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섬노예 (문단 편집) === 2014년 이전 기사 === [[1961년]] 5월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까치섬에 15세 전후의 소년 40여명이 8년 간 소년 강제수용소에 수용되어 하루 두 그릇의 보리가루죽으로 연명하며 강제 노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유괴 후 강제수용소에서 탈출한 13세 소년의 신고로 드러났다.[[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1050500239103008&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61-05-05&officeId=00023&pageNo=3&printNo=12232&publishType=00010|#]] [[1966년]] 10월 경찰은 12~15세의 소년 28명을 [[유괴]]해 강제노동을 시킨 [[전라남도]] [[진도군]] 나배도리 주민 26명을 검거, 9명을 긴급 구속하였다. 주민들이 노동력을 공급하기 위해 소년들을 유괴, 각 농가에 분산시켜 나무를 하고 농사를 짓게하던 중, 탈출한 소년의 신고로 전말이 밝혀졌다.[[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6100600209207003&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6-10-06&officeId=00020&pageNo=7&printNo=13836&publishType=00020|#]][[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6100600209207003&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6-10-06&officeId=00020&pageNo=7&printNo=13836&publishType=00020|#]] [[1971년]] 동아일보에서 [[충청남도]] [[보령시|보령군]]의 도서에서 50여 명이 납치되어 혹사되고 이듬해인 1972년 동아일보에서 또 보령 도서에서 소년들을 데려와 혹사시키고 탈출 못하게 감시, 매질한 사건이 드러났다.[[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1053100329207012&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1-05-31&officeId=00032&pageNo=7&printNo=7894&publishType=00020|#]]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2090800209206019|#]] [[1977년]] [[동아일보]]에 [[전라남도]] [[완도군]] [[토박이|주민]]들이 어린이들을 유괴하여 10년간 강제노역을 부담시킨 사건이 보도되었다. 1987년 전남 신안군 사치도에서 3년 동안 강제 노동을 당한 소년이 탈출해 가족 품으로 귀환한 사건이 보도되었다. [[https://imnews.imbc.com/replay/1987/nwdesk/article/1801154_29505.html|#]] [[1989년]] 7월 13일 [[MBC]]가 구직자들이 납치되어 전라남도 [[신안군]], 전라남도 [[영광군]]에서 노역당했던 것을 보도하였다. [[1997년]]에도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도에서 접대부에 관한 섬노예가 보도되었다.[[https://imnews.imbc.com/replay/1997/nwdesk/article/1771963_30717.html|#]] [[2001년]] 11월 전남 강진경찰서는 [[노숙자]], [[알코올중독]]자, [[지적장애인]] 등 12명을 각각 80만∼100만 원을 받고 낙도의 김 양식장에 팔아 넘긴 광주광역시 광산구 거주의 섬노예 매매업자 박 씨와, 섬노예들을 폭행하고 학대한 해남과 신안 일대의 김 양식업자들을 구속했다.[[http://www.sisapress.com/journal/article/86839|#]] 광주 [[유스퀘어]]에서 인신매매꾼 박 씨에게 유인 납치 당해 해남군 [[화산면(해남군)|화산면]]의 한 섬에서 김 양식장 노예 생활을 한 김 씨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저녁 7시까지 일하며 주인에게 몽둥이로 얻어맞고 칼로 옆구리를 찔리기까지 했다고 진술하였다.[[http://www.sisapress.com/journal/article/86839|#]] [[2004년]] 전라남도 신안군 노예가 1월, 3월에 보도되었고, 6월에는 신안군 '노예 44년'이 보도되었다. [[2005년]] [[9월 12일]] 목포에서 직업소개소를 운영하면서 [[인신매매]]를 하던 일당 2명이 잡혔다고한다.[[http://newslink.media.daum.net/news/20050912093423882|#]] [[2006년]] [[그것이 알고싶다]], [[긴급출동 SOS24]]에 보도되어 사회적으로 공론화되었다. 2010년 전라남도 완도군 금일도의 한 '티켓다방'에서 10대 여학생 2명이 2개월여 동안 감시를 받으며 성매매 행위를 강요당한 사건이 기사에 떴다. [[https://m.yna.co.kr/view/AKR20101125022800051|#]] [[2011년]] [[11월 18일]]에 [[MBC]], [[YTN]] 등의 매스컴을 타고 [[신안군]] 섬노예 뉴스가 보도되었다. [[목포시|목포]] 직업소개소를 통해 브로커들이 [[노숙자]]들을 꾀어내 150만 원 정도로 팔아넘기며 이들은 신안 앞바다에서 무임금으로 어업이나 염전업에 부려먹히고 탈출은 꿈도 꾸지 못했었다.[[http://www.ytn.co.kr/_ln/0115_201111182244502681|#]] 놀랍게도 브로커들이 노예 노숙자들을 물색하는 장소는 '''가까운 [[목포시|목포]]뿐 아니라 저 멀리 [[부산광역시|부산]] [[북구(부산광역시)|북구]]에 위치한 [[구포역]] 일대까지''' 물망에 있다고 한다. 어렵게 탈출해도 역 부근의 [[택시기사|택시 기사]] 대부분이 조직을 형성하고 있어 도로 팔아 넘겨진다고 한다. [[2012년]] 4월 9일에는 군산에서 '''2대째 대를 이어''' 섬노예 [[인신매매]]를 하는 일당 6명이 적발되었다고 한다.[[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20409_0011008838&cID=10201&pID=10200|#]] [[2012년]] [[7월 18일]] 11년의 섬노예 생활 이후 1억 500만원의 손해보상을 받은 피해자가 나왔다. 열악한 환경에서 고되게 일했음에도 1년에 1,000만원도 안 되는 보상을 받은 셈이다.[[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20718MW075746402628|#]]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