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연총 (문단 편집) === 서경 [[용덕궁|용언궁]] 창건 논란 === 한편 여진 정벌 준비에 나선 같은 시기에 서경에 궁궐을 세우는 것에 관해 논란이 있었다. 이 논란은 한 술사가 서경 용언(龍堰)에 궁궐을 세우고 자주 순행할 것을 예종에게 권한 일에서 시작한다. 술사의 참언이 그럴듯하다고 여긴 예종은 양부(중서문하성, 상서성)와 장령전(長齡殿) 수교원(讎校員)의 유신들에게 논의하게 하는데, 이들 모두 술사의 말이 옳다고 말한다. 그런데 지추밀원사 오연총이 홀로 반대 의사를 내비친다. >최근에 [[서울|남경]]의 공사가 막 끝났습니다. 백성은 피로하고 재물은 떨어졌습니다. 피로한 백성들을 동원해 새 궁궐을 세우는 것은 불가합니다. 그래도 순행하기를 바라신다면 옛 궁궐만한 것이 없습니다. >近者, 南京之役甫畢. 民勞財匱. 不可役疲民起新宮. 如欲巡御, 不如舊宮. 그러나 예종은 오연총에게 답하지 않는다. 예종 원년(1106) 9월 사천소감, 태사령 등을 서경에 보내 용언의 터를 살피게 한다. 이듬해 예종 2년(1107) 9월 평장사 최홍사가 서경 용언에 궁을 세우고 아예 그곳에서 조회를 받을 것을 제안한다. 오연총은 다시 세 가지 근거를 들며 최홍사의 의견에 반대한다. 1. 전례(문종의 실책) 문종은 현명한 왕이었지만 한 차례 술수에 빠져 서경에 [[좌우궁궐]]을 지은 일이 있었다. 문종은 새 궁궐을 축조한지 얼마 되지 않아 실수를 했음을 깨닫고 낭비한 것을 후회했고, 순행해봐도 효엄은 없을 것이라고 여겨 끝내 순행조차 하지 않았다. 1. 남경과의 비교 비슷한 이유로 남경을 새로 세운 지 7~8년이 다 됐는데도 길한 일이 일어난 바 없다. 1. 기존 궁궐의 존재 새로 궁궐을 지으려는 서경 용언 근처에는 이미 옛 궁궐이 있다. 그런데도 굳이 새 궁궐을 짓기 위해 민가를 헐면 백성들만 소란스럽게 하는 것이다. 예종은 최홍사의 주장을 따랐고 많은 사람들이 이를 애석하게 여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