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연총 (문단 편집) === [[고려의 여진 정벌]] === 여진 정벌 중인 예종 3년(1108)에는 골짜기에서 적습을 당해 포위되고 화살까지 맞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이른 일이 있다. [[척준경]]이라는 녹사가 구원하러 달려오고 원군이 여진군의 포위를 푼 끝에 윤관과 오연총 등이 모두 기적적으로 살아나올 수 있었다. [[동북 9성]]을 쌓고 4월에 협모동덕치원공신(協謀同德致遠功臣)으로 녹훈되며 상서좌복야 참지정사에 임명되고 웅주(雄州)에서 내구마 1필을 하사받는다. 둘은 9일 개선해 [[개경]]의 동쪽 교외에 이르러 대방후 왕보, 제안후 왕서의 마중을 받고, 연회에 참석한다. 이어 경령전에서 윤관과 함께 받았던 부월을 다시 바친 뒤 문덕전으로 자리를 옮겨 밤늦게까지 변방의 일을 의논한다. 얼마 뒤 23일에 여진족이 다시 웅주를 습격하는데, 이번에는 오연총이 홀로 부월을 받고 정예병 1만을 거느리고 구원에 나선다. 오연총은 [[문관(고려)|문관]], 김준, [[왕자지]]와 네 길로 나누어 웅주로 향한다. 여진족은 오음지령(烏音志嶺)과 사오령(沙烏嶺) 꼭대기에 진을 치고 기다리는데 오연총 등이 산을 올라가서 기습한다. 북쪽으로 도망가서 다시 진을 치고 싸우려는 여진족들을 마저 크게 이기니 적들은 목책을 불사르고 퇴각한다. 오연총은 웅주성에 들어가서 원군을 기다리지 않고 함부로 출전한 장수들을 차등 있게 벌하고 8월에 개경으로 개선한다. 오연총에게 양구진국공신 수사도 연영전대학사가 더해진다. 예종 4년(1109) 4월, 오연총은 동계병마부원수로 부임하기 위해 다시 개경을 떠나며 왕에게 하직인사를 올린다. 웅주성에서 패퇴했던 여진족들은 다시 부족들을 규합해 길주성을 포위했고, 병마부사 이관진과 병마판관 [[허재(고려)|허재]], [[김의원(고려)|김의원]] 등이 성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길주를 구원하기 위해 또 부월까지 직접 받고 나선 오연총은, 이번에는 패배의 쓴맛을 본다. 공험진까지 진군한 오연총은 도중에서 여진군과 마주쳐 전투를 벌였으나 크게 패했고 병사들은 모두 각 성으로 흩어진다. 여러 성들이 여진군에 함락되고 수많은 사상자들이 발생한다. 오연총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소식에 윤관까지 구원에 나선다. 오연총은 스스로를 탄핵하는 장계를 올린 뒤 윤관과 합류해, 여전히 성을 지키고 있는 길주성을 마지막으로 구원하러 나선다. 길주로 향하던 도중에 함주사록 유원서가 말을 타고 달려와서 여진족들이 강화를 청하고 있다고 전한다. 오연총과 윤관은 성으로 돌아가 이 사실을 조정에 알렸고, 논의가 오간 끝에 9성을 여진에 반환하는 조건으로 전쟁이 끝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