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양궁 (문단 편집) ==== 에피소드 ==== 퍼펙트 골드의 충격이 대단했던 덕분에 양궁 하면 박성현을 쉽게 떠올리지만, 그런 박성현도 국내대회에서 항상 메달을 독식하지는 못한다. 국가대표 단골 멤버인 윤미진 선수도 국내대회를 빈손으로 끝내는 것도 모자라 [[전국체육대회|전국체전]]도 아니고 경기대표 선발전에서 떨어질 뻔 했다.[* 경기도에는 수원시청과 여주시청 두 팀이 있어서 대회를 통해 4위 이내 선수까지만 전국체전에 출전할 수 있다.] 세계챔피언이 국내대회 출전을 걱정해야 하는 나라가 한국이다. 2016 리우올림픽 남자개인전 결승에서 슛오프 직전에 박채순 감독이 구본찬 선수에게 한 말도 [[http://hankookilbo.com/v/b40802e1cb3f447685a16140be8535c3|너 전국체전에서 메달 딸 자신 있어?]]였다.[* 나중에 전국체전에서도 금메달을 땄지만 그 직후 전국 남녀 종합선수권에서는 올림픽 2관왕 두 명 모두 32강에서 광탈했다.] 정확히는 ‘야 너 한국 가서 열리는 전국체전에서 금메달 딸 수 있어? 못 따지? 올림픽이 더 편해’였다. 박 감독의 설명으로는 “사실 올림픽이 전국체전보다 쉽다는 생각을 했다. 조금 건방진 이야기일 수 있지만 전국체전에서 금메달 따기 진짜 힘들다. 우리 선수들 실력이 그 정도로 높다.”라고. 세계 랭킹 1위만 '''1264일'''에 그랜드슬램을 기록한 신궁 박성현의 선배 격으로는 1979년과 1983년 세계선수권 5관왕 [[김진호(양궁)|김진호]][* [[1980 모스크바 올림픽]]을 보이콧하지 않았다면 김진호가 대한민국 양궁의 역사를 새로 썼을 것이다.], '''[[신궁]]''' [[김수녕]] (올림픽 금메달 4개,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 이 있다. 사실 한국 양궁에서는 '''최소한 자기 이름을 딴 국제 양궁장 하나쯤은 있어야 레전드'''로 불릴 수 있다 는 말까지 나오는데, 실제로 [[예천군]]에는 진호국제양궁장이, [[청주시]]에는 김수녕양궁장이 있다. 이 외에 광주 염주동에 [[서향순]]양궁장이 있었는데, 이후에 [[2015 광주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양궁장으로 쓰였던 곳이 서향순·[[기보배]] 양궁장으로 이름 붙여져 있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는 [[서향순]] 문서 참조. [[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6064423|관련 기사]] 다만, 현재는 해당 경기장 이름이 '[[광주국제양궁장]]'으로 불려지고 있다.] 어느 [[아시안 게임]]이 열릴 당시 한국 양궁팀은 무난하게 출전권을 따냈는데, 하필 같은 시기에 국내에서 규모는 작지만 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대회가 열렸다. 이 때문에 1군 선수진은 모두 아시안 게임을 포기하고 이 대회에 출전했다. 그리고, 아시안게임은 2군 선수들만 가지고 남은 일정을 진행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 결과는 '''점수 누적 부문 신기록을 세우면서''' 우승. 1990년대 중반 프랑스 양궁팀하고 같이 합숙을 하게 되었는데, 막 양궁팀에 들어오게 되어 참관을 목적으로 합숙 보조팀에 끼어온 (전력외인) 무명 한국인 후보 선수가 프랑스의 주전까지 싸그리 박살낸 일이 있다. 국가대표 선발전은 중학교 3학년부터 실업팀 선수들 가운데 일정 점수 이상을 한 번이라도 기록한 선수들을 모두 모아 놓고 뽑게 되는데 '''중학교 3학년 선수가 선배들을 제치고 국가대표가 되어 아시안 게임이나 올림픽에 출전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한국체대 선수인 임동현 선수는 고교 1학년 때 [[2002 부산 아시안 게임]]에 출전하여 금메달을 획득했고, 고교 2년생 이특영 선수는 고1 때 세계선수권에 출전하여 개인전 은과 단체전 금을 따기도 했다. 김수녕의 경우도 [[1988 서울 올림픽]] 2관왕이 된 것이 '''고2'''때의 일이다.[* 이 대회에서는 '''여자 개인전 금은동을 모두 대한민국 선수가 싹쓸이해버렸다.''' 