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소모전 (문단 편집) === 현실 === * 가장 대표적이자 가장 끔찍한 소모전의 사례로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서부전선이 있다. [[참호전|스위스부터 벨기에 연안까지 수백킬로에 따라 파진 참호]]에서 그야말로 누가 먼저 지쳐 나가떨어지느냐의 싸움.[* 사실 참호전의 시작은 매우 작았다. 그러나 당시 참호를 격파하는 방법은 무식하게 돌격해서 상대 참호를 빼앗느냐, 우회해서 측면을 공략하느냐의 싸움이었는데 두 전술 모두 사용되다보니 전선이 계속 길어지고 참호가 뚫려도 상대측의 진군을 막기 위해 작게는 몇 중, 많게는 수십 수백 중의 참호를, 프랑스 해안에서 스위스 국경까지 엄청나게 긴 길이에 걸쳐 형성하게 되었다.] 결국 러시아가 가장 먼저, 그 다음 독일이 지쳐 나가떨어졌다.[* 러시아는 그냥 교전에서 쳐발려서 나가떨어진 거고, 독일은 전투력 자체는 좋았으나, 반대쪽도 미친듯이 물량을 꼬라박자 결국 감당하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다.] 그 외에도 [[미국 독립전쟁]]이 이 대표적인 부류. 정면 승부로는 미국이 이길 수가 없었기 때문에 워싱턴은 소모전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오합지졸 민병대 병력 만으로 군수품의 소모전을 진짜 오로지 근성만으로 이끌어 이겼다. 당시 [[대영제국|영국군]]에게 무슨 소모전을 거느냐고 의문을 품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당시 미국 민병대는 자신의 안방인 넓디넓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유격전으로 싸운 한편 영국은 '''[[대서양]]을 건너''' 병력과 물자를 보급해야만 했으며, 미국 대륙군과 민병대의 유격전 전술에 빈번하게 당하며 사기가 마모되어 나가야만 했다. [[프랑스]]의 방해는 덤이다. 거리 때문에 영국 입장에서는 소모전으로 나오면 보급에서부터 차질이 빚어지는 상황이 빚어진 것이다. * [[제2차 세계 대전]] 때에는 나치 독일군이 소련의 국토 크기와 물량을 만만하게 보고는 기동전을 펼쳤지만 자기 군의 몇 배쯤 될 거라고 예상했던 소련군의 몇 배를 섬멸하고도 그 몇 배에 달하는 소련군과 마주하는 사태에 직면한 이후, 결국 보급이 길어지고 겨울이 시작되면서 예전부터 주변에 적이 많고 많은 곳이 삐걱거리고 보급이 딸린 나치 독일군은 결국 공세가 더뎌지면서 원치 않는 소련과의 소모전으로 끌려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그 끝의 절정은 그 유명한 [[스탈린그라드 전투]]와 [[쿠르스크 전투]], [[레닌그라드 공방전]]으로, 대체 어디서 오는지조차 알 수 없는 소련군의 물량과 점차 나아지는 전략 전술에 결국 독일이 패망할 수밖에 없는 전쟁을 벌이고 만다. 다만 독일이 항복하기 직전에 이르면 소련의 그 물량도 거의 동나기 직전이었기에[* 인적 자원 자체가 독일의 조직적인 학살과 기아, 열세의 교환비 등 여러 요인이 합쳐져 고갈 직전이었다. 당시 인구 2억여 명 중 군인 1천만 명과 민간인 2천만 명이 "사망"하였고(총 인구 15% 사망) 중상자 및 기아자를 더하면(전투 중 부상자는 통상적으로 사망자의 2배. 군인 중상자만 해도 2000만 명 추정 가능으로 사망자까지 더해 3천만 명의 젊은 남성 인구 및 극소수 여성 인구의 노동력 상실. 군인 사상자 3천만 명과 민간인 사망자 2천만 명만 해도 벌써 인구의 25% 노동력 상실) 사실상 소련이라는 국가 자체가 고꾸라지기 직전이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미 사단 편제는 최소 정원인 3000명만 채우면 무작정 출격시키는 수준이었으며 이후로도 전후복구에 역량을 집중하느라 여기저기서 뜯을 걸 최대한 뜯어와야만 했다.] 연합국의 참전과 [[무기대여법]]이 큰 도움을 준 건 사실이다. * [[6일 전쟁]] 종전 이후인 1967년 7월 1일부터 1970년 휴전협정 체결 이전인 1970년 8월 7일까지 [[이집트]]와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가 함께 이스라엘을 상대로 벌인 적 있다. 자세한 것은 [[소모전(중동)]] 문서 참고. * [[이란-이라크 전쟁]]도 극심한 소모전의 예시다. 이라크는 이란의 국력을 만만하게 보고 준비도 안 하고 마구잡이로 몰려갔고 결국은 뭐... 도시 하나를 두고 뺏고 뺏기고, 나중엔 기갑 장비가 전부 다 소모되어 전세계의 기갑장비를 마구잡이로 사들여 발악하고 스커드 날려대고, 8년간 싸워 결국 둘 다 지쳐나가떨어지고 만다. 