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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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설미
Yun SeolMi


파일:윤설미아코디언.jpg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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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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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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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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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85년 (39세)
함경북도 나진시[1]
학력
금성학원 (중퇴)[2]
사범대 (졸업)[3]
명지대학교 (예술학부 / 졸업)
가족
남편[4]
슬하 2녀
링크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
2. 탈북 과정
3. 윤설미TV
4. 기타



1. 개요[편집]


대한민국방송인, 유튜버, 아코디언 연주가, 통일 교육 강사, 안보 교육 강사.

함경북도 라선시 출신의 북한이탈주민이다. 유튜브에서 윤설미TV를 운영한다. 채널A이제 만나러 갑니다에 고정 출연 경력이 있다.


2. 탈북 과정[편집]


어릴 때는 공산당 간부 아버지 밑에서 잘 살았으며 북한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 없이 살았다고 한다[5]. 김정은의 부인 리설주가 다닌 평양의 금성학원 출신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간암으로 쓰러져 형편이 어려워지자 돈을 마련하기 위해 장사와 아코디언 개인교습을 하면서 북한 사회에 대한 사상이 변하기 시작했다. 가을동화, 내 이름은 김삼순, 천국의 계단, 장군의 아들, 올인 등 몰래몰래 보던 한국 드라마도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6]

아버지의 간암 치료비를 어떻게 마련할까 걱정하던 중, 중국에서 단시간에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소리에 2006년 탈북하여 중국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돈을 벌 수 있다는 탈북 브로커의 꼬드김은 사실 인신매매였으며, 브로커에게 속아서 억지로 생판 모르고 언어도 안 통하는 한족 중국인 남성과 결혼해야 했다. 다행히 중국인 시부모님과 중국인 남편은 윤설미에게 호의적이었고, 윤설미도 자신에게 잘해주는 시가와 남편에게 마음을 열고 아팠던 시아버지를 극진히 모셨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중국인 남편이 사망한 이후에도 중국 시부모님과 연락하고 있으며 사이가 매우 좋다고 밝혔다. 참고로 겁에 질린 윤설미가 시어른께 한 첫말은 '사랑합니다'였다.

그렇게 딸을 출산하고 중국에서 잘 지내던 것도 잠시, 마을 주민의 신고로 인해 중국 공안에 잡혀서 딸이 생후 1개월이 되었을 때 북송되었다. 전거리교화소에서 5년간 복역하면서 비참한 북한 인권의 현실을 절감하여 한국행을 결심했다고 한다. 교화소에서 수감 중 나무를 옮기다가 꼬리뼈가 박살 나는 사고를 겪었다. 꼬리뼈 수술을 받았는데, 의료시설이 열악해 마취 없이 맨 정신으로 밑 척추 3개를 절단했다고 한다. 5년의 교화소 생활을 보내고 출소한 날 바로 탈북을 시도했는데, 강을 넘어 중국 시가로 가던 길에 또 잡혀 2번째로 북송되었다. 강을 넘은지 3시간 만에 다시 다시 잡힌 거라고. 다만 세계적으로 북한 인권을 문제 삼아서인지 전거리 교화소에는 눈치가 보여 예전보다는 어느 정도 인권이 개선된 걸 경험했다고 한다. 다행히도 보위원이던 대학 동기의 도움과 뇌물로 풀려나 간신히 중국인 남편과 딸에게 돌아갔다.

이후 중국인 남편은 한국행을 희망하는 윤설미를 위해서 직접 탈북 브로커를 만나서, 어린 친척의 중학생 신분증[7]을 받아 윤설미를 베트남까지 데려다줬다고 한다. 당시 남편이 윤설미를 중학생처럼 보이기 위해 머리에 리본핀을 달아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2014년 윤설미는 한국에 도착했다. 그런데 남편이 윤설미를 베트남으로 데려다주고 약 3개월이 경과한 시점에서 안타깝게 중국인 남편은 만 32살의 나이에 뇌수막염으로 사망했다. 무사히 한국에 도착해서야 그 사실을 시부모님으로부터 전해들었다고 한다.

하나원을 수료하고 1년 후 중국에서 태어난 만 8살 딸을 한국으로 데려왔다. 당시 중국 시부모님께 방학마다 손녀를 중국으로 보내겠다고 약속했으며, 현재도 매년 빠짐없이 약속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


3. 윤설미TV[편집]


처음에는 '윤설미와 손풍금' 이라는 이름으로 채널을 개설하였으나, '윤설미TV' 로 채널명을 변경하였다.

초반에는 아코디언 연주에 관련된 내용이 많았으나[8], 윤설미TV 로 변경한 이후에는 북한 이야기를 주제로 방송한다.

뛰어난 입담과 예능감으로 인기가 좋으며 특히 촌철살인 멘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뛰어난 편이다[9]. 아울러 이제 만나러 갑니다 동료인 신은하와 한수애 등과 더불어 합동방송을 하기도 하는데 만담 포맷으로 호응도를 높이기도 한다.


