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어진 (문단 편집) == 용어 == 어진이라는 표현은 의외로 늦게 생긴 말이다. 어진이라는 단어 외에도, 본래 쉬용(晬容)[* "쉬"는 오타가 아니다. "수용"이라고도 한다.], 진용(眞容), 영정(影幀), 왕상(王像) 등 여러 가지 단어[* 이외에도 진(眞), 영상(影像), 진영(眞影), 성용(聖容), 왕영(王影), 영자(影子), 어용(御容) 등이 사용되었다.]를 사용했지만, [[조선]] [[숙종(조선)|숙종]] 39년(1713) 숙종 어진을 그릴 당시 어용도사도감도제조(御容圖寫都監都提調)였던 [[이이명]](李頤命)이 건의하여 '어진'이라는 명칭으로 통일했다. >영자(影子)는 왕이 지칭하는 것이므로 신하로서는 감히 지칭할 수 없고, 영정(影幀)은 그 뜻이 회화를 열어 펼친다는 뜻이니 족자(簇子)로 꾸며진 것이 아니면 칭할 수 없는 것이다. 수용(睟容)이란 단순히 모습을 지칭하는 것이니 부를 바가 못 되며, 어용(御容) 역시 거칠고 투박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릇 전신(傳神)이란 사'''진'''(寫'''眞''')으로 불려 왔으며, 또한 왕의 초상화를 봉안하는 처소를 '''진'''전('''眞'''殿)이라 하므로 왕의 화상 역시 어'''진'''(御'''眞''')이라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 > 《[[승정원일기]]》 숙종 39년(1713) 5월 6일 [[승정원일기]] 해당 일자에 복구하지 못한 부분이 있어 몇 글자씩 빠진 내용이 있다. 이 때문에 중간에 문맥이 자연스럽지 않은 부분이 있지만, 해당 단락을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이이명이 아뢰었다. “막 어용(御容)의 초본(草本)을 내었을 때의 비망기에서 영자(影子)라고 하교하셨는데, 이는 상께서 스스로 칭하시는 것이지 아랫사람이 감히 일컬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자'라는 말은 왕이 스스로 일컫는 말이지, 신하가 함부로 부를 수 없다는 뜻]. 영정(影幀)의 정(幀)은 자서(字書)를 살펴보니 그 음은 쟁(諍)이고 그 뜻은 펼쳐서 그림을 그린다[開張繪畫]고 하였으니 쟁틀[諍機; 淨機]이라고 부르는 그림틀이 정(幀)인 듯합니다. 그렇다면 틀을 펼치는 것을 말한 것이지 마무리하여 족자로 완성한 후에 일컬을 만한 것이 아닙니다[* '영정'에서 '정'은 펼치는 형태의 그림을 나타내는 것으로, 족자로 꾸민 경우에만 사용할 수 있는 말이라는 뜻]. 전부터 수용(睟容)에 사용해 왔는데 【3글자 빠짐】 갑자기 변하였는데, 선대 임금의 수용(睟容)을 일컫는 말이니 또한 오늘날 일컬을 만한 말이 아닙니다[* '수용'이라는 말은 단순히 왕의 모습을 그린 것이지, 초상화를 일컫는 말이라고 보기에는 부적절하다는 뜻]. 【여러 글자 빠짐】 어용(御容)은 자못 투박합니다[* '어용'이라는 말은 투박하다는 뜻]. 무릇 전신(傳神)하는 것을 모두 사진(寫眞)이라고 일컬었으니 어진(御眞)이라 일컬어 【3,4글자 빠짐】 뭇 아랫사람들과 문서에서 어진(御眞)이라고 부르게 하는 것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이때까지 초상화를 [[사진]]이라 일컫었으니, 왕을 의미하는 어([[御]])를 붙여 어진으로 하자는 의미].” > >김진규가 아뢰었다. “진(眞)이라는 글자는 【4글자 빠짐】, 이제 어진(御眞)이라 일컫는 것이 진실로 괜찮지만 다만 면목이 생경(生硬)한 듯합니다.[* 익숙한 표현이 아니라는 뜻] 송나라 인종 때 구양수(歐陽脩)가 어용(御容)을 【3,4글자 빠짐】 하였는데 그 차자(箚刺)에서 곧바로 용(容)자로 화상(畫像)을 지칭하였습니다. 이것은 비록 옛사람의 문자 습관에 기인한 것이지만 【4,5글자 빠짐】 이와 같으니 이제 어용(御容)이라고 칭하는 것 또한 무방할 듯합니다.” > >상이 말하였다. “송나라 때 어용(御容)이라는 글을. 【6,7글자 빠짐】 지난날 영자(影子)라고 한 하교는 내가 일컬은 것이다. 【7,8글자 빠짐】 영희전(永禧殿, 조선 임금의 영정을 봉안한 전각)을 진전(眞殿)이라고 하고 있으니 어진(御眞)이라는 호칭이 좋을 듯하다.” > >頤命曰: “御容初出草本時備忘中, 以影子爲敎, 此乃上所自稱, 而非在下者之所敢稱號也。影幀之幀, 考見字書, 則其音諍, 其義則開張繪畫云矣。畫機之稱以諍機, 似是幀矣。然則乃張機之謂也, 非粧成簇子後可稱。而自前用之於睟容, 【缺三字】 猝變, 旣是先朝睟容之稱號, 則亦非今日之所可稱也。【缺數字】 御容則殊涉樸直。凡諸傳神, 皆稱寫眞, 則稱以御眞, 【缺三四字】 群下及文書, 以御眞稱之, 未知何如?”鎭圭曰: “眞字【缺四字】, 今稱以御眞固可, 而第面目似生。宋仁宗時, 歐陽脩【缺四字】御容, 其箚中直以容字稱畫像。此雖因古人文字之節, 【缺四五字】如此, 今以御容稱之, 亦似無妨矣。”上曰: “宋時【缺六七字】御容之文矣。向日影子之敎, 蓋是自我所稱, 【缺七八字】 永禧殿旣云眞殿, 則御眞之稱似好矣。” >《[[승정원일기]]》 숙종 39년(1713) 5월 6일 다만 이렇게까지 했음에도 조선 말기까지 '어진'이라는 용어 외에도 '어용'이라는 말이 빈번히 사용되곤 했다. 어찌됐건 공식 명칭은 '어진'으로 정했기 때문에 이 문서에서도 어진으로 통일하여 서술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