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이라트 (문단 편집) == 계통 == 본래 오이라트(Oirad)는 삼림을 중심으로 한 채집경제를 영위하던 부족들의 집단으로 그 이름 역시 [[몽골어]]로 '''숲의 사람들'''이라는 의미였다. 한자 병음은 '''와라'''나 '''와라부'''였다. 이들은 점차 규모가 커지며 채집경제에서 유목경제로 전환했으나, 그 시기는 [[칭기즈 칸]]이 몽골 초원을 통일할 무렵이었으며, 오이라트는 이때 세력을 키우기 시작했다. 따라서 이들은 칭기즈 칸이 몽골을 통일하던 막바지에 칸에게 항복하면서 [[몽골 제국]]에 편입되었다. 오이라트를 몽골계라고 통칭하나 [[일 칸국]]의 재상이었던 라시드 앗 딘의 《집사》(集史)에서는 몽골화한 [[튀르크]]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언어학적으로 [[몽골어족]]이기에 엄밀히 말하면 튀르크화된 몽골족이라고 봐야 한다. 종족 계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언어이지만 문제는 《집사》에서 튀르크의 정의가 불명확하다는 것이다. 중앙아시아에 사는 튀르크인이었는지, 몽골 서부의 [[케레이트]], [[나이만]], [[메르키트]]를 위시한 튀르크계 유목민족이었는지는 현재 확정하기 어렵다. 오늘날의 언어는 몽골어의 방언에 속하는 오이라트어이다. [[알타이]] 산맥 동쪽이라는 절묘한 위치 덕에 동아시아사에 중요한 변수가 된 유목민족들이고, 아이러니하게도 넓은 의미에서는 몽골계 유목민 최후의 세력이면서도 역사적으로는 몽골 최대의 숙적이 되었다. 때문에 북원의 몽골인들은 이들을 '''카리 다이순'''(qari daisun)이라 불렀는데, 직역하면 '''외적'''(外敵)이었다. 즉, 몽골인들은 오이라트인들을 동족으로 보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는 [[여진족]]의 건주여진과 해서여진의 관계와 비슷하다.[* 둘 다 광의로는 여진족에 속하지만, 해서여진은 여진 통일 전까지 건주여진 최대의 적이었다.] 한편 세조 [[쿠빌라이]] 칸의 [[원나라]]에 반기를 들어 [[몽골 고원]]에서 독자적인 반란 세력을 구축했던 [[오고타이 칸국]]의 [[카이두]]가 오이라트와 관계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위치부터가 오고타이 칸국의 위치와 겹치기 때문이다. 오이라트 가운데 일부는 [[훌라구]]가 [[페르시아]](이란)에 세운 나라인 [[일 칸국]]의 군대에 [[용병]]으로 복무했는데, [[1281년]] 10월 29일 [[시리아]] 서부 홈스에서 벌어진 제2차 홈스 전투에서 [[일 칸국]] 군대에 포함된 오이라트 부대가 [[이집트]] [[맘루크 왕조]] 군대의 왼쪽 측면을 공격해 큰 피해를 입힌 일이 있었다.[* 출처: 《신의전쟁》/ 도현신 지음/ 이다북스/ 303쪽] 오늘날 러시아 칼미키야 공화국의 '''칼미크인''', 몽골의 '''도르베트인''',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거주하는 '''토르구트인'''들이 오이라트의 직계 후손이라고 할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