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윤설미 (문단 편집) == 탈북 과정 == 어릴 때는 공산당 간부 아버지 밑에서 잘 살았으며 북한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 없이 살았다고 한다[* 윤설미 본인의 증언에 따르면 그녀의 아버지는 남한의 실상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윤설미 본인이 [[한국 드라마]]를 시청하면서 갖게 된 의구심을 '남한은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로 상당한 발전된 나라이며 세계 10대 무역국에 속한 곳'이란 한마디로 정리시켜 줬다고 한다. 그리고 북한에 대해서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라고 할 정도로 북한의 실체에 대해서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고 한다. 그녀의 어머니가 아버지의 입을 막으며 함구했을 정도였다고.]. [[김정은]]의 부인 [[리설주]]가 다닌 평양의 [[금성학원]] 출신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간암으로 쓰러져 형편이 어려워지자 돈을 마련하기 위해 장사와 [[아코디언]] 개인교습을 하면서 북한 사회에 대한 사상이 변하기 시작했다. [[가을동화]], [[내 이름은 김삼순]], [[천국의 계단]], [[장군의 아들]], [[올인(드라마)|올인]] 등 몰래몰래 보던 [[한국 드라마]]도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다만 일반 북한 주민들이 그렇듯 북한 당국의 세뇌교육의 영향으로 '미화된 남조선(한국)'으로 알고 별로 감흥을 얻진 못했다고 증언했다. 그러다가 드라마에 등장하는 야외씬, 공항씬등으로 인해 "아니, 다른 건 그렇다쳐도, 저런 것까지 세트로 만든다는 건 어딘가 이상하다. 저것들도 세트장이라면 남조선이 얼마나 잘산다는 말인가?"란 의구심으로 인해 궁금해하다 아버지에게 물어봐서 실상을 알게 된 것이라고 한다.] 아버지의 [[간암]] 치료비를 어떻게 마련할까 걱정하던 중, [[중국]]에서 단시간에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소리에 2006년 [[탈북]]하여 중국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돈을 벌 수 있다는 탈북 브로커의 꼬드김은 사실 [[인신매매]]였으며, 브로커에게 속아서 억지로 생판 모르고 언어도 안 통하는 [[한족]] [[중국인]] 남성과 결혼해야 했다. 다행히 중국인 시부모님과 중국인 남편은 윤설미에게 호의적이었고, 윤설미도 자신에게 잘해주는 시가와 남편에게 마음을 열고 아팠던 시아버지를 극진히 모셨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중국인 남편이 사망한 이후에도 중국 시부모님과 연락하고 있으며 사이가 매우 좋다고 밝혔다. 참고로 겁에 질린 윤설미가 시어른께 한 첫말은 '사랑합니다'였다. 그렇게 딸을 출산하고 중국에서 잘 지내던 것도 잠시, 마을 주민의 신고로 인해 [[중국 공안]]에 잡혀서 딸이 생후 1개월이 되었을 때 [[북송]]되었다. [[전거리교화소]]에서 5년간 복역하면서 비참한 북한 인권의 현실을 절감하여 한국행을 결심했다고 한다. 교화소에서 수감 중 나무를 옮기다가 꼬리뼈가 박살 나는 사고를 겪었다. 꼬리뼈 수술을 받았는데, 의료시설이 열악해 [[마취]] 없이 맨 정신으로 밑 척추 3개를 절단했다고 한다. 5년의 교화소 생활을 보내고 출소한 날 바로 탈북을 시도했는데, 강을 넘어 중국 시가로 가던 길에 또 잡혀 2번째로 [[북송]]되었다. 강을 넘은지 3시간 만에 다시 다시 잡힌 거라고. 다만 세계적으로 [[북한 인권]]을 문제 삼아서인지 전거리 교화소에는 눈치가 보여 예전보다는 어느 정도 인권이 개선된 걸 경험했다고 한다. 다행히도 보위원이던 대학 동기의 도움과 뇌물로 풀려나 간신히 중국인 남편과 딸에게 돌아갔다. 이후 중국인 남편은 한국행을 희망하는 윤설미를 위해서 직접 탈북 브로커를 만나서, 어린 친척의 중학생 신분증[* [[베트남]]까지 버스를 타고 가려면 [[중국 공안]]의 검사를 통과하기 위한 신분증이 필요했는데, 왜소했던 윤설미의 체구와 중국의 미성년자 신분증엔 증명사진이 없다는 점을 노린 것.]을 받아 윤설미를 [[베트남]]까지 데려다줬다고 한다. 당시 남편이 윤설미를 중학생처럼 보이기 위해 머리에 리본핀을 달아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2014년 윤설미는 한국에 도착했다. 그런데 남편이 윤설미를 [[베트남]]으로 데려다주고 약 3개월이 경과한 시점에서 안타깝게 중국인 남편은 만 32살의 나이에 [[뇌수막염]]으로 사망했다. 무사히 한국에 도착해서야 그 사실을 시부모님으로부터 전해들었다고 한다. [[하나원]]을 수료하고 1년 후 중국에서 태어난 만 8살 딸을 한국으로 데려왔다. 당시 중국 시부모님께 방학마다 손녀를 중국으로 보내겠다고 약속했으며, 현재도 매년 빠짐없이 약속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