대한민국이 여자 개인전에서 3개의 메달을 모두 싹쓸이한 일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다시 재현되었는데, [[김수녕]]이 획득한 동메달이 1999년에 협회의 권유로 은퇴를 번복한 뒤에 선발전을 다시 뚫고 바로 이 때 나온 것이다. 본인은 동메달도 집에 보관할 수 있게 되어서 좋다고 밝혔다.] [[2020 도쿄 올림픽]] 혼성 금메달과 남자 단체에서 모두 금메달을 딴 [[김제덕]]도 2021년 현재 고2다.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남자 개인전 은메달리스트였던 [[정재헌]] 선수는 훈련거부파동 사건으로 인해서 국가대표 자격 박탈이라는 징계를 받았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2002년 사면되어 징계가 해제되고 징계 기록도 [[http://news.joins.com/article/1876668|말소되었다.]] 이 사건이 있은지 13년이 흐른 2005년 국가대표 선발전을 뚫어 내며 다시 국가대표에 선발되었고, 세계선수권 대회에 출전하여 금메달을 획득했다. 다만, 2006년에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꼴찌에 가까운 성적으로 탈락하는 수모를 당했다. [[1988 서울 올림픽]], [[2000 시드니 올림픽]] 여자 개인전 양궁에서는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 모두 우리나라가 석권한 적이 있다. 단, 2000 시드니 올림픽에서 4위는 북한의 최옥실 선수가 차지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3cCghGzjyc|#]] 해당영상은 2000 시드니 양궁 개인전 메달시상식 장면이다. 2005년 전국체전에서는 그간 전국대회에서 이름조차 내밀지 못했던 신성우라는 선수가 4관왕에 올랐으며, '''국내''' 전국체전 기록이 세계 신기록보다 높게 나오기도 한다.[* 전국체전 기록도 규격이 맞으면 공인세계기록으로 인정되기 때문에 2006년의 전국체전 기록은 이전 세계 기록으로 올라가 있다.] 전국체전 개인전 신기록이 12발에 120점 만점이다. 한 마디로 그냥 다 10점을 쐈다는 소리. 전국 체전에서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도 메달은커녕 초반 광탈이나 안 당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2012 런던 올림픽]] 여자 양궁 국가대표로 선발된 선수는 [[최현주(양궁)|최현주]], [[기보배]], [[이성진(양궁)|이성진]][* 이성진은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여자 개인전 은메달, 단체전 금메달을 땄었다.] 세 명이었다. 그런데, [[최현주(양궁)|최현주]]가 선발전 이후에 부진이 계속되었고, 이 때문에 대표선수를 교체해야 한다는 의견이 계속 제기되었다. 교체론과 원칙론이 팽팽했는데, 여자 대표팀의 양창훈 감독은 '''불안해도 원칙을 깰 수는 없다'''며 원칙론을 고수했고, 양궁 대표팀 문형철 총감독 역시 "교체는 절대 안 된다. 원칙을 지켜줘야 후배들도 선발전 시스템을 믿고 갈 수 있다"고 힘을 실어줬다. 결국 최현주를 밀고 가기로 결정했고, 이 믿음은 런던 올림픽에서 빛을 발했다. 중국과의 결승전에서 기보배마저 흔들릴 때, 최현주가 10점 행진을 이어가면서 결국 한국팀에게 금메달을 [[http://news.kbs.co.kr/news/view.do?ncd=3325054|안겼다.]] [[기보배]] 역시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2개의 금메달을 따내면서 [[신궁]]의 계보를 계승했지만, 2014년 아시안 게임 대표선발전에서 떨어지는 수모를 겪었고 [[차두리|결국 방송에서 해설자로 나왔다.]] 하지만, 2015년에는 다시 부활하여 [[http://www.yonhapnews.co.kr/site/2015/07/04/4502030100AKR20150704032000007.HTML|세계신기록]]을 쏴대고 있다. 2016년에는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국가대표 자격을 다시 한 번 획득했다. 