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영력제 (문단 편집) == 기타 == [[조선]]에서는 명나라 멸망 이후 [[조선중화주의]]에 입각하여 [[사대부]]들이 '''[[조선]]이야말로 [[명나라]]의 진정한 후계'''라고 생각하고 선대 왕조인 명나라의 역사를 정리하면서 이른바 [[남명]] 3황제[* [[홍광제]], [[융무제]], 영력제]를 정통으로 인정하는가 여부를 두고 의견 차이가 생겼다. 1644년 [[북경]]이 함락되고 [[숭정제]]가 자살함으로써 명나라는 멸망하였고 조선은 남명과 직접적 외교 관계를 수립한 일이 없으므로 '''우리가 알던 명나라는 [[숭정제]]까지'''라고 보는 입장과 남명 3황제가 어쨌든 명나라 황실의 혈통을 이어서 즉위하였고 영력제의 연호를 사용한 책력(달력)을 소지한 [[남명]] 사람들이 1667년 [[제주도]]에 표류함으로써[* 정확히는 영력제가 사망한 1662년 이후에도 영력 연호를 유지하던 [[동녕 왕국]] 사람들이었다.] 영력제의 책력이 조선에 전달되었으니 외교 관계가 수립된 것과 같으므로 '''명나라는 영력제까지'''라고 보는 입장으로 나뉘었다. 후대에도 반[[청나라|청]](反清) 사상을 유지하던 사대부들은 각각 의견에 따라 숭정 연호 또는 영력 연호를 각종 비공식 기록물에서 청나라 연호 대신 오랫동안 사용하였는데, 영력보다는 숭정 쪽이 주로 많이 쓰였다.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숭정, 문단=2)] 한편 [[동녕 왕국]]에서는 영력제가 사망한 후에도 1683년까지 영력 연호를 계속 사용하였다. 이 때문에 위에서 서술한 남명 사람들이 제주도에 표착한 사건에서 이들이 지닌 책력에는 영력제 사후의 연도인 '''영력 21년(1667)'''이 적혀 있었다. [[분류:명나라/황제]][[분류:망국의 군주]][[분류:1623년 출생]][[분류:1662년 사망]][[분류:베이징시 출신 인물]][[분류:질식사한 인물]][[분류:비정통 황제]]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