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엄기영 (문단 편집) === [[뉴스데스크]] 앵커 === ||<-5> [[MBC 뉴스데스크|[[파일:newsdesklogo_kor.png|width=150]][br]{{{#05104f,#b0bbfa '''평일 남성 앵커 '''}}}]] || || [[추성춘]]/[[차인태]] || → || {{{#ffffff '''{{{#white 엄기영}}}''' (1989~1996) }}} || → || [[이인용(1957)|이인용]] || || [[권재홍]] || → || {{{#ffffff '''{{{#white 엄기영}}}''' (2002~2008) }}} || → || [[김성수(1956)|김성수]] ||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1989년 엄기영 앵커.png|width=100%]]}}}||||{{{#!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1996년 엄기영 앵커.png|width=100%]]}}}|| || '''1989년 10월 9일, 첫 진행 모습 (38세)''' |||| '''1996년 11월 8일, 마지막 진행 모습 (45세)'''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2002년 엄기영 앵커.png|width=100%]]}}}||||{{{#!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image/117/2008/02/01/200802012112051110_1.jpg|width=100%]]}}} || || '''2002년 1월 1일, 복귀 후 첫 진행 모습 (50세)''' |||| '''2008년 2월 1일, 마지막 진행 모습 (56세)''' || ----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 >앵커 엄기영의 대표적인 멘션 ---- [[1988년]] [[8월]]에 편집부 차장으로 복귀했으며, 1989년 10월에 [[추성춘]] 전 앵커(논설위원)의 후임으로 만 38세의 나이로 뉴스데스크의 앵커로 발탁[* [[이득렬]] 앵커 이후 2년간 [[강성구]] 논설주간과 추성춘 논설위원이 뒤를 이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백지연]] 아나운서는 계속 자리를 지켰다. 엄기영이 뉴스데스크를 맡기 직전에는 [[차인태]] 아나운서가 임시 앵커였다.]된 이후 1996년 11월 8일까지 7년 가량의 긴 기간 동안 진행을 맡았다. 파트너 [[김은주(1965)|김은주]] 전 앵커와 함께 [[https://imnews.imbc.com/replay/1996/nwdesk/article/2006722_30711.html|앵커직에서 물러났다.]] 1989년 10월 ~ 1993년 4월은 편집1부 차장직을, 1993년 4월 ~ 1996년 10월까지는 앵커자리와 편집1부 부장직을 겸임했다. 다만 편집부장직은 이후에도 부국장 승진 이전까지 수행했다. 이후 1997년 4월에 보도국 부국장(정치부장 겸임)으로 승진했으며, 1998년에는 보도제작국장, 1999년에 보도국장으로 승진했고, 다시 2000년 3월[* 보도국장직을 김상균에게 넘겼다.]에 보도본부장(이사)으로 승진하여 보도본부장직을 역임하다가[* 그 사이 뉴스데스크는 이인용 앵커(1996년 11월 11일 ~2000년 10월 27일)와 권재홍 앵커(2000년 10월 30일 ~2001년 12월 31일)를 거쳤다.] 2002년 1월 1일부터 약 5년 2개월 만에 다시 앵커를 맡아 2008년 2월 1일까지 6년 가량 계속 뉴스데스크의 앵커 자리를 지켜왔다. 2002년을 끝으로 김종오 전 보도국장에게 보도본부장직을 넘기고 특임이사로 직책이 바뀌었다. 2003년 김중배 전 사장이 사퇴하자 전임 보도본부장이었던 고진과 더불어 사장 후보에 공모했으나 [[이긍희]] 대구MBC 사장에게 밀렸다. 따라서 뉴스데스크 앵커 직도 유임되었다. [[http://m.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54737|2007년부터는 아예 프리랜서로 전환되어 부사장 대우를 받았다.]][* MBC 이사의 임기는 6년을 초과할 수 없었기 때문에, 2000년에 이사로 승진한 그는 회사를 떠나야 했다. 그래서 MBC는 프리랜서가 된 그와 부사장급 대우로 계약을 맺은 것.] 이후 MBC 사장직에 재도전을 선언하면서 뉴스데스크 앵커직에서 물러났다. 2008년 2월 1일, 엄기영 앵커의 마지막 날엔 뉴스데스크에서 [[https://imnews.imbc.com/replay/2008/nwdesk/article/2123023_30609.html|고별 뉴스]]를 마련해줬다. [[최일구]] 앵커만큼은 아니지만 클로징 멘션으로 종종 이슈가 되는 말을 자주 했다. 최일구 앵커보다는 훈계적인 성격이 더 강하긴 했지만 이전 앵커들은 "뉴스 마치겠습니다"와 같은 간단한 멘션으로 끝마치다 보니 더 부각될 수밖에 없었다. 당시의 유명한 유행어가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였다. 이 말을 [[박명수]]를 비롯하여 여러 개그맨들이 엄기영 앵커의 성대모사를 할 때 사용했다. 하기야 엄기영 앵커가 앵커직에 있던 때(1989년 10월 ~ 1996년 11월)는 [[구포 무궁화호 열차 전복 사고]]를 시작으로 [[아시아나항공 733편 추락 사고]],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 [[성수대교 붕괴 사고]], [[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 폭발 사고]]에 이어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까지 터지는 등 대형 사건들이 워낙 많이 일어났던 때인지라 저런 말이 안 나오려야 안 나올 수 없을 것이다. 결국 계속되는 대형 참사에 [[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 폭발 사고]] 당시엔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후진국]]형 참사가 계속 돼야만 합니까?"''' 로 뉴스를 시작한 적이 있다.[* 당시 사고 현장에 파견된 기자는 훗날 정치인이 되는 [[정동영]]이다.] [[https://m.youtube.com/watch?v=CXrYsOX2wVM|#]] 골 때리는 것은 이로부터 불과 두 달이 지나고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일어났다. 그래도 복귀 후 첫 해인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때는 [[광주월드컵경기장]]에서 당시는 한국 축구 대표팀이 4강에 진출하는 좋은 성적을 낸 뉴스를 보도해서인지 여태까지에 비해서 늘 밝은 표정이었는데 대회 진행에 따라 한국 대표팀이 계속 승리하고 다음 단계로 올라갈수록 더욱 그런 표정을 지으며 뉴스를 보도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d05CRg3VEDQ|#]] 하지만 그의 앵커 생활에도 [[흑역사]]가 있는데, [[2007년]] [[7월 26일]], [[샘물교회 선교단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건]]에 관한 뉴스를 전해주다 화면이 특파원 쪽으로 넘어가기 전에 무의식적으로 웃음을 짓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이에 대해 [[네티즌]]들이 엄 앵커를 비판하고 옹호하는 싸움이 일어났는데, 결국 엄기영 전 앵커가 이에 대해 사과했다. [[http://blog.naver.com/rudrh007?Redirect=Log&logNo=120040613090|#]]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