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심훈 (문단 편집) == 기타 == * 주요 저서로 《[[상록수(소설)|상록수]]》가 유명하다. 해방 후 1949년 유고집으로 《[[그 날이 오면]]》이라는 시집이 발간되었다. 시, 소설 두 대표작 모두가 [[교과서]]에 실린 인물. 그 이외에 이렇게 시와 소설 둘 모두 교과서에 실은 사람은 심훈을 제외하면 [[이상(작가)|이상]]이 유일하다. 거기에다가 심훈이 [[3.1 운동]]으로 복역하던 당시 어머니에게 썼던 편지가 중학교 1학년 국정 국어교과서에 실린적도 있으니, 교과서와는 인연이 깊은 작가이다. 민족운동에도 공헌이 있고, 동시대의 거의 모든 작가들이 자발적, 혹은 타의에 의해 일제 가담에 연루되기 시작한 시기 이전에 사망하여, 교과서에 올리기에 부담이 없는 인물이다. 다만 절친 [[박헌영]] 때문에, 조금만 더 오래 살았으면 적어도 지금처럼 기억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 [[안창호]]가 아들처럼 생각한 유상규의 호가 태허임을 유상규 차남이 알게 된 것도, 그 집을 방문한 심훈이 쓴 메모 덕이라고 한다. * 자신은 건국훈장 애국장에 서훈되었을 정도로 나라에서 인정받은 독립유공자이지만, 그의 일가에는 유독 친일반민족행위자가 많았다. 특히 그의 두 형인 심우섭(沈友燮, 1890. 2. 11 ~ 1948. 3. 6)·심명섭(沈明燮, 1898. 9. 1 ~ ?)[* 1950년 8월 [[납북]]되었다.]은 모두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어 있는 친일반민족행위자이고, 첫 아내 [[전주 이씨]] 이해영(李海映, 1900 ~ ?)의 남동생은 마찬가지로 친일반민족행위자인 [[청풍군(1890)|청풍군 이해승]]이었다. 좀 먼 친척(17촌)이긴 하지만 [[배우]] [[심영(배우)|심영]] 또한 친일파로 유명하다. * 한편 <상록수>의 주인공 박동혁은 심훈의 장조카인 [[심재영(1912)|심재영]]을 모티브로 한 것으로 알려져있으나 아니라는 가설도 존재하여 문학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심재영은 [[경성공립농업학교]]를 졸업하고 농민운동에 종사했으며 1980년에는 시를 낸 적이 있다. 심훈은 심재영의 집에서 잠시 집필활동을 하기도 했다. 현재는 심재영의 아들이 고택에서 거주하며 관리한다고 한다. * 글 쓰는 속도가 빨랐다고 한다. 특히 <직녀성>은 1달 만에, [[상록수(소설)|상록수]]는 50일 만에 탈고했다고 한다. [[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 신자]][[분류:청송 심씨 안효공파]][[분류:건국훈장 애국장]][[분류:동작구 출신 인물]][[분류:1901년 출생]][[분류:1936년 사망]][[분류:장티푸스로 죽은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한국 남성 작가]][[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대한민국의 영화 평론가]][[분류:서울교동초등학교 출신]][[분류:경기고등학교 출신]][[분류:동아일보 관련 인물]][[분류:조선일보 관련 인물]][[분류:3.1 운동/관련 인물 및 단체]]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