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위연 (문단 편집) ==== 부정 ==== 그의 성격 및 처세가 지적된다. 거만한 성격으로 주변과 매우 사이가 나빴다. 진수도 그가 반란할 뜻은 없었을거라고 변호해줬지만 성격과 처신 문제로 최후를 맞이한 것은 스스로 자초했다는 지적을 남겼으며, 그의 이런 면모는 제갈량과 비의, 위연 본인, 앙숙 양의 등의 기록에 버젓이 존재하고 있다. 특히 양의와는 틈만 나면 서로 다퉈대다보니 제갈량은 어느 쪽 편도 들지 않고 공정하게 중립을 지키며 둘이 크게 문제를 일으키지 못하도록 통제하면서 자기가 없을 때는 비의가 중재를 했고, 감척론이라는 글까지 지어 사이좋게 지내라고 타일렀지만 전혀 듣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어느 날에는 앙숙 양의와 말다툼이 격해지자 칼을 뽑아 겨눈 적이 있다. 둘의 당시 위치를 감안하면 제갈량이 주도한 회의에는 웬만하면 빠지지 않고 참여했을 테니 제갈량 앞에서 대놓고 이런 추태를 부렸다고 어렵지 않게 파악이 가능하다. 제갈량이 수틀린다고 동료에게 무기를 겨눈 위연이나 지지 않고 계속 개기며 어그로를 끌어대는 양의 둘 중 누구도 자기 후계자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상급자와 동료들 앞에서도 틈만 나면 다투는 이들이 신하들 중 으뜸 자리에 올라서기라도 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잘 알았을 테니 취한 판단이었고, 이는 결국 맞아떨어졌다.] 물론 그냥 성격 및 인간관계만 나쁘고 군인으로서 역할을 제갈량 사후에도 충실히 했다면 경력과 위치를 감안했을 때 계속 중역을 맡았을 것이다. 그러나 제갈량의 최종 명령을 거부, 동료 납치 구금 시도, 탈영, 거짓 상서로 국가 내부에 혼란 유도, 아군의 퇴로를 끊고 팀킬 시도 등은 반란을 일으키려고 했다는 이야기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만큼 위연은 돌이킬 수 없게 선을 넘어버렸다. 당연하지만 이런 행보를 보인 시점에서 적국에 투항을 하지 않았다지만 상기된 행보를 통해 내란을 일으키려고 했다는 점에서 그가 결코 충의지사라고는 할 수 없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한중으로 달아나려고 했다는 점도 어떻게든 그곳에 가 끝까지 물고늘어지겠다는 의도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그리고 위연이 한중에 도망치는데 성공했다면 사태는 더욱 커져서 이 상황을 알아차린 위나라가 개입하는 최악의 상황까지 나올지도 몰랐다.] 비의가 오나라 사신으로 갔을 때 손권과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는데, 이때 손권은 위연과 양의를 나란히 디스한 적이 있다. > 양의와 위연은 소치는 목동이어서 일찍이 당시 해야할 일에 있어서 닭이 울고 개가 짖는 정도의 보탬을 주었지만(=즉 활동이 미비했다는 말) 그들에게 일을 맡겼으니 가볍게 취급할 수 없다. 만약 어느날에 제갈량이 없게 되면 반드시 화란이 일어날 것인데, 제군은 심란하기만 하여 이런 일에서 생기는 염려를 막을 줄도 모르는데 어찌 자손에게까지 끼칠 꾀를 내겠는가? 비의는 이렇게 대답했다. > 양의와 위연이 협조를 하지 못하는 것은 사사로운 분노로 인한것 뿐이고 경포나 한신처럼 황제를 어렵게 할 마음은 없습니다. 지금은 바야흐로 강적을 소제하고 화하를 하나로 하는데 있어서 공로는 재주를 가지고 이룩하고, 업적은 재주로 말미암아서 넓어지는 것이니 만약 이 사람들을 버리고 맡기지 않는다면 그들의 후환을 막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풍파를 막으려다가 거꾸로 배를 못 쓰게 하는 것과 같으니 좋은 계책이 아닙니다. 쉽게 말해 손권이 '둘 다 성격이 개판인데 당장은 급해서 제갈량이 써먹고 있긴 한데 제갈량 없어지면 문제 생기지 않겠냐?'고 묻고, 비의는 '두 사람의 문제는 단순 성격 탓일 뿐 당장의 강적(위나라)을 상대하는데 도움이 되는데 어찌 안 쓰겠나'라고 반박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둘 다 맞는 말이었다. 당장은 저 둘의 재능이 중히 쓰이긴 했고, 제갈량이 없어지자 정말로 순식간에 둘 다 차례로 문제를 일으키며 피해를 입히고 자멸해버린 것.[* 이 대화에서 손권은 물론이고 비의도 그래도 능력은 있다고 말해줄지언정 인성 문제에 대해서는 인정하는 태도를 보여 위연과 양의의 인성이 얼마나 형편없는지에 대해 뜻이 같다는 점이다.] 사실 둘의 대체제는 있었으나 그 둘보다 일찍 죽은 게 문제였다. 양의 대신 마량을 쓰면 되었지만 마량은 이릉대전에서 전사해버렸고 위연 대신 조운을 쓰면 되었지만 조운은 나이가 너무 많아 저 시점에서는 이미 노환으로 사망해서 천수를 넘어가 버린 상황이었다.[* 비록 지휘관으로서 경력이 전무했던 조운이나 관장마황이 모두 세상을 떠난 이후 홀로 남은 1세대 군부 최고참이자 모범적인 군인인 그가 제갈량을 도와 중심을 잡아줬다면 제 아무리 위연과 양의라도 대놓고 내부에서 트롤링을 할 엄두를 못냈을 거다.] [[양희]]는 『계한보신찬』에서 "문장[* 文長, 위연의 자이다.]은 강직하고 용맹하며, 어려움에 임하여 명령을 받아 외적을 막아 싸우고 국경을 지켰다. 그러나 협력하지도 않았고, 조화를 이루지도 않았으며, 절개를 잊고 반란의 뜻을 언급했다. 그래서 최후의 행동은 증오를 받았고, 최초의 공적은 아낌을 받았는데, 이것은 실로 그의 본성이었다."라고 언급했으며, [[호삼성]]은 『자치통감』에 음주를 달면서 "위연이 비록 반역할 뜻을 갖고 있지는 않았어도 그에게 보정(輔政)을 맡겼다면 촉한의 멸망을 재촉했을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결국 위연은 군인으로서 능력은 우수했을지언정 치명적인 성격적 단점이 원인이 되어 스스로 화를 자초한 장단점이 매우 극명하게 드러난 인물이다. 위연의 기록이 적힌 유팽요이유위양전(劉彭廖李劉魏楊傳)에 포함된 인물들은 각자 역할 및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잘못된 처신이나 성격 문제 등으로 인해 화를 자초하여 죽거나 쓸쓸한 말로를 보낸 인물들을 엮어놓았다는 특징이 있다. 또한 위연과 같은 이유로 최후를 맞이한 경우는 역사상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으니 조직활동은 개인의 능력과 지위만 아니라 인망도 중요하다는 사례 중 하나다.[* 위연과 대비된 인물이 바로 그의 상관이던 제갈량으로 그는 마음을 잘못 먹으면 아예 나라를 뒤집을만한 자리에 있었지만 2대를 섬기면서도 끝까지 다른 마음을 품지 않고 충성하면서도 늘 모범적으로 처신하여 사후에도 존경을 받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