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요압 (문단 편집) == 압살롬의 반란 == 다윗의 장남인 암논이 배다른 누이인 다말을 강간하고 이에 대한 보복으로 다말의 친오빠인 [[압살롬]]이 암논을 살해한 뒤 외갓집인 그술로 도주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다윗은 암논의 잘못도 있는지라 압살롬의 처지를 이해하면서도 살인자의 몸인 압살롬을 쉽게 용서하기를 주저하고 있었다. 이때 대신 총대를 멘 것이 바로 요압이었다. 그는 드고아에서 여인 하나를 불러다 과부처럼 위장시키고 다윗에게 보내 다음과 같이 말하게 했다. >'''저에게는 아들이 둘 있는데 둘이서 서로 싸우다 한 아들이 다른 아들을 그만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살인자인 아들을 죽이려 하는데 그 아들마저 없어지면 남은 아들마저 사라지니 이를 어찌하련지요?''' 이에 다윗은 여인의 아들을 죽이지 못하게 하겠다는 명령을 내릴 것을 약조하였다. 이에 여인이 감사를 표하면서 "그런데 왕께서는 그렇게 자비로우시면서 왜 내쫓긴 아들은 집으로 들여보내지 않으시는지요?"라고 덧붙이자, 다윗은 이 여인이 요압이 보낸 사람이라는 것을 눈치채고 요압을 불러와 압살롬을 데려오게 한다. 그러나 다윗은 압살롬이 자신을 만나는 것은 허락하지 않았는데 아마 근신하고 자숙하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하여 압살롬은 귀국하고서도 2년 동안이나 부왕을 접견할 자격을 허락받지 못한 채 지내다가, 다시 한 번 요압으로 하여금 부왕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려고 했다. 하지만 여러 차례 불러도 요압이 응하지 않자 압살롬은 요압의 보리밭에다 불을 질러버린다. 이에 요압이 압살롬을 찾아가 따졌으나, 압살롬은 되려 "이 따위로 푸대접을 할 거면 외갓집에서 잘 살던 나를 뭣 하러 돌아오게 했소?" 하고 강짜를 부리며 적반하장으로 따졌다. 요압은 화가 났지만 결국 다윗에게 잘 얘기를 해서 압살롬과의 관계를 회복하도록 일조한다 그가 이렇게까지 하면서 다윗과 압살롬의 관계를 중재하려고 했던 이유는 장자였던 암논이 사망한 현 상황에서 압살롬이 유력한 제1왕위 계승자였고, 그 왕위계승자가 자기 외가가 있는 외국으로 도피한 것을 빌미로 외국의 외척세력이 압살롬을 끼고 간섭해올 여지를 방지하려고 했기 때문이며, 국왕과 왕위계승자 간의 불화 역시 외척세력의 간섭을 최대한 억제하려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이 시기부터 이스라엘 내부의 반 다윗 세력이 고개를 들기 시작하였기 때문에 이들과 압살롬이 결탁하는 것을 최대한 방지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요압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압살롬은 기어이 아히도벨[* 다윗의 모사였으나 그를 배신하고 압살롬 편으로 전향했다. 사실 그는 밧세바의 외조부로서, 다윗이 외손녀를 강제로 취한 일에 앙심을 품고 있었다.]을 비롯한 반 다윗 세력들과 결탁하여 대대적인 반란을 일으켰고 다윗 왕은 예루살렘을 버리고 반대파들의 위협 속에서 마하나임으로 도주하는 초유의 사태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다윗이 예루살렘에 심어두었던 이중첩자인 후새의 계략으로 군대를 모을 시간을 벌 수 있었고, 다윗에게 충성을 맹세한 근왕군이 마하나임에 집결했다. 다윗은 요압과 아비새, 잇대로 하여금 군을 지휘하게 하여 반란군을 토벌할 것을 명함과 동시에 수괴인 압살롬을 죽이지 말 것을 명령한다. 