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연남생 (문단 편집) == 가족 == 아버지는 그 유명한 막리지 연개소문. 어머니는 관작이나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으나 존재는 보인다. 남생의 아들 헌성 묘지명에 '조모(祖母)'란 인물이 등장한다. 682년에 사망했으며 당에서 죽었다. 헌성의 조모는 당연히 남생의 어머니, 연개소문의 아내를 의미한다. 이를 보아 남생은 당으로 도망치면서 어머니를 모시고 간 걸로 보인다. 아니면 고구려 패망 후 따로 모시고 왔던지. 형제론 동생 남건, 막내동생 남산이 있다. 삼형제가 조국 멸망 끝에 당에서 다시 만났는진 의문이다. 본인과 [[연남산]] 묘지명엔 형제 간에 다시 만났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다. 대신 본인 묘지명엔 남건을 죽이지 말고 살려달라고 당고종에게 부탁한 기록이 남아있다. 남생에겐 두 아들이 있었으니 분명히 아내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특이하게 남생, 헌성 묘지명에 일언반구도 없다. 사망년도라도 남은 남생의 어머니에 비해 어떠한 언급도 없는 걸 보면 일찍 죽은듯 싶다. 아들은 연헌충(淵獻忠), [[연헌성]]이 있다. 상술했다시피 연헌충은 동생들과 투쟁 중에 살해당했다. 손자는 연현은(淵玄隱), 연현정(淵玄靜), 연현일(淵玄逸)이 있다. 세 손자 모두 연헌성의 아들이다. 증손자는 연현은의 아들인 [[연비#s-4.2]]가 있다. '천비(泉毖) 묘지명'이 있다. [[보장왕]]의 외손자인 '왕위(王暐)'의 딸과 결혼했다. 가족사에서 특이한 점 중 하나로 연남생 삼형제는 돌림자(男)를 쓰고 있으며 연남생의 아들들인 연헌충과 연헌성 또한 돌림자(獻)를 쓰고 있다. 연남생의 손자대부터는 가문이 당나라에 정착하고 태어났으니 중국문화의 영향으로 돌림자를 썼다고 볼 여지가 있긴 한데 연남생 삼형제와 연남생의 아들들은 명백히 고구려 출신인데도 이름에 돌림자를 쓰고 있는 걸로 보아 삼국시대 말기부터 한국사 최초로 돌림자를 사용하기 시작했던 걸로 보인다. [[백제]]의 경우 [[의자왕]]의 손자인 [[부여문선]]과 [[부여문사]]가 돌림자(文)를 쓰고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