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세훈/생애 (문단 편집) == 제16대 국회의원 == || {{{#!wiki style="margin: -4px -10px" [[파일:오세훈 16대 국회의원.jpg|width=100%]]}}} || || {{{#fff,#ffffff '''▲ 16대 국회의원 재임 시절 대정부질문에 나선 오세훈 의원'''}}}[* 참고로 뒤에 있는 사람은 [[이만섭]] 전 국회의장이다.] || 방송을 통한 인지도를 바탕으로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거대 양당인 [[한나라당]], [[새천년민주당]] 양쪽에서 영입 러브콜이 엄청났다고 한다. 결국 [[이회창]] 총재의 설득으로 [[한나라당]]의 공천을 받아[* 1년 전인 [[1999년 재보궐선거]] 당시 [[새천년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국민회의]]에 공천을 요청했다는 기사가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남아 있고, [[김정길(1945)|김정길]] 당시 정무수석이 증언했으나 오세훈 시장은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시 "내가 타진한 게 아니라 국민회의 측에서 제안했다"고 사실이 아님을 밝혔다. 당시 국민회의는 오세훈 시장을 비롯해 [[원희룡]] 전 제주도지사, [[고승덕]] 전 의원 등 현재 보수정당에 있는 '젊은 변호사'들을 당에 끌여들이려고 노력했으며, 창당 발기인 예비자 명부에 이름을 올리려 했으나 당사자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이외에도 오세훈은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강남구 을]]에 출마한 인권변호사 출신 [[통합민주당(1995년)|통합민주당]] [[홍성우(1938)|홍성우]] 후보의 자원봉사자로 활동한 적이 있다.] 서울특별시 [[강남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59.4%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당선 후에는 4년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으로 활동하였다.[* 환노위는 지역구 사업과 관련된 일을 하지 않아 예나 지금이나 비인기 상임위로 유명한데, 회상하기로는 환경 변호사 역할을 하며 쌓은 경험을 활용할 수 있는 좋은 곳이었다고 한다. 후술하듯 금권정치 문화에 학을 떼는 본인의 성격도 한 몫 한 듯.] [[남원정]]과 함께 소장 개혁파로 주목받았다. 이후 [[이명박]] 서울시장 입후보 당시 이명박 캠프 대변인을 지냈다. 이때의 경력과 훗날 서울시장으로서 이명박 시정의 정책을 상당수 계승한 것을 들어 범[[친이]]로 분류하기도 한다. 임기 중 오세훈 3법이라 불리는 [[정치자금법]], [[공직선거법]], [[정당법]] 개정안[* 당시 오세훈 3법을 같이 추진한 정치인이 [[정병국]] 전 [[문화체육관광부장관|문체부장관]]이었다. [[한나라당]]의 개혁의 상징이 오세훈 3법이었고, 이 때부터 [[오세훈]]과 [[남원정]]이 주목받기 시작했다.]을 내놓아 세간의 많은 주목을 받았다. 선거 공영제, 비례대표제 실시 및 지구당, 정당 후원회 폐지가 주된 내용이었다. 기존에는 후원의 상한액이 사실상 없다시피해 후원자에게 설설 기는 것이 기존의 정치 문화였는데 오세훈 3법으로 후원 상한액을 500만 원으로 설정해 이런 관행을 근절할 수 있었다.[* 미국의 경우는 로비가 합법화되어있으며, 특히 대선 기간에는 [[슈퍼팩]]이라는 거대 후원자 집단이 더욱 정치에 깊숙히 관여하는 금권 정치가 일상이다.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이 온갖 욕이란 욕은 다 얻어먹지만 의외로 선진적인 정치 문화를 가지게 된 것이다.] 이 중에서도 특히 기업의 정치자금 후원을 금지한 [[정치자금법]] 개정안은 여야를 막론하고 반발이 심했다. 하나 의외인 것은 통상적으로 보수인 [[한나라당]]보다 진보 성향인 [[새천년민주당]](이후 [[열린우리당]])에서 반발이 심했다는 것. [[한겨레]] 등 진보 성향 언론들은 개혁에 비교적 소극적이던 [[한나라당]]이 오히려 파격적인 안을 제시하는데도 진전이 안 된다며 민주당을 비판하기도 했다. 결국 선거를 앞두고 똥줄이 탄 [[열린우리당]]의 [[천정배]] 간사가 오세훈의 제안을 전격 수용하여 여야 합의로 개정되었다. 이때 열린우리당 [[정동영]] 대표는 선거 후 다시 해당 법안을 원상복구시킬 계획을 갖고 있었지만 국민 여론의 반발이 커 '오세훈 3법'은 현재까지도 유효하다. 이렇듯 강력한 정치개혁 법안 등을 통과시키며 '[[차떼기]]당'이라고까지 불렸던 한나라당의 이미지를 쇄신하다, 이후 '[[대한민국 제5공화국|5공]] 용퇴론'을 주장하며 당시로서는 획기적이게도 다음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였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55&aid=0000022073|#]] 공천을 위해 당론에 따라 상식과 괴리된 발언을 해야만 하고, 후원자 앞에서 을이 되는 것이 자존심이 상했다고 한다. 총선 불출마 선언 후 의정활동 잔여금 2,500만 원 중 1,500만 원은 환경 재단에, 1,000만 원은 서울 문화재단에 기부하였다. 그리고 국회의원 4년 간의 임기 기간 내내 시민단체에서 시상하는 '국정감사 우수의원'에 선정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