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원로원 (문단 편집) ==== 상원의 등장 ==== 앞서 언급한 콘스탄티노스 9세는 [[11세기]] 중반에 들어 원로원에 상당한 변화를 꾀하였다. 이미 학제개편으로 좀 더 다양한 계층간 이동이 가능하도록 환경을 조성하려 했던 그는 원로원 의원 자격을 대폭 떨어뜨려 주요한 [[상인]], [[공장장]] 등 평민이라고 할 수 있는 일반 시민의 상층부에게까지 문호를 열게 되었다. 그리하여 원로원의 대표성은 상당히 제고되었으며 원로원과 시민대중의 거리를 좁혔다. 물론 비슷한 시기에 로마제국은 기존의 원로원을 초월하는 또 하나의 좀 더 중심적인 의사결정기구를 만들게 된다. 이 기구는 보통 기록에서 상원(Prote-Sygkletos)으로 불리며 일반적인 원로원(Sygkletos)과 구분된다. 이 기구는 어느 정도 품계가 있어야 참여할 수 있는 원로원과 달리 황제가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참석하여 황제와 보다 직접적으로 [[정책]]을 논의할 수 있었다. 이 '상원'은 이후 오랫동안 존속하여 [[14세기]] 이후에도 살아남았다. [[영어권]]에서는 Privy Council 등의 유사한 단어로 번역되어 있다. 이러한 체제에서 제국의 정책논의는 다음과 같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황제는 원로원을 대상으로 현재의 상황과 정책의 필요성을 강변한다. 원로원은 이를 만장일치로 지지하는 정통성을 부여하는 형식을 담보한다. [[고대]]-[[중세]]의 정치에서는 이러한 형식 역시 시민대중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사회복리에 대한 정당성을 보증할 수 있는 증거로 여겨졌다. 황제는 직접적으로 상원 구성원들의 자문과 논의를 접한 끝에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게 된다. 그 이후의 정책 집행은 여러 부서(Logothesion)로 이루어진 비서국(Sekreton, [[조선]]을 기준으로 하자면 [[승정원]]과 유사한 기구) 휘하의 관료들이 담당하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