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연형묵 (문단 편집) == 생애 == [[함경북도]] [[경원군]]에서 1931년에 태어났으며, 체코프라하공대에서 유학한 북한에서 몇 안되는 관료 출신으로 국방위원회 위원 및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등 중요한 요직을 맡은 북한 고위급 인사이다. 1991년 대한민국 [[정원식]] 총리와 <[[남북기본합의서]]> 작성에 참여하여 우리 국민들에게도 알려져 있었다. 6.25 전쟁 뒤 귀국 후에 군수공장인 65호 공장 기사장으로 부임하게 되었으며 그러던 중 65호 공장장이 불량한 성분을 가져서 생산에 사보타주를 한다는 보고가 제출되었는데 연형묵이 불량품이 나온 건 사실이지만 의식적 태업이 아니라고 그를 옹호하는 의견을 제출하여 이에 [[김일성]]이 연형묵은 모함하지 않고 아첨하지 않는 진정한 간부라고 칭찬하면서 1962년 중앙위원회 중공업부 부부장으로 그를 발탁한다. 1967년 11월, 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었으며 1968년 중공업부 부장에 임명되었고 1969년 3월, 김태근 장의위원, 1970년 8월, 김원빈 장의위원을 지내고 있다. 1970년 11월, 5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에 선출되면서 중공업부 부장에 유임되었으며 1971년 12월, 중공업 담당 비서에 임명되면서 1972년 12월, 5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및 중앙인민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1973년 1월, 정준택 장의위원을 지내고 있다. 1974년 12월, 정치국 위원으로 보선되었으며 1975년 정무원 부총리에 임명되면서 1976년 5월, 홍원길 장의위원, 1976년 9월, 최용건 장의위원을 지내면서 1977년 12월, 6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었다. 김정일이 지휘한 3대혁명소조운동을 가담하면서 김정일 세습 과정을 기여하게 되었으며 그러나 1977년에 뭔가 실수를 저질러서[* 섹스 스캔들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한번 공장 지배인으로 하방되어 혁명화를 하기도 하였으나 1979년에 복귀하면서 1980년 10월, 6차 당대회에서 정치국 위원 및 중공업 담당 비서에 다시 선출되었다. 1982년 2월, 7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었으며 김일성 칠순기념 김일성훈장을 수여 받으면서 1985년 10월 1일, 당정연합회의 결정에 따라 정무원 제1부총리에 발탁되었으며 11월, 금속 및 기계공업위원회가 설치되면서 위원장도 겸하게 되었다. 1986년 11월, 8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되었으며 1986년 12월, 조선로동당 6기 12중전회에서 중공업 담당 비서에 다시 선출되면서 1982년 4월, 최현 장의위원, 1984년 3월 김일 장의위원, 1984년 4월, 오백룡 장의위원, 1988년 4월, 림춘추 장의위원을 지내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