정신 못차린 후세인은 빚갚으라고 독촉하는 쿠웨이트를 공격하면서 미국의 분노를 사서 [[걸프 전쟁]]으로 박살나고 이라크는 가난한 돌의 왕국이란 조롱까지 듣게 된다. 이란의 경우는 튼튼한 기반 덕분에 패망은 피했지만 막장스런 외교와 후폭풍으로 인해 국력이 크게 감소했다. * [[초한전쟁]]은 약세인 한나라가 강국 초나라를 상대로 역으로 소모전을 걸어 꺾어버린 특이한 사례.[* 본래 관중 땅은 진시황의 천통을 이루어준 풍족한 지방이었지만 팽성대전이 벌어진 직후에 관중에 대기근이 돌았기 때문에 그때에 비해서 유방은 이 덕을 많이 보지 못했다.] 무적의 야전 사령관 항우에게 승리하는 게 불가능하자, 유방이 주요 자원줄을 낀 채로 항우를 막으면서 한신이 기타 세력권을 정벌하고, 팽월이 초나라 후방을 집요하게 후벼판 끝에 [[광무 대치]] 마지막 즈음에는 이미 초나라의 여력은 바닥을 치는 지경에 이른다. 정작 승리한 한나라 쪽도 몇대동안 후유증이 남을 정도였는데, 사실 이쯤 되면 소모전이라기보단 [[총력전]] 수준. ~~대체 몇 년을 앞서간 거지 이거~~ 여기에 항우가 초나라 원숭이급의 외교 능력을 보여주어[* 이미 천하의 민심이 항우를 버리고 유방을 선택한 지 오래였음에도 초한전이라는 전쟁을 대등하게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역발산기개세|항우 자신의 비정상적으로 강력한 전투 능력 하나뿐이었다]].] 한나라 이외에 다른 나라들과도 싸워야 했던 건 덤. * [[몽골 제국]]과 [[남송]] 간의 혈전도 소모전의 예시이다. [[서하]], [[금나라]]가 무너지고 몽골의 전력이 남송 전선에 투사되는 와중에도 남송은 장강을 방어막 삼아 44년간이나 항쟁하지만 결국 체급과 전력 차를 이기지 못하고 1279년 멸망하게 된다. * 현대 발발 중인 예제로는 [[시리아 내전]]이 참 부정적인 면에서 교과서적이고 자기파멸적인 소모전이다. 일단 어느 쪽이 이기든 장기적인 국가 역량으로 보면 하나도 좋을 거 없는 내전이고, 2014년 초반 같은 아사드군이 결정적인 승기를 잡았던 것처럼 보였던 때도 있었으나 결국 인력 부족과 반군의 거대화로 지리멸렬하게 돌아갔고, 반대로 반군은 하나로 통합된 지휘체계 따위도 없고, 조직력에서도 엉망이니 결정타를 못 날린다. 2016년 초반 러시아군의 지원을 입은 아사드군이 다시 한번 [[알레포]]로 깊게 쳐들어가면서 전황 자체가 바뀌나 싶었더니 결국 시 외곽에서 몇 번 선전한 이후 다시 막히고, 다시 맨파워 오링나면서 소모전으로 돌입(...). 생지옥에서 죽어나가던 시리아 국민들은 결국 [[난민]]이 되어 불청객 취급 받으며 중동, 아프리카, 유럽을 떠도는 비참한 상태에 갈수록 더 깊게 빠져들고 있다. * 2020년 발발한 [[20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도 [[아제르바이잔]]이 소모전을 주 전략으로 사용하였다. 아제르바이잔은 북쪽에서 공세를 자제하고 남쪽에서 우월한 드론 및 포병 전력으로 우직하게 밀어붙였고, 국력에서 밀리는 [[아르메니아]]가 이를 버텨내지 못해 백기를 들었다.[* 인구만 해도 아제르바이잔이 아르메니아의 3.5배이고, 더욱이 아제르바이잔에는 석유가 있어 송유관을 통해 수출하고 있다. 소련 붕괴 당시 아르메니아는 아제르바이잔의 혼란상을 틈타 약진했지만 이런 근본적인 차이를 깨닫고 소모전을 건 아제르바이잔에게 밀리는 건 시간 문제였던 셈이다.] * [[한국사]]에서도 소모전이 있었는데 바로 [[고구려]]와 [[수나라]], [[당나라]]의 70여년에 걸친 전면전이었다. 고구려는 요동과 한반도의 패권국답게 수, 당의 대규모 침입을 수차례 물리치고 수나라의 멸망에도 크게 기여하였으나 끊임없는 소모전으로 인한 국력 고갈, 정치적 내분에 빠지게 되고 [[백제]]의 멸망과 [[백제부흥운동]]의 종결 이후 당과 [[신라]]의 [[양면전선]]을 강요받게 되면서 결국 668년 멸망하였다. 이외에도 10세기 초 [[발해]]와 [[요나라]]의 혈전 및 13세기 중반 [[여몽전쟁]] 역시 소모전의 예시로 볼 수 있는데 마찬가지로 체급이 작은 한국 왕조의 패배로 귀결되었다. *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도 소모전 형식으로 가고있다. 우크라이나의 [[헤르손]] 수복 이후 2023년 4월 현재까지 수많은 물자와 병력을 쏟아부으면서 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그럼에도 전선의 변화는 미미하다. [[바흐무트 전투]]도 러시아가 승기를 잡긴 했지만 여전히 일부나마 우크라이나가 유지하고 있으며 애초에 군사적으로 의미가 없는 도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