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시복식 (문단 편집) === 시복 추진 중? === 현재 [[한국 천주교]]에서는 [[이벽]] 등을 포함한 [[https://cbck.or.kr/koreanmartyrs/133-Martyrs|133위]]에 대한 시복을 추진 중이다. 이 외에도 근현대 순교자 81위, [[덕원자치수도원]] 순교자 38위를 검토하고 있는데 아직 여론을 모의거나 추진중이거나 소문만 도는 상태이다. 사실 1건의 시복시성도 매우 힘든 일이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태석]] 세례자 요한 신부의 경우 선종한 지 5년이 이미 지났지만 어쩐지 시복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고 있다. 이태석 신부는 교구 소속이 아닌 [[살레시오 수도회]] 소속 수도사제이다. 이태석 신부의 시복은 [[가톨릭/대한민국|한국 천주교]]가 아닌 살레시오 수도회가 주도적으로 해야 한다. 다만 한국에서 살레시오 수도회는 그리 세력이 크지 않다. 최근 [[광희문]](시구문)에서 처형당한 순교자 명단 794명이 정리됨에 따라, 조선시대 순교자에 대한 3차 시복이 추진될 수도 있다. 2015년 [[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이 강론 중 "[[천주교 서울대교구]] 제1대 교구장으로 순교는 하지 못했지만 부임 중 질병으로 순교한 브뤼기에르 소(蘇) 바르톨로메오 주교를 시복하자"는 이야기를 하여 이에 대한 시복 추진이 있을 수 있다. [[병인박해]] 당시 [[순교]]한 [[파리외방전교회]]의 [[사제]] 9명 중 시성되지 못한 2명인 푸르티에 신 요한 신부와 프티니콜라 박 미카엘 신부는 파리외방전교회 측의 요청으로 시성에서 제외당했는데, 시간이 지난 만큼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하면 시성될 가능성이 있다. 아마 이 두 신부님이 박해 당시 선교 현장에 있지 않았고, 체포되어 사형되기까지 제대로 된 신앙 고백을 하지 못했던 것이 주된 원인일 것으로 짐작된다. 전자의 경우, 당시 두 신부님은 배론[* 현 [[충청북도]] [[제천시]] [[배론성지]]. [[천주교 원주교구]] 관할.]에 위치한 신학교에서 후학 양성을 하던 중이었던 만큼 다소 억울하다 여겨질 수 있다. 후자의 경우, 당시는 [[고종황제|고종]]과 [[명성황후|민 규수]]의 국혼을 치르느라 정신이 없던 시기였다. 아마 그 전에 체포되어 순교한 베르뇌 장 시메온[* [[천주교 서울대교구]] 제4대 교구장] 주교 이하 4명의 성직자가 신앙을 고백하고 죽은 것에서 미루어 짐작하고 형식적인 배교나 출국 의사만 물어본 후 사형에 처한 것으로 보인다. 국혼이 마무리된 후 체포된 다블뤼 안 안토니오[* 천주교 서울대교구 제5대 교구장] 주교 이하 3명의 성직자들에게는 제대로 된 심문 절차를 거쳤고, 배교나 출국 의사도 제대로 확인되어졌다. 결론적으로 말해 두 신부님에게는 억울한 상황이라 할 것이다. [[안중근]] 토마스 의사에 대한 시복 논의가 한창 일었지만, 일단은 총으로 사람을 살해했다는 점 때문에 진지하게 시복 논의가 되지는 않은 듯하다. 하지만 대한의군 참모 중장 (군인) 신분으로 적의 고위 인물들 중 한명을 제거(사살)한 것을 살해했다는 건 모순이다. 무엇보다 그의 죽음을 순교로 볼 수 없다는 점(정치적 이유로 죽임당하는 것은 순교가 아님)은 거의 분명해진 듯한데, 증거자로서 얼마나 안중근의 신앙적 면을 부각시킬 수 있을지 고민이 많은 모양. 진보적 천주교계에서는 여전히 주장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