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서산시/행정 (문단 편집) ==== 역사 ==== [[고려]] 때 여미현이 위치해 있던 곳이고 [[조선]]시대 이르러 정해현과 통합되어 해미현이 되었고 치소가 현재 해미면으로 이전했다. 일찍이 외부에 알려지기 는 "예미장벌"로 알려졌던 곳이다. 용장리(龍獐里)는 운산면(雲山面) 소재지보다도 서산 지방에는 서산 해미장 다음으로 큰 "여미장터"로 유명하였던 곳이고 인근 지역 우시장이 열렸었다(운산신협 앞). 서산 지방에서 시 소재지를 다음으로 해미(海美)를 치는데 그다음으로 중요한 소도읍일뿐더러 관문(官門)으로 유명했다. 기록으로 보면 이곳에서 섰던 윗여미시장(餘美市場)은 1910년대 초 까지만 하여도 성시(盛市)를 이루었고 여미(餘美)란 이름은 내포(內浦地方) 에서는 대단히 유명했던 이름이다. 윗여미시장은 여미리의 이문안마을에 위치했으며 지금도 폐건물을 보면 미용실, 방앗간 등 옛시장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우시장이 섰던 근처에 1950년대 전후로 아랫여미시장이 형성되었는데, 윗여미시장은 서서히 작아져 흔적만 남고 아랫시장만 남아있다. 소방도로로 인해 많이 부서졌지만 용장리에 시장 터에 있는 옛 시장의 흔적을 보면 면 단위 시장이라고 보기 힘들정도로 크다. 이는 주요 도로가 아랫시장으로 난 변화의 결과로 추측한다. 이를 유추해볼 수 있는 것이 운산초등학교의 위치인데, 일반적으로 초등학교 정문-운동장-학교 순으로 배치되지만 운산초등학교는 정문-학교-운동장 순이다. 지역 어른들 말씀으로는 지금의 정문보다 후문, 옆문으로 등교하는 학생들이 많았다는 점으로 보아 여미 지역의 중심지가 옮겨간 결과로 축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여미리(餘美里)라는 마을명으로만 남아서 옛 역사나 문화유적의 정취조차 잊혀져가고 있지만 서산시 내에서 초등학교가 서산, 해미, 운산 순으로 생겼다는 점을 보면 규모가 있는 곳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지금은 서산과 당진 사이의 어중간한 위치, 특성화된 사업이 없어 지속적으로 규모가 줄고 있으나 면민의 지속적 노력으로 관광지로써의 재도약을 추진 중이다. 용장천(역천) 근처의 데이지 꽃 밭, 용현계곡을 비롯해 관광자원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획일화된 관광지의 모습만을 보여 안타깝다. 일례로 해미면 및 부석면 따라 옛간판을 모두 교체하는 등의 정책은 특성화와 거리가 멀어 창의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