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양산시 (문단 편집) == 역사 == || 418년 ||<|2> → || 757년 ||<|2> → || 940년 ||<|2> → || 1413년 ||<|2> → || 1996년 || || 삽량주 (歃良州) || 양주 (良州) || 양주 (梁州) || 양산군 (梁山郡) || 양산시 (梁山市) || [[신라]] 초기 [[눌지 마립간]] 때 삽량주(歃良州/揷梁州)라 불렀다.[* [[http://www.ystv.co.kr/news/articleView.html?idxno=40220|"삽"이라는 글자에 대한 이야기]]] 그 외에 [[삼국유사]]에서 삽라군(歃羅郡), [[일본서기]]에서는 초라(草羅), 잡라(匝羅)라고도 나오는데 모두 같은 지명을 다른 한자로 표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리고 지금도 남아있는 지명인 황산(黃山)[* 백제와 신라의 [[황산벌 전투]]와는 관련이 없다. 이쪽은 충남 논산시 연산면 일대]도 삼국시대부터 사용한 지명인데 낙동강의 입구로 신라, 가야, 왜구간의 전투가 자주 벌어졌다. 참고로 신라와 왜국간의 교전이 금성에서 생겼을때, 양산을 거쳐서 올라왔다. 일단 대마도에서 부산 김해까지 배를 타고 상륙해 육지로 침략 했을 것으로 보인다. [[삼국시대]] 초기에는 [[낙동강]]을 경계로 [[신라]]와 [[금관국]]의 최전선이었고 [[삼국사기]]에서 황산([[물금읍]]) 등의 지명이 종종 등장한다. 물금(勿禁)이란 지명도 두 나라의 국경지역인 이곳에서 관리들의 검색(탐문)이 심해 강을 건너는 두 나라 사람들이 매우 불편했기에 이 지역만은 서로 '금하지 말자' 는 뜻으로 勿(말다 물)에 禁(금하다 금)로 지어졌다는 설이 있다. 김해 금관국이 약해진 이후로는 신라 영역으로 확정되어 [[북정리 고분군]]에서 신라 양식 유물들이 발굴되었다. 신라 [[경덕왕]]이 [[양주]](梁州)로 고쳤고 [[통일신라]]의 [[9주 5소경]] 중 지금의 [[도청(행정)]]에 해당하는 치소를 양주에 설치해, 양주 12군 34현을 관할하는 행정 중심지가 되었다. 또한 신라의 수도 [[서라벌]] 인근 지역으로 많은 불교 사원이 세워졌다. 양주의 직속 영현으로 헌양현(巘陽縣, [[울산]] [[언양읍]])이 있었다. 현대 행정동 [[양주동(지명)|양주동]](梁州洞)이라는 명칭은 이 것에서 나왔다. [[고려시대]]까지 쭉 양주라 하였고 [[조선]]에 들어와서는 1413년 양산군(梁山郡)으로 명명되었다. 1897년에는 양산군을 8면으로 정했는데, 당시 8면은 읍내, 동, 물금, 원동, 상북, 하북, 구포, 대저로 이루어졌다. 1906년 구포면[* 만덕을 제외한 현 부산광역시 북구 일대, 만덕은 1906년 이전부터 동래군 소속이었다.]을 동래군에, 대저면[* 현 부산광역시 강서구 대저1동, 대저2동]을 김해군에 각각 넘겨 주었다. 그리고 울산군으로부터 외남면(현 서생면)과 [[웅상]]면을 병합하였다. 1910년 외남면을 울산군에 다시 넘겨 주었다. 1973년 [[동래]]군이 폐지되면서 기장면, 일광면, 장안면, 서생면, 정관면, 철마면을 양산군에 편입하였다. 1979년 4월 양산면이 양산읍으로 승격되었다. 1980년 12월 기장면이 기장읍으로 승격되었다. 1983년 2월 15일 서생면을 울주군에 넘겨주었다. 1985년 10월 장안면이 장안읍으로 승격되었다. 1986년 11월 기장읍, 장안읍, 일광면, 정관면, 철마면을 관할하는 동부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91년 11월 웅상면이 웅상읍으로 승격되었다. 1995년 3월 동부출장소 관할의 기장읍, 장안읍, 일광면, 정관면, 철마면 등 5개 읍·면이 [[부산광역시]]에 이속되면서 [[기장군]]으로 떨어져 나갔다.[* 1973년 편입된 구 동래군 지역이 다시 떨어져 나간 셈이자, 1914년 이전의 구 기장군이 부활한 셈이다.] 당시 웅상읍 지역도 부산 편입이 거론되었으나 부산 편입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1996년 3월 시(市)로 승격되면서 양산읍이 중앙동, 삼성동, 강서동으로 분할되었으며, 물금면이 물금읍으로 승격되었다. 1998년 4월 웅상읍에 덕계출장소가 설치되었다. 2004년 1월에는 웅상민원출장소가 설치되었으며, 2007년 4월 [[웅상]]읍이 평산동, 덕계동, 소주동, 서창동으로 분동되고 이를 관할하는 웅상출장소가 설치되었다. 2010년 2월 중앙동에서 양주동이 분동되었다. 참고로 경남 8개 관할 시 중 유일하게 도농분리를 겪지 않은 채 [[도농복합시]]가 되었다. 위에 보면 알겠지만 1995년 [[기장군|5개 읍·면]]의 부산광역시 편입도 양산군이던 시절에 이루어졌고 애초에 그 지역들도 농촌이었다. 그러다보니 시 승격이 경남에서 가장 늦었다. 기본적으로 다른 시들은 xx시 + yy군으로 분리되었다 통합된 구조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 [[사천시]]가 유명한데, 거기는 [[삼천포시]]와 사천군으로 분리되어있다가 삼천포시가 사라지면서 사천시로 통합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