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지랖 (문단 편집) ==== 인간의 본성 ==== 'TAA 결핍증세'에 대한 연구[* [[https://www.unc.edu/~fbaum/teaching/articles/jpsp-1992-Ditto.pdf|Ditto and Lopez, 1992]] ]를 통해, 사람들이 '어렵거나 성가신 일을 하라는 조언'은 자신의 건강에 매우 중요하다고 해도 거부함이 드러났다.[* TAA 결핍증세는 이 심리학 실험을 위해 만들어낸 가공의 질병이다. 학생들에게 TAA 결핍 증세가 얼마나 심각한 질병인지 영상을 보여주고, TAA 결핍 여부를 검사받고 싶으면 구강 내부를 채취하면 된다고 했다. 절반의 학생에게는 TAA 결핍 진단을 받으면 2주간 약을 먹어 치료할 수 있다고 하고, 나머지 절반에게는 TAA 결핍은 평생 약을 복용하는 수밖에 치료법이 없다고 설명하였다. 2주간 약을 먹으면 치료받을 수 있다는 설명을 들은 학생들은 52%가 TAA 결핍 검사에 동의하였고, 평생 약을 먹어야 살 수 있다는 말을 들은 학생들은 21%만 검사에 동의하였다.] ~~21% vs. 79%로 인구를 나눌 수 있다.~~ TAA 결핍증세에 대한 실험은 그나마 실험 참가자들을 속일 만한 영상과 같은 증거를 가지고 시행되었다. 현실에서의 문제는 정확한 증명을 하기 힘들기 때문에 TAA 결핍증세보다 더 설득하기 힘들다. 삶에서 부딪히는 대부분의 문제[* 연애, 결혼, 이직, 인간관계, 사내 정치, 창업, ...]는 틀려도 틀린 티가 나지 않고 맞아도 맞은 티가 나지 않는다. [[꼰대]]나 [[나일리지]]나 아집과 교만 등의 원인으로 남의 이야기는 무시해버리고 자신만 옳다는 생각이 강한 사람들도 있다. 시기심 때문에 잘 하고 있는 타인의 발목을 잡으면서 '실력은 있을 지 몰라도 [[잘난 척]] 해서 밥맛'이라고 덮어씌우는 사람들도 있다. 폭삭 망하기 직전이라 허우적거리고 있는 시기가 아닌 한, 대부분의 사람은 칭찬과 아부를 듣고 싶어하지, 현 상황에서 발전시켜 줄 조언을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 중 상태가 많이 심한 사람들은 폭삭 망한 시기여도 칭찬과 아부만 듣고 싶어하고, 현 상황에서 발전시켜 줄 조언을 싫어한다. 참견을 싫어하는 구체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아래를 들 수 있다. *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다. 나는 나만의 가치관이 있는데 오지랖은 오지라퍼의 가치관대로 살라는 명령으로 들릴 수 있다. * 자유를 제약받는다: 참견은 대개 "이렇게 하라. 이렇게 하지 말고 저렇게 하라" 와 같은 식으로 행해진다. 따라서 청자는 아무리 참견이 일리가 있더라도 자신의 자유와 선택권이 화자에 의해 제약받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따라서 기분이 나빠진다. * 그 말이 맞다는 보장이 없다, 너는 그런 말할 자격이 없다: 사실, 누구의 조언이든 그 문제의 결정권자가 아닌 한, 오랜 기간동안 성공만 반복해 온 사람이 아닌 한, 그 말이 맞다는 보장은 없다. * 책임은 내가 진다. 남은 책임 지지 않는다. 책임 지지 않는 간섭으로 내가 손해를 보면 어쩔 것인가? 책임은 나 혼자 지게 된다. 그리고 만약 오지라퍼가 '''자신의 이익'''을 위한 방향으로 간섭한다면? 결국 자기 일은 자기가 해야 한다. * 도와주지도 않을 거면서 네거티브성 발언: 학점으로 인해 고민하고 있는데 "너가 공부를 열심히 안 하니까 그렇지."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경우. 사람은 자신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는 발언은 그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다. * 자신의 행복의 기준이 참견을 안 듣는 것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자기가 싫어하는 일을 꾸역꾸역 하고 있지만 어느 정도 참을 수 있다.(공부,일,결혼 등) 그러나 그런 거에 대해 "너가 하는 건 별것도 아냐. 그것도 못 참냐?"나[* 이런 발언은 상대방의 노력을 순식간에 헛고생 내지 무의미한 일로 비하하는 발언이기 때문에 당연히 오지랖이 될 수 밖에 없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상대방한테 말해도 욕 먹을 판에 싫어하는데도 꾸역꾸역 참고 일하는 사람한테 이런 말을 하니 당연히 오지라퍼라는 말을 들을 수밖에...] "너 인생에서 하고 싶은 일만 할 수는 없는 거야. 젊어서 고생도 사서 한다잖아. 힘들더라도 남 탓하지 말고 노력을 하란 말야"[* 하지만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은 위로의 의미지 저런 식으로 꼰대짓을 하라고 나온 말이 아니다. 게다가, 이런 경우는 말로는 노력을 하라고 하면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노력해야하는지는 절대 알려주지 않는다. 자기도 어떻게 해야할지는 모르니까!!] 이러면 차라리 자신이 싫어하는 일만 하고 사는 게 더 나을 정도로 그 말에 대해 반감을 갖는다. 그렇다고 자기가 싫어하는 일이 좋아진 게 아니라 '그딴 말 듣는 게 더 싫어'나 '그럼 너가 해주든가?'라는 생각이 들고 그런 말 때문에 싫어하는 일이 더 싫어졌다고 생각하게 된다. * 인생이란 게 티가 절대 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책임이란 걸 생각해보자. 책임은 누구나 지기 싫어한다. 그렇지만 무조건 나쁜 거라고는 보지 않는다(그만큼 능력이 된다고 자찬할 수 있으니깐). 결국 자발적인 책임이라면 싫어도 회피하지는 않는다. 다만 문제는 자신이 원하지도 않는 책임이 있다. 이런 건 정말 하기 싫다. 그렇지만 아무도 이런 책임을 부추기지 않으면 어느 정도는 한다. 하지만 현실은 책임을 부추긴다. 어른이 되면 자유도 늘지만 책임도 는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경제적 자유는 늘어나지만, 사회적, 도의적인 책임도 같이 늘어난다. 어른이 되면 자기 스스로 돈을 벌고그 돈을 소비하는 만큼 경제적인 간섭을 받지 않아 경제적 자유는 늘게 되지만, 동시에 '그 나이 먹고 아직도 저런 짓이나 하나?', '아직도 이런 것 하나도 못해서 일일히 챙겨줘야 하나?' 는 식의 비난을 듣게 된다. 단 한 번의 실수만으로도!!! 그 때문에 어른들이 천진난만한 아이들을 보고 '저 나이때가 제일 좋다.' 라는 말을 하는 것.]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까지 책임을 안 진것도 아니고 지금이 안 힘들고 여유롭기만 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어른은 책임이란 말을 한번만 듣는 것도 짜증난데 계속 들으면 ''아니 그 소리 안 듣고 책임지는 게 더 편해!''라고 생각하게 된다. ''힘들 때 위로나 동경을 받고 싶어하지 앞으론 책임도 많으니깐 자유따윈 기대하지마''란 소리를 듣고 싶은 건 아니란 말이다. 설사 그런 소리를 안 들었으면 느끼지 못할 책임에 무게가 그 소리로 인해 상당히 무거워지고 분위기를 다운시킨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