요압은 군을 이끌고 에브라임 수풀에서 압살롬의 반란군과 싸워 2만명을 도륙냈고, 압살롬은 도주하다 상수리나무 가지에 머리가 걸려 매달리는 추태를 보이게 된다. 이를 목격한 병졸 한 사람이 즉각 요압에게 보고하자 요압은 그를 죽였다면 큰 상을 받았을텐데 왜 안죽였냐며 문책하고는[* 여기에서 그 병졸이 요압에게 대답한 말이 걸작이다. "은 천 개를 받는대도 안 할 겁니다. 왕이 압살롬을 해하지 말라고 한데다가, 만약 '''내가 죽였더라면 당신(요압)도 나를 적대시할 게 뻔한데요?'''" 이 대답에서 요압의 성격이 잘 드러난다. 이 병졸은 '''만약 자신이 압살롬을 죽였다면 그 공은 자신의 몫으로 돌아가겠지만 그 근본은 다윗의 부탁을 어기고 왕의 아들을 죽인 것인데다가, 압살롬을 죽였을 경우에 요압이 책임 회피용으로 자신을 내세워 다윗으로부터 불이익을 당하게 만들 거라는 걸 눈치챈 것이다.''' 요압의 속셈을 간파한데다가 지위가 낮음에도 대장군 요압 앞에다 대놓고 독설하는 걸 보면 요압 휘하에서 오랫동안 지내본, 지금으로 치면 [[원사(계급)|원사]]급의 병졸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손에 단창 셋을 쥐고 가서 '''압살롬의 심장을 찌른 다음 부하 열 명과 함께 압살롬을 에워싼 채로 죽였다.'''[* 압살롬이 암논을 죽인 일로 다윗의 눈 밖에 났는데, 상술했듯 요압이 다윗 왕과 압살롬 왕자 사이에서 중재를 잘 해서 그 관계가 어느정도 회복되었다. 그랬는데 결국 반란을 일으켰으니, 요압 입장에서는 압살롬에게 배신감을 느꼈을 가능성이 있고, 또 과거에 압살롬을 두둔했던 일로 압살롬의 반란이 진압된 이후 과거 압살롬과 교류했던 자신의 정치적 입지가 곤란해질 것을 염려해 어명을 어기면서까지 압살롬을 죽여서 과잉 충성(물론, 왕의 명을 직접 거역하는 만큼 다윗 왕 본인에게는 충성으로 보이지 않겠지만, 적어도 대외적으로 반란의 수괴를 처단한 다윗 왕의 충신이라는 이미지를 공고히 할 수 있다)을 보이려 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요압의 권력지향적인 모습을 본다면 단순히 압살롬에 대한 개인적인 악감정뿐만 아니라, 이런 정치적 계산이 깔린 과잉충성이었을 것이다.] 압살롬을 죽인 후, 요압이 수풀 가운데 큰 구멍을 판 다음 시체를 던진 후 그 위에다 돌무더기를 쌓자 이를 본 반란군은 기세가 꺾여 각자 도주한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다윗이 압살롬의 죽음을 애도하며 크게 통곡하자 요압은 다윗에게로 가서 '오늘 모든 백성들이 왕을 위해서 싸웠는데 왕이 반란군의 수괴의 이름을 부르며 슬퍼하고 있으면 싸워 이긴 백성들[* 이 날 전사자는 진영에 관계없이 모두 2만명이라고 기록된다. 약 한국 육군 2개 사단의 인원이다.]은 뭐가 됩니까?'라고 간언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을 친히 위로하길 권한다. 다윗은 요압의 말을 따라 반란군 토벌에 공을 세운 장병들을 치하하고 한때 반란군에 가담했던 이들을 용서하는 유화책을 펼치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요압은 군대 사령관의 직위를 박탈하고 압살롬의 군대 사령관이었던 아마사[* 다윗의 또다른 누이인 아비가일의 아들로 요압과는 이종사촌 관계이다.]를 기용해버린다. 이는 다윗이 자신의 명을 어기고 자기 자식마저 죽인 요압과의 사이가 더욱 멀어진 것을 의미함과 동시에, 너무 커져버린 요압의 권력을 견제하기 위한 다윗이 할 수 있는 특단의 조치였을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