하지만 2018년 아시안 게임 대표 선발전에서 또 떨어졌으며, [[2020 도쿄 올림픽|2020년 도쿄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도 떨어져 KBS 해설자로 나오게 되었다. 전술한대로 2015년 [[전국체전]]에서는 [[이승윤(양궁)|이승윤]](20·[[코오롱 엑스텐보이즈]])·[[김법민]](24·대전시체육회)·김규찬(25·예천군청)선수가 36발을 모두 10점 과녁(지름 8cm)에 맞혀서 360점의 만점자가 무려 3명이나 나왔다. 그래서 지름 4㎝인 X-10[* 과녁 가장 안쪽 원 안]을 맞힌 횟수로 순위를 정했다. X-10을 24발 쏜 이승윤과 김법민은 공동 금메달, X-10을 20발 쏜 김규찬[* 이 선수, 만점 맞히고도 금을 못딴 건 처음이 아니지만 만점을 냈는데도 3등이 될줄은 몰랐다는 인터뷰를 남겼다. 이전에 만점 2등을 한 적이 있었고, 2016년 대통령기엔 대통령기 역대 50m 최고점수였던 347점을 맞혔지만 이 대회에서 이우찬 선수가 349점으로 대회 기록을 갱신하면서 2등이 되었다. 절대 기량이 부족한 선수가 아니지만 한국 양궁이 얼마나 험난한 경쟁이 일어나는지 알려주는 대표적인 사례를 몸소 보여주는 선수다. 그리고 결국 2018년에 다시 국가대표 선발전에 통과했다.]은 동메달을 받았다. 덤으로 공동 4위인 계동현, 진재왕은 36발 중 35발을 10점 쏘고, 딱 한발 9점 쏴서 359점을 [[http://m.todayhumor.co.kr/view.php?table=humorbest&no=1137042|받았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남자양궁 예선에서 김우진 선수가 72발 중 700점을 쏘아 올림픽신기록을 세웠다. 정작 대회 자체는 32강에서 탈락했다는 게 아이러니.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여자 단체전에서 4강 타이완과의 1차전에서 3명의 선수가 1차전의 6발 모두 10점을 맞히면서 총합 60점 만점으로 1세트를 끝내버렸다. 역시 같은 올림픽 남자 단체전 결승전 미국과의 1차전에서 3명의 선수가 6발 모두 10점을 맞히면서 60점 만점으로 1세트를 끝내버렸다. '''그리고, 리우 올림픽 남자 개인전 양궁에서 구본찬이 금메달을 따면서 한국이 최초로 양궁 전 종목을 석권하는 기록을 달성했다.''' 그래서, 이런 이유 때문에 '''한국의 양궁 선수들은 국가대표가 되면 메달권 진출이 반쯤 확정되는 추세다. [[주객전도|단지, 국가대표가 되는 길이 세계대회에서 우승하는 것보다 더욱 어려울 뿐이다.]]''' 이를 방증이라도 하듯, 이승윤 선수는 2018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떨어졌고 2015 전국체전에서 '''만점 동메달''' 수상 에피소드의 주인공인 김규찬 선수가 선발전에 붙었다. 심지어 2021년 도쿄 올림픽 양궁 3관왕을 차지한 [[안산(양궁)|안산]] 선수조차 다음 목표가 전국체전 금메달이라고 밝혔을 정도. 그만큼 3관왕 선수도 어려워하는게 국내 대회인데, 2021년 전국체전은 사실상 없었고,코로나로 한 해 미뤄진 전국체전에서 이 목표는 동메달을 획득하며 아쉽게도(?) 실현되지 못했다. 이렇듯 국제대회에서의 경쟁보다 국내 선수들끼리의 경쟁이 더 치열해서 그런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국가대표에 선발되어 올림픽 등에 출전한 선수들을 보고 "다음 올림픽 해설위원(진)"이라는 농담조 드립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다만, 리커브가 아닌 컴파운드 종목에서는 [[컴파운드 보우]]에 많은 투자를 하고 선수도 늘어난 [[인도]]가 갑자기 잘하여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 4개인 한국은 [[1978 방콕 아시안 게임]] 이후 40년 연속 아시안 게임 양궁 최다 금메달 강호 자리를 45년만에 인도에게 넘겨진 이변이 벌어졌다. 10개 금메달에서 5개를 인도가 차지했던 것(리커브 금메달 1개는 몽골)이다. 그럼에도, 최근에는 컴파운드를 리커브만큼 꾸준히 투자해가는 추세여서 앞으로 대한민국은 리커브와 컴파운드 모두의 최강국으로 다시한번 발돋움할 전망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