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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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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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정부상징(1949-2016).svg 대한민국 해운항만청
노태우 정부
8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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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영


10대
강동석











제25·31·32대 부산광역시장
안상영
安相英 | Ahn Sang-young


파일:안상영.jpg

출생
1938년 11월 18일
경상남도 동래군 명륜리[1][2]
사망
2004년 2월 4일 (향년 65세)
부산광역시 사상구 주례동 666번지 부산구치소

본관
순흥 안씨
재임기간
제25대 부산직할시장(관선)
1988년 5월 19일 ~ 1990년 12월 27일
제9대 해운항만청장
1990년 12월 28일 ~ 1992년 4월 20일
제31·32대 부산광역시장(민선)
1998년 7월 1일 ~ 2004년 2월 4일
제2대 한국상하수도협회 회장
2002년 11월 1일 ~ 2004년 2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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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김채정
자녀
딸 안혜원, 아들 안정훈
학력
부산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토목공학 / 학사)
최종 당적

종교
불교
약력
서울특별시청 도로국장
서울특별시청 도시계획국장
서울특별시청 종합건설본부장
제25대 부산직할시장 (관선)
제9대 해운항만청장 (노태우 정부)
부산매일신문 사장
제31-32대 부산광역시장 (민선 2·3기 / 한나라당)
제2대 한국상하수도협회 회장

1. 개요
2. 생애
3. 부산광역시장 재임
4. 사망
5. 평가
6. 논란
6.1. 출생지 논란
7. 소속 정당
8. 선거 이력
9.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전 관료로, 25대(관선) 부산직할시장, 31~32대(민선) 부산광역시장을 지냈다.

2. 생애[편집]


1938년 11월 18일 출생했다. 출생 이후 부산광역시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부산 성지국민학교, 부산중학교[3], 부산고등학교[4],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토목공학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서울특별시청 토목직 7급 공채에 합격하여 서울시청 토목직 공무원으로 근무하였다. 노태우 정권 때 관선 부산직할시장(1988~1990), 해운항만청장을 역임했고, 1996년부터 1998년까지는 부산매일신문 사장을 역임하였다.


3. 부산광역시장 재임[편집]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문정수 후보와의 경선에서 승리[5], 한나라당 후보로 부산광역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제29대 시장을 지냈던 무소속 김기재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이로써 부산광역시 역사상 유일하게 관선 직할시장과 민선 광역시장을 모두 지낸 시장이 되었다.[6]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하여 새천년민주당 한이헌 후보를 꺾고 당선, 시장 연임에 성공하였다.


4. 사망[편집]


그러나 2003년 10월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되어 부산구치소에 수감, 조사받다가, 2004년 2월 4일 부산구치소 내 자살[7]하였다.[8] 사망 당시 민정수석이었던 문재인과 소속정당인 한나라당의 전 대표였던 이회창, 현직 대표이자 고등학교 동창 최병렬 등 많은 정치권 인사들이 빈소에 방문해 조문했다.


5. 평가[편집]


관료로서는 능력이 출중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울시 7급 토목기술직 지방공무원으로 시작하여 철저한 자기관리로 30년 가까이 승진 누락 없이 고시 출신도 기수별로 소수만 오를 수 있는 차관급까지 승진한 입지전적 인물이었다.

뇌물수수로 사망한 것으로 그의 지역 개발 정책이 저평가 된 부분이 있다. 관선 2년, 재선 중 유고로 인한 5년. 도합 7년의 미완의 재임으로 끝났지만, 그의 구상 중의 상당 부분은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

소위 3대 밀레니엄 사업 중 하나로 해운대구 센텀시티 개발을 적극 추진했다. 오늘날 동부산 발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안상영 시장 재임 시기인 2000년 11월 2일 기공식을 가졌으며 김대중 대통령이 직접 기공식 연설을 했다.

또한 기장군 지역을 중심으로 한 동부산관광단지 역시 그 출발은 3대 밀레니엄 사업 중 하나인 동부산권 국제관광단지 사업이 시작이었다.

반면 서부산 글로벌 시티(국제교류단지)의 경우는 삽도 제대로 뜨기 전에 임기를 마치지 못하였다. 2010년대 후반에야 스마트 시티 등의 이름으로 사상권에서 지지부진하게 사업이 진행되는 수준이다.

반면에, 물론 정상적으로 재선 임기, 나아가 삼선 임기를 지냈다면 상기 공은 평가 받았겠지만, 지나친 개발 지향은 물론 수도권 집중 문제에 따른 (예고 된) 부산권 자체의 쇠락은 막지 못했을 것이기에 좀 더 복합적인 공과를 논할 수 있었을 것이란 평가도 있다.

