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양상문 (문단 편집) === 청보 핀토스 - 태평양 돌핀스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image.sportsseoul.com/l_2014051301000642100037871.jpg]]}}} || || [[파일:태평양 돌핀스 엠블럼(1988~1993).png|width=35]] '''[[태평양 돌핀스]] 선수 시절''' || 1986시즌이 끝나고 롯데와 청보간의 다대다 트레이드에 의해 청보로 이적하게 된다. 당시 트레이드된 선수는 [[임호균]], 양상문, [[배경환]], [[이진우]], 김진근(이상 [[롯데 자이언츠|롯데]]), [[정구선]], [[정성만]], [[우경하]](이상 [[청보 핀토스|청보]])였다. 트레이드 핵심은 롯데의 '[[삼미 슈퍼스타즈|삼미]] 시절 활약했던 [[임호균]] + 양상문'과 청보에서 가장 날렸던 2루수 [[정구선]]의 트레이드였다. 전반적으로는 청보가 좀 더 득을 많이 본 트레이드로 기록된다. 이적 첫 해인 1987년 청보에서 12승 13패 ERA 3.10의 좋은 성적을 거두며 본인의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다. 커리어와 팀내에서 갖는 상징성 등으로 명목상 임호균이 청보의 에이스였으나, 성적상으로는 양상문이 임호균보다 나은 활약을 보였다. 이듬해인 1988년에는 [[아모레퍼시픽|태평양그룹]]이 청보 구단을 인수하면서 [[태평양 돌핀스]]로 유니폼을 갈아입게 된다. 임호균의 급격한 노쇠화로 명실상부한 팀의 에이스 역할을 맡으면서 9승 12패 ERA 3.83의 준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suxmedia.com/1405671511.jpg]]}}} || || [[파일:태평양 돌핀스 엠블럼(1988~1993).png|width=35]] '''[[태평양 돌핀스]] 선수 시절, [[김성근]] 감독과 오대산 훈련''' || 앞에서 두번째, 즉 김성근 바로 뒤가 양상문.[* 물론 저 사진은 1990년에 촬영한 광고용 컨셉 사진이었다. 실제로 오대산 극기훈련 당시 김성근은 숙소에 있었고 산악 구보 훈련에는 동행하지 않았다고 한다.] 1989년 김성근이 감독으로 취임하였다. 이해에 소위 태평양 3인방으로 불리는 신인 [[정명원]], [[최창호(야구선수)|최창호]], [[박정현(투수)|박정현]]이 혜성처럼 등장하면서 양상문은 뒷전으로 밀려나게 된다. 그래도 선발진의 한축으로 활약해서 1989년과 1990년 160이닝 3점대 초반의 평균자책점과 8승 11승을 올린다. 이후 1993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하기까지 4시즌간 팀의 선발 로테이션을 지키며 제 역할을 했으나, 팀의 인기가 워낙 저조한데다가 3인방에 가려 별로 제대로 주목받지는 못했다. 심지어 은퇴 시즌에도 4완투나 했다. 부상이 있었는지 꽤 이르게 은퇴한 편. [[투수]]로서의 능력만 본다면 꽤 쓸 만한 기교파였으나, 팀이 부진의 절정을 달린 청보와 태평양이다 보니 까먹은 승수가 많아 통산 기록은 63승 79패 13세이브 40완투(10완봉) 평균자책 3.59에 불과하다. 부산 출신으로 롯데에서 데뷔를 했지만 프로 시절 커리어 대부분을 인천 연고팀인 청보-태평양에서 보냈고, 청보와 태평양의 역사에서도 한 시기를 대표할만한 선수이자, 암흑기 에이스였던 선수였다. 1987년~1988년 두 시즌 동안은 성적상 팀의 에이스 역할을 했고, 3인방이 등장한 이후에도 4시즌간 팀의 선발 로테이션을 지키며 주축 선수로 활약했다. 1990년에는 4완봉승을 기록하기도 했는데 이는 좌완투수 단일시즌 최다 완봉으로 남아 있다. 또 선수층이 얇은 청보-태평양에서 에이스 역할을 하면서 1987~1988 2년 연속 출장 경기수 2위를 할 정도로 혹사를 했고, 이러한 혹사는 김성근 재임기까지 이어졌다. 김성근 감독이 취임하면서 갑툭튀한 3인방으로 인해 일순간 에이스에서 3~4선발로 밀려났지만 여전히 출장 경기수나 이닝은 1988시즌과 거의 차이 없었다. 다만 3인방이 양상문보다 더한 혹사를 당했을 뿐. 초기에는 팀에서 상징성이 컸던 [[임호균]]이 에이스로 대접받았고, 1989시즌부터는 3인방이 혜성처럼 등장하여 매스컴의 폭발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임호균]], [[박정현(투수)|박정현]], [[정명원]], [[정민태]] 등이 짧게 반짝한 후 부침을 겪으며 명멸하는 동안 부상없이 스테디하게 태평양의 마운드를 지킨 이는 양상문이 유일했다. 어찌보면 비인기팀의 에이스였던 불운에다가 그 비인기팀에서도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 비운의 선수라고 할 수 있다. 롯데에서 스테디하게 활약하며 장기적으로 팀에 가장 크게 기여했던 [[윤학길]]보다, 한 해 반짝했던 [[염종석]]이 훨씬 더 많이 기억되고 있는 것과 비슷한 불운한 케이스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