4. 기타[편집]


  • 사랑의 불시착에서 단역으로 출연했다. 5화에서 북한 열차 속 열차판매원 아코디언 연주자 역을 맡았다. #

  • 때때로 방송 중에 자기 키가 '메다 반' (1m 50cm) 라고 하는 경우도 많은데, 키가 크지 않다는 점을 강조할 때 이 표현을 사용한다. 다른 방송에서 155cm라고 밝히기도 했으나, 다시 자기 방송에서 실제 키는 153cm라고 언급했다.

  • 공개재판을 당해본 적이 있다고 한다.#

  • 약 2021년 1월 모임에서 만난 스카이대를 졸업한 동갑내기 남한 출신 남성과 재혼했으며 약 2021년 7월 차녀가 태어났다.

  • 생활력이 강하여 한국에서 내 집 장만을 했다. 실제로 코로나19 사태 이전까지는 아코디언 연주자로 지방 행사를 많이 돌아 다녔다고 한다.

  • 혓바닥 종합격투기 세치혀에 출연, 전거리교화소에 수감되었던 당시를 증언해 방청석과 출연진들을 경악시켰다. 결승에 까지 올랐으나 우승에는 실패.[10] 특히 수감 당시 봤던 한국 드라마를 수감자들에게 구연 동화식으로 재연한 것을 표현한 당시 상황을 연기한 것은 압권. 여기에 12살 당시 시장에서 있었던 공개처형 장면을 목격한 사실까지 이야기해 다시 한번 방청객과 출연진들을 충격과 공포에 빠트렸다.

  • 목소리 톤이 약간 새소리처럼 허스키하다. (일명 '시끄러운 수다쟁이' 타입) 남한에서 비슷한 톤을 가진 연예인이라면 깔깔마녀 역으로 유명한 코미디언 김성은정선희가 있다. 그 외 예전에 KBS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했던 크리스티나 콘팔로니에리 가톨릭대학교 겸임교수와도 비슷하게 말 끝에 성대를 살짝 긁는 발성 버릇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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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라선시.[2]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서 1년 재학 후 중퇴했다고 언급.[3] 북한에서 금성학원 중퇴 후 사범대를 나왔다.[4] 2013년 중국인 남편과 사별, 2021년 한국인 남편과 재혼하였다.[5] 윤설미 본인의 증언에 따르면 그녀의 아버지는 남한의 실상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윤설미 본인이 한국 드라마를 시청하면서 갖게 된 의구심을 '남한은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로 상당한 발전된 나라이며 세계 10대 무역국에 속한 곳'이란 한마디로 정리시켜 줬다고 한다. 그리고 북한에 대해서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라고 할 정도로 북한의 실체에 대해서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고 한다. 그녀의 어머니가 아버지의 입을 막으며 함구했을 정도였다고.[6] 다만 일반 북한 주민들이 그렇듯 북한 당국의 세뇌교육의 영향으로 '미화된 남조선(한국)'으로 알고 별로 감흥을 얻진 못했다고 증언했다. 그러다가 드라마에 등장하는 야외씬, 공항씬등으로 인해 "아니, 다른 건 그렇다쳐도, 저런 것까지 세트로 만든다는 건 어딘가 이상하다. 저것들도 세트장이라면 남조선이 얼마나 잘산다는 말인가?"란 의구심으로 인해 궁금해하다 아버지에게 물어봐서 실상을 알게 된 것이라고 한다.[7] 베트남까지 버스를 타고 가려면 중국 공안의 검사를 통과하기 위한 신분증이 필요했는데, 왜소했던 윤설미의 체구와 중국의 미성년자 신분증엔 증명사진이 없다는 점을 노린 것.[8] 현재는 모 초등학교 방과 후 부서에서 아코디언 교습을 진행 중이다.[9] 특히 북한의 열악하고 낙후된 도로사정을 설명하고 난 후 "세상이 살기 싫다, 장군님(김정은)이 짜증난다, 그러면 그냥 100km 밟으면 됩니다"라는 멘트를 친 적이 있다.[10] 이야기 도중 가장 흥미진진할 때 끊고 방청객들이 투표로 뒷 이야기를 더 듣고 싶은 쪽을 결정하는 것이 규칙인데, 윤설미는 결승에서 특이하게도 모든 이야기를 마치고 눌렀다. 결승썰은 딸에 관련된 이야기였는데, 자신이 이기면 뒷 이야기 대신 그 자리에 와있는 딸을 공개하기로 하였다. 패배 후 인터뷰에서 정작 딸 본인은 방송을 타고 싶지 않다고 했다는 것으로 보아, 결승에서 굳이 이기려 하기 보다는 딸 이야기만큼은 승부와 무관하게 끝까지 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