이미 관선시장이던 80년대 말부터 부산 앞바다 '인공섬' 프로젝트에 의지가 지나치게 강했다.[9] '토목시장', '개발시장'이라는 긍정과 부정이 혼재된 별명을 받은 이유도 그것이다. 상기한 그의 토목/건설 외길 이력에서 비롯된 점이었을 것으로 평가 된다. 공과가 혼재된 영욕의 생애였으나, 어떤 의미에서는 개발 시대의 전형적 인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2001년도에 부산종합버스터미널을 노포동으로 통합이전을 추진했던 탓에 버스터미널이 시내와 접근성이 너무 떨어져 영 좋지 않은 위치로 일부 부산시민들에게 원망을 듣기도 했다.

6. 논란[편집]



6.1. 출생지 논란[편집]


생전 부산광역시장을 역임했지만 출생지는 전라남도 광양군 광양면 구산리 우두마을 출신이라고 알려진 적이 있었다. 호적 등본에도 전라남도 광양군 광양읍 용산리 11번지에서 출생, 1938년 1월 22일 신고' 라고 기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출생지가 논란이 됐고 당시 부산방송(KNN)에서 방영된 TV 토론회에서 직접 부산에 살던 어머니가 나를 잉태한 뒤 주위 사람들이 선산 (광양) 아래서 출산하는게 좋겠다고 해 해산달에 선산에 가서 낳았다" 고 밝혀 결국 광양 출신임을 인정했었다. 하지만 TV 토론회 4일 전에는 서면에서 태어났다고 밝혔으며 TV 토론회가 방송을 탄 다음날에는 부전동이 출생지라고 다시 말을 바꿔 논란이 됐다. # 하지만 이후 월간조선 2001년 5월호에 실린 인터뷰에서는 동래구 출신이라며 또다시 말을 바꾸는 모습을 보여줬다.


7. 소속 정당[편집]


소속
기간
비고

파일:한나라당 흰색 로고타입(1997~2004).svg

1998 - 2004
정계 입문
사망

8. 선거 이력[편집]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98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부산광역시장

파일:한나라당 흰색 로고타입(1997~2004).svg

558,909 (45.14%)
당선 (1위)
초선
2002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
729,589 (63.76%)
재선[10][11]

역대 선거 벽보



9. 둘러보기[편집]



대한민국 민선 3기>
광역자치단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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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동[2] 전라남도 광양군 광양면 구산리 우두마을에서 출생했다는 설도 있다. 자세한 내용은 6번 문항을 참고.[3] 박관용국회의장과 동기다.[4] 최병렬한나라당 대표와 동기로, 절친한 사이라 안상영의 장례식에서 최병렬이 우인(친구) 대표로 조사를 읽기도 했다.[5] 당시 문정수는 현역 시장이고, 안상영은 구색 맞추기로 나온 후보였으나, 문정수가 한보 사태에 연루되어 안상영이 경선에서 승리했다.[6] 관선 직할시장을 지내고 민선 광역시장에 도전한 사람은 여럿 있었다. 직할시 승격을 이루어낸 김현옥 전 시장, 앞서 언급한 김기재 전 시장 등. 그러나 성공한 사람은 안 시장이 유일하다. 사실 직할시 승격 전으로 범위를 넓혀보면 민선과 관선을 모두 겪은 시장으로 배상갑이라는 시장이 있긴 했다. 부산시의원에 의한 간접 선출로 7대 시장이 되었다가 관선으로 8대 시장이 되었다. 그러나 시민에 의한 직접 선출이 아니었으며 선민선 후관선으로 연임된 것이기 때문에 선관선 후민선인 안 시장과는 경우가 다르므로 제외한다.[7] 우병우/논란#안상영 부산시장 자살 관련 (경고 처분)[8] 이후 2인자로서 권한대행을 하고 있던 오거돈 행정부시장과 3인자로서 다음 대행직을 승계할 허남식 정무부시장까지 두 부시장이 보선 출마로 나란히 사직하는 바람에 4인자인 안준태 기획관리실장(나중에 부산교통공사장이 된다.)이 허남식 부시장의 시장 당선 전까지 권한대행을 맡는 전대미문의 사태가 발생한다.[9] 1989년의 일로, 영도구송도 사이 남항 앞바다를 매립하여 185만 평 규모의 인공섬을 짓는 계획이었다. 안 시장은 불과 다음해 해운청장으로 '영전'했으며, 결국 환경부(당시 환경처)의 지속적 반대로 민선 시장 선거를 앞두고 1995년 최종 무산되었다. 결국 2020년대까지도 베이퍼웨어로서만 거론되는 대규모 개발 떡밥으로 남아있다. # 참조. 가덕도 신공항이 차세대 격 떡밥이라고 카더라[10] 2004. 2. 4. 임기중 사망[11] 민선직 시장으로는 재선이지만 관선직 부산직할시장을 한 번 지낸 이력이 있다. 즉 부산시장직을 총 세 번 수행했으므로 실질적으로는 3선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