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신라 (문단 편집) == 행정 == 현대 한반도의 지명들은 신라 [[경덕왕]] 대에 행정을 개혁하면서 지은 한자식 명칭[* [[조선]]의 수도인 ‘[[한양]]’이나(이 경우는 정식명칭은 [[한성]]이었다) [[고려]]의 수도인 ‘[[송악]]/[[개성시]]’, 그리고 [[동래]], [[대구광역시]], [[전주시]] 등 여러 지역 중심도시들이 대표적인 예이다.]을 토대로 한다. 다만 경덕왕의 한자식 지명은 신라 당대에는 행정개혁을 통한 왕권강화의 의도가 있었기 때문에 진골귀족들의 반발로 제대로 쓰이지 못했고 후의 고려 왕조에 들어서 경덕왕이 만든 한자식 지명을 참조하여 새로 작성한 한자식 지명을 완전히 정착시키는 데 성공한다. 당연히 이 또한 고려 중앙정부를 중심으로 한 행정개혁의 일환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즉 중앙에서 이해할 수 있는 형식으로 지명을 통일함으로서 호족들에게 질서를 강요하고 행정을 통일하는 작업의 일환.]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게, 경덕왕의 지명 개혁을 마치 이전에는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작업인 것처럼 착각해 신라중심주의적인 입장에서는 한반도의 지명은 경덕왕이 완전히 새로 창조한 것이며 후대에도 계승했으니 신라문화만이 남았다!라 여기고 비판적인 입장에서는 경덕왕은 삼국의 전통을 소멸시킨 사대주의자(이에 따르면 기존 신라의 전통 또한 말살된 것이 된다)에 불과하다!라 여기기도 하는데 일단 이런 한자식 지명은 삼국시대에도 한자문화가 완숙해지며 이미 존재하고 있었고[* 고마나리(固麻那利)→웅진, 벌나→평양, 국내, 요동, 한성(황해도 재령군), 국원 등의 수많은 한자식 명칭.] 경덕왕 또한 무작위로 새로 창조하여 작명을 한 게 아니라 이전 삼국시대 지명의 뜻과 전통을 계승하여 한자화한 것이다. 삼국시대에도 이미 중국 문화 도입을 통한 중앙집권화는 꾸준히 진행되고 있었고, 권력과 기존 전통을 유지하려 했던 기성 귀족들의 반발 또한 시시각각 터졌다는 건 기록으로도 많이 남아있다. 게다가 이런 개혁 및 교류로 인해 후기 삼국의 문화는 이미 무덤양식까지 같아질 정도로 서로 유사한 형태로 수렴 중이었고 따라서 경덕왕의 개혁은 완전히 새로운 신라중심주의적인 혹은 기존 전통을 깡그리 소멸시킨 독자적인 작업이 아닌 삼국시대부터 이미 진행되어 오던 중앙집권적 개혁의 전통을 계승한 것에 해당하며 종합적으로 보면 고려시대에 들어서야 비로소 이 일련의 작업이 완성된 형태를 띠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