적인 행세를 하던 문화 통치기 초반까지야 합리적으로 돌아가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본격적으로 파시즘이 대두하고 추축국과 연합국의 대결 구도로 돌아가면서 그가 주장한 국제 질서 모델은 완전히 붕괴했음에도 여전히 과거 모델에 집착해 일기에서 '''"왜 일본같은 훌륭한 나라가 히틀러 같은 건달이랑 손을 잡는 거지?", "무솔리니는 대단한 지도자라고 생각했는데 히틀러 같은 건달에게 나라를 내주다니 실망이다."'''라는 뻘글을 쓰기에 이른다. 윤치호의 일기를 보면 초반부에는 제국주의나 일부 일본을 비판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40년대 이후 부터는 자신이 비난하던 제국주의와 자신이 찬양하던 일본의 모습을 결합시키는 모습이 보이는데 이는 그가 백인종에게 가지고 있던 깊은 원한과 세상에 대한 회의주의가 결합된 것으로 보여진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