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안상영 (문단 편집) == 평가 == 관료로서는 능력이 출중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울시 7급 토목기술직 지방공무원으로 시작하여 철저한 자기관리로 30년 가까이 승진 누락 없이 고시 출신도 기수별로 소수만 오를 수 있는 차관급까지 승진한 입지전적 인물이었다. 뇌물수수로 사망한 것으로 그의 지역 개발 정책이 저평가 된 부분이 있다. 관선 2년, 재선 중 유고로 인한 5년. 도합 7년의 미완의 재임으로 끝났지만, 그의 구상 중의 상당 부분은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 소위 [[http://m.knnews.co.kr/mView.php?idxno=235699&gubun=|3대 밀레니엄 사업]] 중 하나로 [[해운대구]] [[센텀시티]] 개발을 적극 추진했다. 오늘날 동부산 발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안상영 시장 재임 시기인 [[2000년]] 11월 2일 기공식을 가졌으며 [[김대중]] 대통령이 직접 기공식 연설을 했다. 또한 [[기장군]] 지역을 중심으로 한 동부산관광단지 역시 그 출발은 3대 밀레니엄 사업 중 하나인 동부산권 국제관광단지 사업이 시작이었다. 반면 서부산 글로벌 시티(국제교류단지)의 경우는 삽도 제대로 뜨기 전에 임기를 마치지 못하였다. 2010년대 후반에야 스마트 시티 등의 이름으로 [[사상구|사상권]]에서 지지부진하게 사업이 진행되는 수준이다. 반면에, 물론 정상적으로 재선 임기, 나아가 삼선 임기를 지냈다면 상기 공은 평가 받았겠지만, 지나친 개발 지향은 물론 수도권 집중 문제에 따른 (예고 된) 부산권 자체의 쇠락은 막지 못했을 것이기에 좀 더 복합적인 공과를 논할 수 있었을 것이란 평가도 있다. 이미 관선시장이던 80년대 말부터 부산 앞바다 '인공섬' 프로젝트에 의지가 지나치게 강했다.[* 1989년의 일로, [[영도구]]와 [[송도]] 사이 남항 앞바다를 매립하여 185만 평 규모의 인공섬을 짓는 계획이었다. 안 시장은 불과 다음해 해운청장으로 '영전'했으며, 결국 [[환경부]](당시 환경처)의 지속적 반대로 민선 시장 선거를 앞두고 1995년 최종 무산되었다. 결국 2020년대까지도 [[베이퍼웨어]]로서만 거론되는 대규모 개발 떡밥으로 남아있다. [[https://m.blog.naver.com/keuntaeng/220792684987|# 참조]]. ~~[[가덕도]] [[가덕도신공항|신공항]]이 차세대 격 떡밥이라고 카더라~~] '토목시장', '개발시장'이라는 긍정과 부정이 혼재된 별명을 받은 이유도 그것이다. 상기한 그의 토목/건설 외길 이력에서 비롯된 점이었을 것으로 평가 된다. 공과가 혼재된 영욕의 생애였으나, 어떤 의미에서는 개발 시대의 전형적 인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2001년도에 [[부산종합버스터미널]]을 노포동으로 통합이전을 추진했던 탓에 버스터미널이 시내와 접근성이 너무 떨어져 영 좋지 않은 위치로 일부 부산시민들에게 원망을 듣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